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9

2013.03.18

“공공기관장, 떨고 있니?”

전문성과 업무평가로 대대적 물갈이 예고…낙하산 논란 인사들 좌불안석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3-03-18 0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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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기관장, 떨고 있니?”

    3월 11일 오후 청와대 세종실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첫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모두발언하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공공기관장은 새 정부 국정철학과 맞는 사람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정부가 최근 공기업 사장들에게 임기가 끝나기 전 교체하지 않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뜻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말 김중겸 사장이 갑작스럽게 경질된 후 취임한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의 경우 최근 임기 보장을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3월 9일자 한 일간지에 실린 이 기사는 공공기관을 크게 술렁이게 했다. 안 그래도 박근혜 정부 들어 정부 산하기관 기관장 인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아 애를 태웠는데, 언론을 통해 ‘유임 발령’을 받았기 때문. 한 공기업 기관장은 주말 내내 간부들로부터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올해 퇴임 앞둔 공공기관 50곳

    그러자 청와대가 발끈했다. A수석은 “공공기관장 임기를 보장한다고 하는데 전혀 아니다. 그들이(일부 공공기관장이 임기 보장을 위해) 먼저 자리를 깔았다”고 흥분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관장들이 임기 보장을 의도적으로 흘렸든지, 공무원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것 같다. (A수석이) 여러 공공기관 가운데 한국전력공사(한전)를 콕 지목해 말한 것으로 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보도 이틀 뒤 박근혜 대통령은 첫 국무회의에서 대대적인 인사태풍을 예고했다.



    “새 정부가 막중한 과제를 잘해내려면 인사가 중요하다. 앞으로 각 부처 산하기관과 공공기관에 인사가 많을 텐데, 새 정부 국정철학을 공유할 사람을 임명할 수 있게 해달라.”

    ‘임기 보장’은 이틀 천하로 끝났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도 “공공기관장 가운데 임기가 남았더라도 해당 부처 장관과 인사위원회에서 전문성 및 적절성 여부를 다시 검토할 것이다. 내부 신망이 높고 전문성 있는 인사를 임명한다는 것이 인사 원칙”이라고 못 박았다.

    청와대는 이 해프닝을 일부 공공기관장의 ‘자가발전’으로 보는 분위기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부 공공기관장이 ‘임기를 보장받았다’는 얘기를 하고 다닌다는 보고를 받고 박 대통령이 크게 화낸 것으로 안다. 임기 보장은 능력과 전문성을 고려해 선별적으로 이뤄진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늦어지고 장관 인사청문회 등으로 (공공기관장 인사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내지 않아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자가발전과 연임 로비에 대해 엄중 경고한 것으로 보면 된다.”

    어쨌든 박 대통령이 대대적 물갈이를 시사하면서 공공기관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인사평가가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임기가 남았더라도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업무 수행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CEO나 감사는 과감히 교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당장 기관장 퇴임을 앞둔 공공기관 50곳은 향후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하지만 과거 이명박 정부 때처럼 ‘일괄사표’ 방식과는 다르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공통된 설명이다.

    2008년 5월 청와대는 공공기관 CEO에게서 일괄사표를 받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3개월 만이었다.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현 산은금융그룹 회장)은 국회에서 “일괄사표는 정치적 재신임 차원이며 업무 성과와 전문성, 경영자로서의 역량 등을 참작해 유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303개 공공기관 CEO의 32%가 임기 중 교체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강조한 ‘국정철학 공유’와 ‘공직 기강 확립’에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기획재정부의 경영평가 결과가 나오는 6월 정도면 CEO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민정수석실도 평가 이외 평판까지 조사하고 감사원도 움직이지 않나. 5월경이면 일종의 살생부 리스트가 나올 테고. 평가와 평판이 좋으면 임기를 보장하겠지만 극소수일 것이다. 벌써부터 기획재정부에 로비한다는 말도 나온다.”

    이들 말을 종합하면 기획재정부(기재부)는 6월까지 공공기관 평가를 마무리하는데, 올해는 평가 결과가 중요하게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평가 결과는 S(탁월), A(우수), B(양호), C(보통), D(미흡), E(아주 미흡) 등으로 구분된다.

    민정수석실 필터링에 박차

    기재부의 ‘2013년 공공기관 지정 내역’을 보면, 정부가 인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공기관은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을 합쳐 모두 295곳. 공기업은 한전과 한국가스공사 등 30곳이고, 준정부기관은 공무원연금공단과 영화진흥위원회 등 87곳, 기타 공공기관은 국토연구원, 국립대학교 병원 등 178곳이다. 이들 공기업은 그 나름대로 공모 절차를 거쳐 CEO를 선임하지만, 청와대가 사실상 인사권을 쥔 상황이어서 새 정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감사와 상임이사 등 고위경영진까지 포함하면 최대 7000여 명 인사에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감사원이 공직감찰본부 소속 정예 감찰인력 85명을 투입해 복무 기강 특별점검에 나선 만큼, 감찰 결과 역시 주요 인사기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감사원은 지난해 말부터 공직 기강 점검을 해왔지만, 이번 감찰은 근무시간 무단 이석, 점심시간 음주, 출장 빙자 조기퇴근 등 복무 기강과 관련한 모든 사항을 감찰한다.

    대통령 민정수석실은 공공기관 CEO 비위 사실 확인 등 감찰 활동을 계속 해왔지만 박 대통령 발언 이후 ‘공공기관 필터링’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공기업 기관장은 여러 비위 사실이 접수돼 확인 중이며 조만간 교체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얘기도 있다.

    청와대는 이러한 평가 및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교체 대상을 선별한 뒤 유민봉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이 중심이 돼 후속 인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비서실 관계자는 “이 문제로 인사위원회를 열지는 않았지만 매번 수석비서관회의 때 인사 관련 논의를 하는 것으로 안다. 국정 현안을 챙기면서 상시적으로 공공기관, 공기업 인사도 논의한다”고 말했다.

    경영평가와 감찰 결과는 명분일 뿐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전문성과 능력을 강조하고 낙하산 인사를 강하게 비판한 만큼 ‘낙하산 논란이 일었던 인사는 스스로 물러나라’는 말로 풀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출신의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과 변정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 이명박(MB) 대통령선거(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한반도대운하특별위원장을 맡았던 박승환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등 ‘MB맨’도 교체 대상으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를 거쳐 기관장이나 임원으로 재취업한 인사 40여 명도 교체 얘기가 있다.

    정부 지분이 많거나 영향력이 큰 금융지주사 역시 교체 분위기가 감지된다. 김승유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이 임기를 2년여 앞둔 2월 사의를 표명한 것처럼,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한국산업은행장 등 ‘금융계 MB맨’도 어떤 식으로든 사의를 밝히리라는 전망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그와 동시에 시중 은행장 출신으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도운 서강대 동문 L씨 중용론도 나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박 대통령 발언은 1년 이상 임기가 남은 기관장이라도 현 정부와 국정철학이 맞지 않으면 사표를 내라는 의미로 보는 게 맞다. 전 정부 색채가 강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MB맨이 떠난 자리는 ‘낙하산 인사’ 비판 분위기에 힘입어 퇴직 관료들이 실속을 챙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공기업 간부의 말이다.

    “지식경제부 산하기관은 61개다. 가장 많은 부처인 만큼 국정감사 때 낙하산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따라서 고위공무원 사이에서 ‘이번에는 공공기관장에 전문가(관료 출신)가 대거 임명돼 이런 시비를 끊어보자’는 명분을 만든다고 하는데, 속내는 퇴직 후 자리 하나를 더 보장받는 것 아니겠나. 지난해에도 퇴직 공무원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해서 ‘안 된다’고 읍소했다. 전문성만 강조했다가는 고위공직자만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국정철학 맞지 않으면 사표 내라”

    여권에서는 대선캠프 사람을 어떻게 챙겨야 할지도 고민이다. 대선캠프에서 일했던 B씨는 “오늘도 대선 때 함께 일했던 C장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자꾸 알려서 자리를 챙겨야지 현재 분위기라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것 같다”고 푸념했다.

    공공기관은 정중동(靜中動)이다. 겉으론 평소처럼 업무를 처리하지만,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식과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예측하면서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국토해양부 산하 공기업 간부는 “주말에 운동하다가 ‘임기 보장’ 기사가 났다는 연락을 받고 (기관장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했는데 이틀 뒤 대통령 발언이 나와 괜히 머쓱해졌다”며 “기관장들은 확실히 튀어서 정치권 눈에 들든지, 조용히 소나기를 피하든지 양자택일을 고심 중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같은 간부급은 다음 기관장으로 누가 오는지가 최대 관심사다. (인사) 정보를 미리 알아야 그 기관장에 맞는 정책을 준비할 수 있고, 먼저 친해질 수 있다. 인사에도 유리하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국토해양부 공기업 직원은 “우리는 지금까지 기관장 내부 승진자가 한 명이었는데, 박 대통령이 전문성을 강조한 만큼 내부 승진을 기대하는 눈치”라면서 “벌써부터 여권 핵심 B씨에게 줄을 댔다는 얘기도 나오고, 평판조회 잘 받으려고 직원들에게 밥을 사는 사내 정치도 시작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낙하산 반대’를 강조한 박 대통령이 법(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임원 임기를 무시하고 밀어내기를 할 경우 자칫 또 다른 낙하산 논란을 부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한 의원은 “논란을 피하려면 2006년 10월 참여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공격할 때를 되돌아보면 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 당료에 대한 ‘보상 인사’ △청와대 출신의 ‘특혜 인사’ △2002년 대선 관련자 ‘보은 인사’ △제17대 총선 및 지방선거 낙선자에 대한 ‘위로 인사’ △친노(친노무현) 세력 등에 대한 ‘선심 인사’ 5가지로 구분했다. 100여 개 기관에 여권 인사 142명이 낙하산으로 내려가 고액 연봉을 받는다며 공격했다. 이 5가지 유형만 피하면 된다.”

    “공공기관장, 떨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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