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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학 박사 1호 이동천의 ‘예술과 천기누설’

뻔뻔 당당한 위조꾼 ‘소루 이광직’을 아십니까

위조작품에 과감히 도장 찍어 신분 노출…밑그림 하나로 여러 화가 농락

  •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

뻔뻔 당당한 위조꾼 ‘소루 이광직’을 아십니까

뻔뻔 당당한 위조꾼 ‘소루 이광직’을 아십니까

그림1 소루가 그린 김홍도의 가짜 ‘수류화개’. 그림2 소루가 그린 김홍도의 가짜 ‘월하고문’. 그림3 ‘소루(小樓)’ 도장. 그림4 ‘이광직인(李光稷印)’ 도장.

미술품 감정은 야전 학문이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미술품 경매는 최고 학습장이다. 필자는 1993년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중국 서화 경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미술품 경매를 체험했다. 매번 경매장에서 느끼는 것은 시공을 초월하려는 위조자들의 줄기찬 노력이다. 관록이 쌓인 위조자는 최첨단 과학기술을 사용하고, 신참은 뿔자를 10cm 크기로 잘라 들고 다니면서 서화작품에 찍힌 도장 크기를 잰다.

미술시장에 널린 게 위조자고 사기꾼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처럼 막상 증거자료를 수집하려면 쉽지 않다. 위조자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어도 떳떳하지 못하기에 대부분 기록이 없는 것이다. 오직 남겨진 가짜 작품만이 위조된 사실을 말할 뿐이다. 어떠한 위조자도 자신이 만든 가짜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고 하지 않는다. 극히 예외로, 세상을 조롱하며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를 알았으면 하는 위조자도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활동

로마 독일역사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했던 독일인 볼프강 헬비그(1839~1915)는 1886년 ‘최초로 라틴어가 새겨진 기원전 6세기 장식핀’을 위조했다. 그는 위조를 알리는 특별한 메시지로, 장식핀에 ‘위조됐다’는 뜻의 라틴어 단어 ‘fhaked’를 자신의 필체로 새겼다. 이 가짜 장식핀은 1887년 권위 있는 고고학 저널 ‘로마소식’에 발표되며 학계에서 입지를 굳혔다. 이 장식핀은 80년대까지 수백 차례 대중에게 진짜로 소개됐다. 누구도 위조자의 대담한 행동에 의심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보다 더 당당하게 자신을 노출한 위조자가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소루(小樓) 이광직(李光稷)이다. 항상 잡힐 위험이 도사리는 미술시장에서 위조자가 처음부터 ‘나 잡아봐라’ 하는 식으로 자신을 밝히면서 작품을 위조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무엇인가 주변의 변화된 상황에 따른 상실감에 자극받아 꼭꼭 숨어야 하는 속성을 지닌 위조자가 자신의 흔적을 위조 작품에 과감히 노출한 것이다.



2005년 5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기획한 ‘단원 대전’에서 필자는 소루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김홍도(1745~?) 작품으로만 꾸민 전시였는데 ‘수류화개’(그림1)와 ‘월하고문’(그림2)이 분명히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수류화개’는 ‘단원(檀園)’이라 쓰고 그 아래에 ‘소루(小樓)’(그림3) 도장을 찍었으며, ‘월하고문’은 작가 도장이 찍혀야 할 위치에 ‘이광직인(李光稷印)’(그림4)을 찍었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을 대담하게 한 것이다.

더 놀라웠던 일은 ‘단원 대전’ 전시가 열리고 얼마 되지 않아 소루가 위조한 또 다른 김홍도의 가짜 작품이 경매에 나온 것이다. 2005년 7월 서울옥션 제96회 한국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에 출품된 김홍도의 ‘화첩’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은 시작가 10억 원에 나왔으며, ‘단원 풍속도첩’이란 제목을 달고 단행본으로도 출간됐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단원 김홍도 미공개 화첩 경매’를 검색하면 ‘화첩’ 작품 전부와 당시 관련 보도를 볼 수 있다.

뻔뻔 당당한 위조꾼 ‘소루 이광직’을 아십니까

그림5 소루가 그린 김홍도의 가짜 ‘지팡이를 든 두 맹인’. 그림6 소루가 그린 김홍도의 가짜 ‘수차도’. 그림7 소루가 그린 이수민의 가짜 ‘강상인물도’.

김홍도의 ‘화첩’ 중 ‘유상독조’에는 소루 도장 하나만 찍었고, ‘화조도’에는 소루 도장과 ‘김홍도인(金弘道印)’을 같이 찍었다. ‘계색도’와 ‘지팡이를 든 두 맹인’(그림5)은 소루 도장과 ‘신(臣) 홍도(弘道)’ ‘취화사(醉畵士)’ 도장을 함께 찍었다. 소루 도장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김홍도의 ‘수류화개’에 찍힌 소루 도장과 같다. 김홍도와 소루는 분명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필자가 2008년 ‘진상 : 미술품 진위 감정의 비밀’이란 책에서 소루를 논의하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소루 도장이 찍힌 김홍도 작품을 의심한 적이 없다.

소루가 만든 가짜 작품에는 당시 서화작품의 도장 찍는 방식을 무시한 예가 또 있다. 작가는 자신의 서화작품에 성명, 호, 자, 본관을 새긴 도장을 일정한 격식에 따라 찍는다. 소루는 작가 서명 아래에 이러한 도장 대신 ‘글귀를 새긴 도장’인 한장(閒章)을 찍었다. 그가 사용했던 것으로는 ‘와간운(臥看雲)’과 ‘서화지기(書畵之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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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8 윤두서의 가짜 ‘석공공석도’. 그림9 강희언의 가짜 ‘석공공석도’.

이렇듯 소루는 격식에 맞지 않게 위조한 것외에 보편적 위조 방식도 썼다. 모창을 잘하는 사람이 여러 가수 목소리를 흉내 내듯, 위조자는 여러 화가 작품을 위조한다. 특히 주목할 것은 밑그림 하나로 버젓이 여러 화가의 그림을 위조하는 방식이다. 시작가 10억 원에 나온 김홍도의 ‘화첩’에 실린 ‘수차도’(그림6)와 서강대 박물관이 소장한 이수민(1783~1839)의 ‘강상인물도’(그림7),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김홍도의 ‘옥순봉’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엄치욱의 ‘옥순봉’ 등은 소루가 밑그림 하나로 그린 가짜들이다.

참고로, 소루는 아니지만 위조자 한 사람이 밑그림 하나로 같은 시기에 그린 그림 중 하나가 최근 전시에 나왔다. 바로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의 ‘옛사람의 삶과 풍류’전에 나온 윤두서(1668~1715)의 ‘석공공석도’(그림8)다. 이 그림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강희언(1710~1784)의 ‘석공공석도’(그림9)는 화법은 물론 크기, 창작 재료까지 똑같다. 위조한 게 아니라면 이렇게 똑같을 수가 없다. 위조 목적 없이 후대에 그려졌다면, 베낀 그림에 화가의 개인적 특징이나 시대적 요소가 반드시 반영되는 법이다.

소루와 함께 가짜를 만든 동료들

그림을 많이 그리다 보면 위조자라도 필력이 늘고 필획도 좋아져 창작 수준이 향상된다. 소루가 위조한 그림에서 가장 잘된 것은 서울 한남동 리움이 소장한 김홍도의 ‘단원절세보첩’이다. 이 작품은 보물 제782호로 지정됐다.

소루의 위조 기술은 소루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았다. 먼저 소루와 함께 가짜를 만든 동료가 있었고, 소루가 만든 가짜를 김홍도나 신윤복 등의 그림으로 착각한 후대 위조자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소루는 한국 미술사를 바꾼 전문 위조꾼이다. 가짜를 모르는 미술사 연구로는 소루가 만든 가짜나, 이 가짜에 영향을 받은 가짜를 찾을 수 없다. 가짜와 진짜를 가리는 것은 미술품 감정에서 기본이다. 가짜는 작품 감정에서 중점 연구 대상이다. 진짜를 알고 싶으면 반드시 가짜를 알아야 한다. 가짜를 모르고는 진짜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13.01.21 872호 (p66~67)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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