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6

2013.02.25

초고속 액션…할리우드 사로잡다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3-02-25 1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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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고속 액션…할리우드 사로잡다
    4500만 달러(485억 원) 규모의 할리우드 액션영화 ‘라스트 스탠드’는 몇 가지 관전 포인트 덕에 국내 관객이 특히 흥미로워할 영화다. 먼저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2003~2011) 할리우드 액션 히어로 아널드 슈워제네거(66)가 10여 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작품이라는 점이 그렇다. 또한 영화 ‘트랜스포머’에 대규모로 PPL(product placement·영화나 드라마에 브랜드나 상품을 노출시키는 광고 기법)을 노출함으로써 미국 자동차산업의 야심을 과감히 드러냈던 제너럴모터스(GM)가 다시 한 번 협찬에 나선 액션영화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지운 감독의 첫 번째 할리우드 영화라는 사실이 영화팬에게 가장 큰 관심 사항일 것이다. 한마디로 ‘라스트 스탠드’는 전설적인 무용담을 가진 할리우드 노병과 패기만만한 한국 출신 ‘용병’이 괴력의 미국산 스포츠카에 탑승해 미국 영화계를 ‘습격’한 사건이다. 한국보다 한 달여 빠른 1월 18일 개봉한 미국에서의 ‘전과’는 기대를 다소 밑돌았지만(첫 주말 박스오피스 9위), 총격 액션의 막강한 화력과 슈퍼카의 속도가 어우러진 퍼포먼스는 현지 평단과 언론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았다. 슈워제네거로선 “건재를 과시한 제격의 복귀작”이며, 김지운 감독으로선 “할리우드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입증한 데뷔작”이라는 호평이 대세를 이뤘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연방법원으로 호송하던 극악한 마약왕 가브리엘 코르테즈(에두아르도 노리에가 분)가 도주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모터쇼용으로 튜닝한 최대 시속 450km의 슈퍼카를 훔쳐 FBI 추격을 따돌리고 방어선을 모두 돌파한다. 베테랑 FBI 요원인 존 베니스터(포리스트 휘터커 분)가 각 주 경찰과 특수기동대(SWAT)를 진두지휘하며 그를 쫓지만 속수무책이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복귀작

    한편, 한가로운 마을 섬머튼의 보안관 레이 오웬스(아널드 슈워제네거 분)는 로스앤젤레스경찰 마약 전담반 출신으로 누구보다 피 끓는 전성기를 보냈으며, 지금은 인심 좋은 마을 주민과 어울려 여생을 보내는 중이다. 그런데 모처럼 휴일을 맞아 주말을 만끽하려던 그의 눈에 낯선 남자들이 들어오고, 급기야 살인사건 소식까지 전해진다. 결국 마약왕 코르테즈가 국경마을 섬머튼을 통해 멕시코로 넘어가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는 강력범죄라고는 경험해본 적 없는 오합지졸 부하와 주민 등 4명과 함께 배수진을 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영화 초반부 휴일을 맞은 보안관 오웬스 모습이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반바지에 보트 슈즈를 끌고 나타나 마을 주민들과 시답잖은 수작을 할 때 그랬듯, 최전선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돌아온 노병의 권태 및 피로감이 슈워제네거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과 함께 역력하게 드러난다. 극중 노안 때문에 안경을 끼고 서류를 들여다보는 모습 또한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극 중 누군가 “영감은 몸이 좋은데 젊었을 때 운동 좀 하셨소?”라고 묻거나(슈워제네거는 보디빌딩 세계 챔피언 출신이다), 총격전 와중에 엎어진 그를 보고 놀란 주민이 “괜찮소?”라고 묻자 “이젠 너무 늙었수다”라고 응대하는 장면 등 ‘돌아온 액션 노병’을 기리는 농담이 적잖게 재미를 준다.

    초고속 액션…할리우드 사로잡다
    오락영화로 호평받아

    영화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탈출한 마약왕이 FBI 추격을 받으며 숨 가쁘게 질주하는 과정과 휴일을 맞은 시골 마을 일상적인 풍경을 번갈아 묘사하다가 최후 대결에서 두 물길을 합친다. 대규모 인력이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최첨단 FBI 본부와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경관들이 지키는 허름한 시골경찰서가 대조를 이루고,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목가적인 촌동네가 강렬하게 대비된다. 트럭, 군용수송차, 강력한 첨단화기로 무장한 민병대 수준의 마약단과 장총 몇 자루에 고물 장비가 전부인 시골 보안관 무리의 극단적 대비도 흥미진진하다.

    미국에서나 국내 시사회에서 “전반부는 다소 지루하다”는 반응이 없지 않았으나, 후반 45분간 펼쳐지는 액션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다.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 전작에서 보여준 김지운 감독 특유의 리듬감과 액션 스타일이 괴력의 슈퍼카를 타고 속도를 최고로 끌어올린다. 사람 키만한 줄기가 사방 시야를 완전히 차단한 넓은 옥수수밭에서 콜벳을 탄 범인과 카마로를 탄 주인공이 벌이는 추격전은 차량 협찬사뿐 아니라, 관객의 아드레날린까지 치솟게 할 만한 장면이다. 건물 안 좁은 계단에서의 총격이나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마을에서의 대결도 박진감 넘치게 연출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처럼 총격과 격투 사이에 끼워 넣은 농담과 유머가 잔재미를 선사한다.

    ‘라스트 스탠드’는 미국의 대규모 자본과 할리우드식 상업 장르영화 제작 시스템에 현지 배우 및 스태프가 참여한 영화다. 그간 몇 차례 한국인 감독이 할리우드에 진출했지만, 이런 식으로 영화를 연출하긴 사실상 처음이다. 미국의 연예영화 전문 주간지 ‘버라이어티’는 “김지운의 할리우드 데뷔작은 전작만큼 본능적이고 광적이진 않지만 많은 장면에서 거대한 스케일의 액션, 폭력을 담아내는 감독 역량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저명한 영국계 영화전문지 ‘스크린’은 “(초반) 45분간은 여유 있고 느긋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30여 분에 이르는 클라이맥스에서는 오락적이고 통쾌한 액션과 생생한 총격전, 자동차 추격전을 보여준다”면서 오락영화로서 높은 점수를 줬다. 미국의 유명 영화전문 인터넷 매체는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성공 가능성에 “예스(yes)”라는 확답을 내놨고, 또 다른 매체는 만점의 별점평을 매기기도 했다. 김 감독은 인터뷰에서 “현재 할리우드에서 프로젝트 세 편을 제안받고 상호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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