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6

2013.02.25

봐라, 거리 낙서도 예술이다

장미셸 바스키아 개인전

  • 송화선 주간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3-02-25 10:3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봐라, 거리 낙서도 예술이다

    1 DESMOND(1984). ⓒ 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ADAGP, Paris/ ARS, New York 2 뉴욕 미술계 스타였던 화가 장미셸 바스키아. ⓒ Julio Donoso/ Sygma/ TOPIC 3 Untitled(Hand Anatomy, 1982). ⓒ 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ADAGP, Paris/ ARS, New York

    정규 미술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흑인. 미국 뉴욕 소호거리 외벽에 스프레이로 낙서를 해대던 변방 예술가.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장미셸 바스키아(1960∼88)의 이력은 현대 미술계 별이 되기엔 여러모로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1980년 ‘타임스스퀘어 쇼(Times Square Show)’에 대형 설치 회화를 내놓으며 이름을 알린 이 청년은 8년 후 코카인 중독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분명 뉴욕 미술계의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 낙서하듯 캔버스와 널빤지에 휘갈긴 그의 작품은 콧대 높은 명사들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는 앤디 워홀과 공동작업을 하고, 마돈나와 염문을 뿌렸다.

    바스키아에 대한 열기는 그가 사망한 지 25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세계 경매시장에 나온 작품 90점 가운데 78점이 팔렸다. 낙찰 총액은 1억6144만 달러(약 1700억 원). 대체 그의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을 사로잡는 걸까.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 2, 3관에서 열리는 ‘장미셸 바스키아’전은 이 호기심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는 자리다. 작가가 1981년부터 86년 사이 작업한 회화 17점이 관객을 맞는다.

    어린아이 그림 같은 간결한 회화에 다양한 기호와 문자, 채색을 결합한 바스키아 작품은 팝아트적인 동시에 고대 암각화 같은 묘한 매력을 풍긴다. 1982년 작 ‘무제’는 검정 캔버스 위에 사람의 왼쪽 손을 그린 뒤 척추 해부도를 덧붙이고, 여백에 해부학 용어를 잔뜩 적어놓은 작품. 7세 때 교통사고로 입원해 지라 제거 수술을 받은 바스키아는 생전 인터뷰에서 당시 어머니가 선물한 책 ‘그레이 해부학’이 자신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다양한 해부학 책을 섭렵했고, 여러 작품에 해부학적 드로잉을 차용했다. 종종 ‘spleen(지라)’이라는 단어를 자신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다.

    해부학 서적을 탐독하는 취미에서 알 수 있듯, 바스키아는 당대 일반적인 흑인에 비하면 인문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뉴욕 브루클린 중산층 가정에서 회계사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어머니와 미술관에 다니기도 했다. 그의 친구였던 줄리언 슈나벨 감독이 연출한 영화 ‘바스키아’(1996)는 꼬마 바스키아가 엄마 손을 잡고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감상한 뒤 ‘화가가 되리라’고 결심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후 거리 낙서(graffiti·그라피티)로 미술 활동에 발을 들인 바스키아는 작품에 인종차별에 대한 날선 비판을 새겨 넣었고, 인권운동가 맬컴 엑스와 메이저리거 행크 에런 등 당대 흑인 영웅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1981년 작 ‘무제’에 담긴 ‘AAAAA’라는 반복적인 이니셜은 에런(Aaron) 첫 글자를 딴 것이다. 이미지 중심에 놓인 망치도 당시 에런이 홈런을 치는 모습에서 나온 별명 ‘망치질하는 행크(Hammering Hank)’를 암시한다. 3월 31일까지, 문의 02-735-8449.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