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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학 박사 1호 이동천의 ‘예술과 천기누설’

검게 변한 백색 ‘안료’는 가짜를 알고 있다

반연현상 없는 ‘고려 연분’ 1919년까지 사용…제조비법은 단절된 지 오래

  •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

검게 변한 백색 ‘안료’는 가짜를 알고 있다

검게 변한 백색 ‘안료’는 가짜를 알고 있다

그림1 신중국산 연분을 쓴 장승업의 ‘삼인문년도’. 그림2 고려 연분을 쓴 ‘조선 태조 어진’의 얼굴 앞뒷면.

중국 최고 감정가(국가의 눈·國眼)로 꼽히는 양런카이(楊仁愷·1915~2008) 선생 집에서 필자는 별별 사람을 다 만나봤다. 가끔은 필자가 외국인 흉내를 내야 할 때도 있었다. 선생이 감정의뢰를 받은 작품에 대해 “가짜”라고 결론 내리면 떼쓰면서 버티는 골동품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선생이 나를 가리키며 “외국 손님이 계신다”고 말하면 그들은 체면상 후퇴했다. 그들 행태는 정말 짜증났지만, 그들이 가져온 위작들은 필자가 감정을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하루는 그들이 가져온 가짜 그림 덕에 위조꾼들의 안료 위조법에 대해 알게 됐다. 선생은 1850~1940년대 유행하던 백색안료 ‘신(新)중국산 연분(연백, 연백분)’의 위조에 대해 설명했다. 신중국산 연분은 전통 제조비법을 계승하지 못해 지금은 ‘반연(返鉛)현상’이 나타난다. ‘반연’이란 ‘납(鉛)이 본래 성질로 되돌아간다(返)’는 뜻이다. 즉, 쓸 때는 새하얗지만 공기 중에 몇십 년 노출되면 검게 변한다는 얘기다. 위조꾼들은 이 같은 반연현상을 현대 백색안료인 징크 화이트나 티타늄 화이트에 황산을 섞어 위조했다.

임금 초상화·궁중 행사도에 쓰여

필자는 신중국산 연분을 2003년 5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기획한 ‘근대 회화 명품’전에서 확인했다. 장승업(1843~1897)의 ‘삼인문년도’ 속 세 신선의 얼굴이나 손이 마치 흑인처럼 까맣다(그림1). 본래 새하얗게 그리려고 특별히 썼던 신중국산 연분이 세월이 지나 까맣게 변한 것이다. 이는 자연스러운 반연현상으로 곰팡이와는 관련 없다.

조선시대에는 그림에 어떤 백색안료를 썼을까. 때로는 한 작품에 여러 백색안료를 함께 쓰기도 했다. 간혹 쌀가루도 사용했지만 가장 많이 쓴 것은 합분과 연분이다. 합분은 조개가루로 만들어 연분처럼 새하얗지는 않아도 변색 위험이 전혀 없다. 문제는 납으로 만든 연분이다. 연분은 크게 반연현상이 나타난 것과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전주시 어진박물관에 소장된 국보 제317호 ‘조선 태조 어진’은 1872년 그린 것이다. 얼굴(龍顔) 부분은 비단 앞뒤로 연분을 사용했으나, 반연현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그림2).



1919년 채용신(1850~1941)이 그린 ‘권기수 초상’ 또한 비단 앞뒤로 연분이 쓰였으나 반연현상은 없다. 이렇듯 반연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연분은 1919년까지도 사용됐다. 필자는 신중국산 연분과 구별해 반연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연분을 ‘고려 연분’이라고 칭한다.

고려 연분은 조선시대 임금 초상화 외에 궁중행사도와 사대부 초상화에도 귀하게 쓰였다. 김홍도와 이명기가 1796년 그린 ‘서직수 초상’(그림3)의 비단 앞뒷면에도 고려 연분이 쓰였다. 만일 신중국산 연분을 사용했다면 초상화 앞면에 반연현상이 나타나 하얀 버선이 마치 검은 가죽신(黑鞋)처럼 변했을 것이다. 1850년대 이전에 그린 전통 초상화 대부분은 비단 뒷면에 고려 연분을 전체적으로 칠했다(그림4).

검게 변한 백색 ‘안료’는 가짜를 알고 있다

그림3 고려 연분을 쓴 ‘서직수 초상’. 그림4 ‘서직수 초상’을 X선 투과한 사진.

예로부터 화가는 안료 제조와 사용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연분은 한중일 삼국 그림뿐 아니라 서양화에서도 가장 중요한 안료였다. 연분은 중국 후한 영제(재위 168~189) 이전에 고대 이란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치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전해졌다. 연분은 수나라 고조(재위 581~604) 이전에는 ‘호분(胡粉)’이라고 불렀다. ‘호(고대 이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왔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역시 고대 이란에서 연분이 처음 들어왔다. 조선시대에는 이미 우리만의 고려 연분 제조비법이 자리 잡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모든 전통이 그렇듯, 연분 제조비법도 단절된 지 오래다. 중국 문헌에 따르면, 연분 제조법은 4가지다. 첫째, 항아리에 연분을 넣고 밀봉한 후 찐다. 둘째, 연분 1근에 콩가루 2냥과 합분 4냥을 넣어 기와 형태로 제조한다. 이렇게 하면 연분은 합분 때문에 변색되지 않는다. 셋째, 반죽한 연분을 두부 중간에 넣고 1시간쯤 솥에서 찐다. 넷째, 연분과 진한 아교를 반죽해 밀반죽 뭉치로 만든 뒤 손바닥에 놓고 두 손으로 문지른다.

서양에는 2가지 연분 제조법이 있었다. 하나는 납과 ‘포도주를 발효한 식초’를 각각 다른 항아리에 넣고, 항아리 주위에 목장에서 가져온 분뇨를 쌓아 90일간 방치하면 항아리에 하얀색 침전물이 고인다. 또 다른 방법은 식초가 든 통에 납 조각을 넣어 하얀 침전물이 생기면 이를 갈아 작은 케이크 모양으로 만들어 햇빛에 말린다.

1850년대 이전 그림의 비밀

검게 변한 백색 ‘안료’는 가짜를 알고 있다

그림5 오염된 강세황의 ‘복천 오부인 86세 초상’.

1850~1940년대 유행했던 신중국산 연분에는 이러한 제조법이 사용되지 않았다. 싼 맛에 전통 비법을 잃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지만, 고려 연분도 이물질에 직접 오염되면 반연현상이 나타난다(그림5). 분명한 것은 1850년대 이전에 그렸다는 조선 그림에서 반연현상이 나타나면 모두 가짜라는 점이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한 정선(1676~ 1759)의 ‘금강내산’은 눈 덮인 산봉우리가 마치 흙 덮인 것처럼 까맣게 변했다. 바로 신중국산 연분으로 그린 가짜다. 정선이 1711년과 1747년에 거듭 그린 ‘금강내산총도’와 비교하면 바로 알 수 있다(그림6). 비록 36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정선은 두 작품에서 산봉우리에 쌓인 하얀 눈을 똑같이 합분으로 그렸다. 여기서 1711년 작품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1747년 작품은 간송미술관 소장품이다.

그동안 ‘검게 변한 백색’을 아무도 몰랐다. 필자는 2008년 ‘진상 : 미술품 진위 감정의 비밀’ 책 38쪽에서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에서 백색안료인 연분은 작품 창작 시기를 밝히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다”고 주장했다. 필자가 ‘1850년대 이전 조선 그림으로 위조된 가짜’를 찾는 근거로 ‘1850년대 이후에 유행한 신중국산 연분’을 처음 밝힌 것이다. 2008년 5월 21일자 ‘국민일보’ 기사는 “연분은 이미 고구려 벽화에서 사용됐다”며 필자 주장을 반박했다. 논점을 흐리는 동문서답이다.

생색내는 것 같지만, 이 정도 비밀은 수제자에게나 알려준다. 이제 독자 여러분도 1850년대 이전 그림에서 수많은 가짜를 찾을 수 있게 됐다.

검게 변한 백색 ‘안료’는 가짜를 알고 있다

그림6 정선의 ‘금강내산’ 가짜와 1711, 1747년 그린 진짜 ‘금강내산총도’ 비교.





주간동아 874호 (p86~87)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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