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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연 290조 원 공공의 적 ‘지하경제’

GDP 23%로 OECD 평균보다 1.7배…맞춤형 정책으로 기회비용 늘려야

  • 김민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kimmj@hri.co.kr

연 290조 원 공공의 적 ‘지하경제’

연 290조 원 공공의 적 ‘지하경제’

서울 서초동 한 유흥업소 거리.

박근혜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공약으로 한국 지하경제 규모에 관한 논란이 뜨겁다. 최근 관심은 특히 복지 재원을 확대하려고 사회적 비용이 엄청난 직접적인 증세 방안을 택하는 대신,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에 집중된다. 먼저 국세청은 가짜 석유 단속에 본격 나서며 불법·탈법거래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대규모 자영업자나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해 이들의 세금 탈루를 막는 방안도 함께 거론된다. 이를 위해 국세청은 최근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수 확대 분야에 대해 총괄적인 컨트롤타워 구실을 맡을 공정과세추진기획단을 신설, ‘지하경제와의 전쟁’ 준비를 완료했다.

선진국보다 큰 지하경제 규모

그러나 과연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세수를 증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잖은 이견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지하경제의 정확한 실체나 규모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과연 지하경제란 무엇인가. 통상적으로 이 용어는 ‘합법적이긴 하지만 조세회피나 탈세 등을 목적으로 공식적인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거래’와 ‘불법 거래’를 포괄한다. 여기에는 금전거래와 비금전거래가 모두 포함되는데, 워낙에 은닉된 경제활동이기 때문에 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하경제 규모를 정밀하게 추정하는 방법으로 직접추계방법과 간접추계방법, 모형추계방법 등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간접추계방법의 일종인 통화 수요(currency demand) 모델로 분석해보면, 2012년 기준으로 한국 지하경제 규모는 약 290조 원에 달한다. 이는 같은 해 한국 명목 국내총생산(GDP) 규모의 23%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특히 이러한 비중은 그간 꾸준히 하락세를 보여 오다 최근 소폭이나마 증가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크기는 외국과 비교해보면 그 심각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2007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선진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13% 내외로 추정된다. 주요 개발도상국 경우는 26.2% 정도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선진국에 비하면 매우 큰 편이고, 개발도상국에 비해 약간 작은 정도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첫 번째 이유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하경제로 인한 탈세는 세수 감소를 초래할 뿐 아니라 국민 부담을 증가시킨다. 더욱이 소득분배 악화로 이어져 경제 양극화를 더욱 가속화한다는 문제점도 만만치 않다. 즉, 지하경제 양성화는 복지재원 확보뿐 아니라 조세 형평성을 제고하는 차원에서, 혹은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연 290조 원 공공의 적 ‘지하경제’
조세 형평성 제고 필수 과제

한국 지하경제 비중이 이처럼 큰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네 가지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먼저 한국 자영업 비율이 OECD 평균보다 매우 높고, 자영업자의 실질 소득을 파악하는 것이 힘들어 소득 탈루율이 높다는 점이다. 한국 자영업 비율은 28.8%에 달하는데, 이는 미국(7.0%)이나 일본(12.3%), 영국(13.9%)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더욱이 국세청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10차례 기획세무조사를 통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상이 된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 탈루 규모가 3조6000억 원에 달해 소득 탈루율은 48%에 이르렀다. 이들의 세금탈루가 지하경제 규모의 첫 번째 원인인 셈이다.

다음으로 세금과 사회보장 기여금을 합한 한국 국민의 부담률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는 점을 이유로 꼽을 수 있다. 2011년 한국의 GDP 대비 국민 부담률은 25.9%로 2000년에 비해 3.3%p 상승했는데, 이는 OECD 선진국 가운데 가장 빠른 증가세에 해당한다. 쉽게 말해 부담이 커지면서 조세를 회피하고자 하는 유혹도 함께 커진 것이다.

셋째로, 한국의 부패 정도 자체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높다는 사실 역시 지하경제 형성에 큰 몫을 한다. 한국 사회 부패 정도를 나타내는 부패인식지수(CPI)는 2008년까지 개선되는 추세였지만, 이후 하락세가 시작돼 부패가 더 확산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 특히 우려할 만하다. 주요 선진국인 일본이나 영국, 미국에 비해 부패 정도가 훨씬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끝으로 경기침체로 공식경제(official economy·정부 공식통계에 파악되는 경제로, 흔히 지상경제라고 함)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근로자가 비(非)제도권 노동시장으로 편입되는 현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여기에 노동시장 규제를 피하려고 기업들이 불법 고용을 늘려나가는 추세 역시 지하경제 형성을 촉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합법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근로자가 지하경제 일자리로 편입됨으로써 이른바 ‘비제도적 노동시장’이 확대되면 지하경제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해외학계의 대체적인 정설이다. 예를 들어,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를 기업의 탈세 통로로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기업들이 근로시간이나 처우에 관한 규제를 피하려고 노동비용을 축소하려 하는 것 역시 지하경제가 형성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특히 노동시장 자유도 지수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한국 노동시장 상황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

서민 경제 부작용 최소화 중요

연 290조 원 공공의 적 ‘지하경제’
당연한 말이지만, 어느 나라에나 지하경제는 있다. 다만 이를 최소화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가 다를 뿐이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투명거래와 세금 성실납부를 유도해 지하경제를 축소하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뒀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먼저 금융거래 정보에 대한 조세당국 접근권을 강화하는가 하면, 독자적인 제도를 도입해 성숙한 국민 의식이 사회 전반에 정착되게 함으로써 지하경제 축소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정책수단도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즉, 성실 납세자에게는 인센티브를 주고 불성실 납세자에게는 제재나 통제, 세무조사 강화 같은 강제적 시정조치를 실시하는 당근과 채찍 방법을 병행하는 것이다.

한국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려면 먼저 우리 실정에 맞는 맞춤형 대책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특히 국민 저항감이나 서민경제에 미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유인책을 설계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유달리 높은 지하경제 비중과 주요 선진국의 정책적 사례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얼개의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첫째, 탈세나 조세회피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몇몇 분야를 집중 관리할 필요가 있다. 관혼상제와 관련한 생활서비스업이나 음식업, 도소매업, 교육 및 의료 분야 자영업자와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가 대표적이다. 이들 분야의 성실 납세자에게 ‘모범 자영업자’ 명목으로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소득 탈루를 방지할 유인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

둘째, 현금 거래가 빈번한 대형 서비스업 자영업종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이 경우 불성실 납세자를 철저히 관리함으로써 조세 포탈을 방지하는 데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과세 담당 기관이 금융거래 정보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등 탈세를 예방하는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 금융정보기구와 국세청의 협력을 강화해 의심스러운 거래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효율적으로 즉각 실시하는 방식이다. 자금세탁 같은 불법, 탈법 거래를 효율적으로 차단해야만 부정부패 방지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 옵션은 지하경제 규모가 작은 상당수 선진국에서 이미 가동하는 대응책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를 줄여나가는 작업도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데 필요한 선결과제 가운데 하나다. 지하경제로 편입되는 비제도권 노동시장의 규모를 줄이기 위해서다. 물론 여기에는 경기를 활성화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령층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를 대거 마련하는 정책이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지하경제 문제는 기본적으로 인식 문제다. 교육을 통해 납세의무 의식을 제고하는 원론적 대책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불성실 납세자는 어떻게든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이 널리 자리 잡을수록 지하경제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초중고 정규 교육과정에서부터 세금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탈세자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교육프로그램 이수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세 포탈로 인한 기회비용이 포탈로 얻을 눈앞의 이익보다 훨씬 크다는 생각이 사회 전체에 확산될 때 지하경제 양성화는 비로소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13.03.18 879호 (p30~32)

김민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kimmj@hr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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