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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 인생

툭 던진 고수의 한마디 “힘 빼!”

원 포인트 레슨

  •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툭 던진 고수의 한마디 “힘 빼!”

툭 던진 고수의 한마디 “힘 빼!”
절망에 빠진 어느 기업가가 자살을 마음먹었다. 퇴로가 막히고 출구는 보이지 않는 깜깜한 현실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바로 인생으로부터의 도피였다. 소주 한 병을 마시고 농약을 마시려는 찰나 택배가 왔다. 문을 열자 늙은 할아버지가 힘없이 겨우겨우 내뱉은 말이 “누구누구 맞지요”였다. 지공선사(지하철 공짜 할아버지)로 ‘알바’를 하는 노인장이었다. 택배를 받아들고 물었다. “할아버지, 그 연세에 어찌 이런 일을 하십니까?” 그러자 또다시 숨도 쉬기 어려울 것 같은 목소리로 내뱉은 할아버지 말이 그 기업가를 살렸다. “움직일 수 있는 몸, 그 자체가 행복이라오.” 내 후배 이야기다. 힐링이니, 멘토니, 텔링이니 하는 고상한 단어 대신 진실과 순수함이 그를 살렸던 것이다.

아, 행복의 조건이란 건 없구나. 그저 숨 쉬는 몸만 있으면 행복인 것을. 자살 계획을 멈춘 후배는 몸 자체만을 사용하는 것에 만족하기로 하고 다시 일어섰다. 원 포인트 레슨을 받은 것이다. 지혜로운 노인네로부터. 단 한마디면 족하다. 나 자신이 그토록 갈구하는 것이 얻어지는 순간 띵 하고 머리를 때리는 원 포인트 레슨! 해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조건이 맞을 때 이뤄진다. 받을 조건이 된 사람이란 강렬히 원하는 바가 있지만 혼자서는 벽을 깨기 어려운 경우다. 해줄 사람은 그 방면에 지혜가 터져 나름의 가치가 확고해졌을 때 말을 툭 던진다. 가히 한 뿌리에서 나온 다른 열매의 동반성장이다. 하나 됨의 원리를 아는 고수들만의 내공합일이다.

나는 골프채 잡은 지 1년 만에 싱글을 하겠다는 목표를 가졌고 이를 달성했다. 그러자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과 자신감이 오만으로 넘어가 운동을 우습게 보는 맘이 생겼다. 나는 참 대견한 인물이로고! 이것이 건방으로 발전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2년간 보기플레이로 왔다 갔다 하는데 짜증이 났다. 내 딴에는 완벽하다고 생각하는데도 필드에만 나가면 왕년의 신중함과 집중력은 사라지고 보기를 했다. 변태 플레이! 넣지는 못하고 보기만 하는 쪼그라듦. 내기를 할 때도 후반 몇 홀 지나지 않아 지갑이 털렸다고 선언하면서 동참하지 못하는 비참함. 경편(다 잃은 사람에게 던져주는 위로금)을 받을 때 그 민망함.

‘지혜의 망치’로 단단한 벽 허물기



어떤 일에서든 건방을 떨면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오만과 건방이 나를 단련시켰다. 연습장에 나가서 죽도록 두들겨 패고, 이 자세 저 자세로 잘못을 잡으려 해도 도무지 감이 살아나지 않는다. 이 짓을 2년여 동안 했다고 생각해보라. 없는 용돈에 나가기만 하면 털리고, 다음 내기 돈을 마누라한테 어떻게 얻어 쓰나 하는 고민이 들면 참 비참하다. 동반하는 친구들 얼굴이 밉기도 엄청 밉다. 이 신발넘들, 언젠가 복수하리라 하면서도 매번 털리면 환장한다. 꼭대기까지 차오른 절실함으로 전전할 때 기회가 찾아왔다.

대학원 동기 가운데 여자 프로골프 선수가 있었다. 마침 라운딩 한번 하자는 제안이 왔다. 자신이 근무하는 골프장에서 내로라하는 두 분을 모시고 접대골프를 해야 하는데, 인원이 부족하니 대타로 끼워주겠다는 것이다. 비용 걱정 없이 몸만 오라고 했다. 히야, 나보다 잘된 친구를 두는 것이 이리도 황홀한 일이구나.

라운딩을 시작하기 전 모든 자존심과 건방짐을 버리고 정중히 요청했다. “신 프로, 나 요즘 망가져 죽겠는데, 조언 한 가지만 부탁해.” “당연히 그러마” 약속받고 라운딩을 시작했다. 여전히 철퍼덕거리고 왔다 갔다 하면서 전반 홀을 마쳤다. 야속하게도 전반 홀 내내 일절 레슨이 없었다. 아예 내가 있는지 없는지 무시하고 접대하는 두 분에게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섭섭한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내가 주빈이 아니니 대놓고 뭐라 할 수도 없어 그냥 전반 홀을 마쳤다. 무려 10개를 오버하자 초청받은 고위층 두 분이 웃으며 위로해줬다. “김 박사, 잘 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즐겨 보지 그러쇼?” 아무리 대타라지만 플레이 분위기를 망치는 듯해 그것도 영 결례였다.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속으로는 ‘후반전엔 잘해보겠심더’ 하고 이를 뿌드득 갈았다. 후반 시작 전 신 프로가 슬쩍 다가와 한마디를 툭 던졌다. “무슨 놈의 스윙자세가 나무토막이에요? 골프는 어깨에 힘주고 뻣뻣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깨를 항아리같이 둥글게 말아서 회전하세요. 무슨 조폭도 아니고….”

이 한마디가 그동안의 고생을 다 날려버렸다. 내가 모르는 건방짐의 원인이 드러났던 것이다. 아무리 찾으려 해도 숨어 있던 고질병이 프로 눈에는 단박에 보였던 것이다. 아하, 이거였구나! 고수 눈에는 하수가 보인다더니. 얼른 연습스윙을 해보고 한 번만 봐달라고 했다. “어깨는 가슴으로 모으고 양팔은 쭉 뻗어 밑으로 누르세요. 팔과 채가 ㄴ자가 돼도 좋아요.”

후반 홀 첫 번째 드라이버부터 어깨를 오므리고 스윙하자 정말이지 ‘거만’하고 ‘방만’했다. 거리가 만만치 않았고 방향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희열에 들떠 세컨드샷 아이언도 같은 요령으로 실습했다. 투 온. 원 퍼트. 아주 잘 맞고 제대로 된 골프가 펼쳐졌다. 후반전 성적은 오버 1개. 동반한 고위층 두 분이 칭찬을 해댔다.

저녁 식사자리에서 프로에게 고마움 반, 투정 반으로 질문했다. “아니, 처음에 버벅거릴 때 코치 좀 해주지, 전반 끝난 다음에 한마디 해준 건 뭐요?” 그랬더니 “간절함이 보이지 않았어요. 목마르지 않은 사람에게 물을 왜 줍니까” 했다. 순간, 띠잉 하는 깨달음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가르침을 말로는 여러 번 들었지만 몸으로 다가온 느낌은 처음이었다. 절절이 고마움을 되새기면서 마음에 새기니, 로 핸디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여자 프로골프 선수는 신은영으로, 레이크힐스 용인 컨트리클럽과 레이크힐스 안성GC 총지배인으로 근무하고 있다.

가르침과 베풂의 중요성

가르침과 베풂에도 격이 있다. 가르침의 권위는 박사학위다. 박사학위를 영어로 쓰면 Doctor of Philosophy(Ph.D.)다. 그냥 단어만 외운 사람은 ‘철학 의사’라고 이해할 것이다. 여기서 닥터란 뜻의 라틴어 어원은 ‘Docere’로, 자유로운 사람이란 뜻이다. 배우고 가르치는 데 자유로워 걸림이 없는 사람의 자격, 바로 박사다. 박사보다 더 격이 있는 사람은 ‘밥사’다. 밥을 잘 사주는 사람이다. 이는 베풂의 격이다. 베풂의 하격은 재물 보시, 중격은 몸 보시, 상격은 법 보시다.

밥사보다 더 높은 사람은 봉사다. 앞 못 보는 사람이 아니라 헌신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재물 보시도 격이 있지만 몸 보시가 더 격이 있다는 소리다. 봉사보다 더 높은 사람, 최고위급 자유를 가진 사람은 감사다. 사람 뒤를 캐는 감사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이는 재물 보시, 몸 보시 위에 자리한 법 보시다. 감사할 줄 알고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이 최고 자유를 가진 자격이다. 자기 자신에게 감사하는 것이 먼저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완전한 인격체다. 이런 사람을 홍익인간이라고 부른다. 홍익인간이 돼가는 길이 바로 도다.

도를 알려고 이치를 배우지만 이치를 알면 도리가 생긴다. 도리를 알게 해주는 조건, 바로 원 포인트 레슨이다. 그 어떤 학위 논문이나 스승의 말도 절실함과 간절함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이동풍이다. 원 포인트 레슨으로 아마추어로선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이후 나는 박사학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오로지 홍익인간으로서의 자격증인 봉사와 감사를 실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일 따름이다.

나이 들수록 몸가짐을 조심하라는 격언 가운데 ‘원하지 않으면 충고하지 말라’는 것이 있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는 격언도 있다. 이는 ‘과거 경험만 되뇌면 늙어간다’는 증거의 말로도 사용된다. 어떤 분야에서든 30여 년은 해야 도사 소리를 듣는다. 10년 정도는 ‘좀 안다’고, 20년 정도는 전문가라 불러도 괜찮다.

도사급이 되면 원 포인트 레슨의 진리를 안다. 모든 삶의 분야에서 그렇거늘, 하물며 인생 전부에서는 오죽하랴. 60여 년을 살았는데도 지혜가 없고 원 포인트를 짚어줄 줄 모른다면 인생 헛산 것이다. 청하지 않았는데도 사설만 줄줄이 늘어놓는 노인네가 되기 싫다면 원 포인트 레슨에서 배울 일이다.



주간동아 874호 (p64~65)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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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06호

202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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