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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Ⅰ쌍용차의 절망과 희망 02

“제발 부탁이다 흔들지 마라, 살고 싶다”

김규한 쌍용자동차 노조위원장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제발 부탁이다 흔들지 마라, 살고 싶다”

“제발 부탁이다 흔들지 마라, 살고 싶다”

경기 평택역 광장에 설치된 쌍용차 천막농성 현장.

김규한(45·사진) 쌍용자동차(쌍용차) 노조위원장은 20년간 쌍용차에서 일했다. 1994년 입사 당시 쌍용그룹 계열사였던 회사는 대우, 워크아웃, 법정관리, 상하이자동차, 법정관리를 거쳐 현재 마힌드라그룹에 이르기까지 4~5년에 한 번씩 새 주인을 맞았다. 그때마다 치열한 노사분규가 벌어졌고, 김 위원장은 늘 그 중심에 있었다. 2006년 쌍용차의 첫 옥쇄파업 당시 노조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아 파업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투쟁으로 달게 된 ‘별’이 6개. 그러나 1월 15일 경기 평택시 쌍용차 공장에서 만난 그는 “쌍용차에 다닌 이래 요즘이 가장 힘들다. 노동운동에 신물이 난다”고 말했다. 1월 10일 회사와 무급휴직자 455명에 대한 복직에 합의한 뒤 불어닥친 후폭풍 때문이다. 그는 “우리 조합원들은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무급휴직 동료들과 일자리와 급여를 나누기로 결정한 거다. 언젠가는 이 진실이 알려지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국정감사 피하려는 꼼수 쓰지 않아

▼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쌍용차에 대한 국정조사를 피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혀 그렇지 않다. 노사가 본격적으로 무급휴직자 복직 문제를 논의한 건 지난해 가을부터다. 9월 내가 노조위원장으로 당선되면서 새로운 노조집행부를 구성했다. 내부적으로 무급휴직자를 복직시켜야 할 때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 문제를 풀려고 가장 먼저 한 조치는 무급휴직자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11월 열린 대의원선거에서 그들 몫의 대의원도 3명 선출했다. 이 조치가 교두보가 돼 노사합의가 급물살을 탔다. 무급휴직자는 3월 1일 회사에 복귀하지만 이미 그들을 대표하는 대의원이 노조에서 활동 중인 셈이다. 만일 꼼수를 부릴 작정이었다면 이들에게 의결권을 가진 대의원 자격을 줬겠는가.”

▼ 그렇다면 노사합의 발표가 오히려 너무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선거(대선) 때문이었다. 대선 기간 중 쌍용차가 ‘무급휴직자 복직’ 합의를 발표했다면 괜찮았을까.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샀을 것이다. 그걸 피하려고 발표 시기를 늦췄더니 이번엔 국정조사를 피하려 한다는 또 다른 오해를 사고 있다. 힘들다.”

▼ 국정조사를 피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는 뜻인가.

“국정조사 실시 여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치권에서 결정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 다만 노조 측 의견을 묻는다면 분명히 반대다. 우리는 이미 국정감사를 받았고, 청문회장에도 섰다. 정치권에 불려나가는 일이 반복되면 대외 신인도에 문제가 생긴다. ‘저 회사는 대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저렇게 계속 조사를 받나’ 생각하지 않겠나. 그런 회사 차를 누가 믿고 구매하겠는가.”

▼ 정치권이 추진하는 국정조사 대상은 정확히 말하면 ‘쌍용차’ 사측이다. 노조위원장이 나서서 회사를 ‘우리’라고 하는 것은 뭔가 어색하다.

“정치권이 겨냥하는 그 쌍용차 구성원이 바로 우리 조합원이기 때문이다. 회사 경영에 문제가 생기면 조합원 고용이 불안정해진다. 그러니 회사도 노조도 ‘우리’일 수밖에 없다. 밖에서는 이런 나를 어용이라고 얘기하는 것으로 안다. 이해할 수 없다. 다 때려 부수고 조합원을 거리로 내몰아야만 ‘민주’인가. 나를 뽑은 조합원들은 내게 ‘우리의 고용안정과 복지를 책임져달라’고 했다.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그럼 2009년 파업 당시 회사를 떠난 2646명 중 무급휴직자 455명을 제외한 이들은 어떻게 하나.

“국정조사를 한다고 해서 그들이 바로 회사에 돌아올 수 있는 건 아니다. 많은 분이 그 부분을 오해한다.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청문회를 했을 때, 혹은 국정감사를 했을 때 어떤 식으로든 복직이 시작됐어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되지 않은 건 회사가 정상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쌍용차가 많이 팔리고 생산라인이 원활하게 돌아가야만 비로소 동료들이 돌아올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만드는 게 2009년 대량해고 당시 살아남아 회사에서 계속 일하게 된 우리 책무라고 생각했다. 다른 조합원 역시 같은 마음으로 참고 견뎠다. 그랬기에 이번에 부족하나마 무급휴직자 복직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믿는다.”

일과 급여 나누기 조합원들 공감

“제발 부탁이다 흔들지 마라, 살고 싶다”
▼ 무엇을 참고 무엇을 견뎠다는 말인가.

“1월 8일 우리 공장 조립2팀(체어맨과 로디우스) 생산라인에서 조합원 한 분이 목을 맸다. 동료가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는데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태다. 현장에서 발견한 유서에는 ‘꼭 정년을 채우려 했는데 여기까지인 것 같다. 무잔업 3년은 너무 길고 힘들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조립2팀 생산라인은 아직도 하루에 4~6시간씩 가동을 중단한다. 수당이 거의 없어 그분은 20년이나 근속했는데도 월 급여가 세후 130만~150만 원에 불과했다. 밖에서는 ‘살아남은’ 우리가 여기서 호의호식하는 줄 아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게다가 ‘동료들 다 쫓아내고 저들끼리 잘 지낸다’는 일부 시선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평택 토박이인 나도 한동안은 거리에서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다. 그러나 심리치료나 상담 같은 걸 받은 적은 없다. 우리보다 더 힘든 이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그리고 회사 밖으로 내쫓긴 동료들 생각에 힘든 내색조차 못 하고 참기만 했다. 저마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던 조합원들이 이번 일을 접한 뒤 큰 충격을 받았다.”

▼ 회사를 떠난 노동자와 그 가족 중에서도 이미 23명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나. 죽음 행렬이 이어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다.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다. 당시 회사를 떠난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고, 그래서 그동안 가만히 있었다. 우리는 살았으니까. ‘그래, 욕해서 시원해진다면 욕하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지난 3년여 동안 그렇게 일방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주장 때문에 우리 조합원들이 더 힘들어진다면 더는 참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쏟아지는 온갖 비난에도 ‘국정조사 반대’ 의사를 천명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쌍용차 안에서 일하는 우리도 노동자고 국민이다. 더는 회사를 흔들지 말아달라, 힘든 시간을 묵묵히 보내온 우리 조합원을 또 한 번 고용불안으로 내몰지 말아달라는 게 내가 세상에 말하고자 하는 전부다.”

▼ 이런 상황에서 무급휴직자 복직이 또 다른 ‘노노갈등’을 야기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도 많다.

“솔직히 회사 내에 무급휴직자 복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복귀하는 동료들과 노동시간을 나누면 수당이 줄어 결과적으로 급여 삭감 효과가 나타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해고된 이들에 대해 갖는 미안한 마음이 그런 우려보다 더 크다. 우리 모두는 2009년 전까지 대부분 10년 이상 고락을 함께한 동료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합원의 평균 연령이 41.7세다.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우리의 일과 급여를 나눌 수 있다면 나누자는 데 공감한다. 이런 마음이 모이면 이번 복직이 갈등 없이 잘 마무리되리라고 믿는다. 그 결과로 공장 정상화가 더욱 빨리 이뤄진다면 머지않아 희망퇴직자와 해고자 복직도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날이 빨리 오도록 많은 사람이 쌍용차 흔들기보다 살리기 쪽으로 힘을 모아줬으면 좋겠다.”



주간동아 2013.01.21 872호 (p28~29)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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