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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이형석의 영화 읽기

M16 런던 본부에 가스 폭발 테러

샘 멘디스 감독의 ‘007 스카이폴’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M16 런던 본부에 가스 폭발 테러

M16 런던 본부에 가스 폭발 테러
‘007’ 시리즈 하면 자동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요즘은 엠블럼을 가리면 도대체 어느 회사에서 만든 자동차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신차라고 해도 어느 한두 곳은 어디서 많이 본 디자인이다. 기능이나 실내 디자인까지 따지면 A회사가 B회사 자동차를 베낀 것인지, B회사 자동차가 A회사 자동차를 닮은 것인지 헷갈린다. 애플과 삼성의 특허 소송에서 보듯 스마트폰이나 태플릿PC도 경쟁사 제품끼리 닮아가는 건 마찬가지다.

‘오리지널’을 확인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다. 특히 수입차와 점점 닮은꼴이 돼가는 국내 자동차 디자인을 두고 제조사는 “표절이 아니라 트렌드”라고 말한다. 일면 이해가 간다. 영화도 그렇다. 스토리와 영상만으로는 어떤 영화 후속편인지 알 듯, 모를 듯할 때가 많다. ‘원조’와 ‘아류’, ‘진품’과 ‘짝퉁’이 구분되지 않는 건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1962년 1편을 시작으로 50년간 장수한 첩보영화의 클래식 ‘007’ 시리즈의 23번째 작품 ‘007 스카이폴’이 개봉했다. 극중 ‘원본’ 그대로 등장하는 영국의 클래식 스포츠카 애스턴마틴처럼 첩보영화의 ‘원조’임을 과시하는 대목이 여럿 눈에 띈다. 그러면서도 영화 전반에 걸쳐 시류와 트렌드를 적절히 반영했다. 영화 초반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이용한 추격 신은 ‘본’ 시리즈의 영향이 느껴진다. ‘본 아이덴티티’에서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 ‘본 레거시’로 이어진 ‘본’ 시리즈는 매회 색다른 자동차 추격 신을 만들어냄으로써 그것이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현대적인 악당이 클래식에 생기를

영국 첩보기관 M16의 런던 본부가 세계 각 지역에 있는 위성과 폐쇄회로(CC)TV 네트워크를 이용해 제임스 본드(대니얼 크레이그 분)와 공조작전을 펼치는 방식도 ‘본’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본’ 시리즈에서 제이슨 본은 위성과 인터넷으로 연결된 감시망의 추격을 받는다. 주인공이 지구 어디에 있든 이동경로가 샅샅이 파악된다.



젊은 관객이 ‘007 스카이폴’을 보면서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받는다면 그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제임스 본드의 고향인 영국 런던과 스코틀랜드뿐 아니라 중국 상하이와 터키 이스탄불로 이어지는 광활한 배경이 마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어느 한 편을 보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21세기 슈퍼히어로 영화의 획을 그은 ‘다크 나이트’ 시리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007 스카이폴’의 국내 홍보자료를 보면 악당 ‘실바’를 아예 ‘제2의 조커’라고 표현했다. ‘배트맨’ 시리즈의 영원한 악당이자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의 연기로 더 유명해진 그 ‘조커’ 말이다. ‘아메리칸 뷰티’ ‘로드 투 퍼디션’ ‘레볼루셔너리 로드’ 등을 통해 시대를 넘나들며 중산층 가족이 겪는 위기를 뛰어난 드라마로 보여준 샘 멘디스 감독은 ‘007’ 시리즈에 현대적인 악당을 투입함으로써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007 스카이폴’은 제임스 본드가 등장해 카메라를 향해 총을 쏘면 스크린이 피로 물드는 전통적인 오프닝이 나오기 전 박진감 넘치는 액션 세례로 포문을 연다. 이 액션신은 5분여 동안 오토바이로 고속도로를 내달리고 시장통을 휘저으며 주택가 지붕을 질주하는, 그야말로 숨 쉴 틈 없는 추격전을 거쳐 달리는 기차 위 격투로 마무리된다. 제임스 본드와 엉켜 싸우는 적을 겨누던 또 다른 현장요원 이브(나오미 해리스 분)는 본드가 맞을 위험성이 있는데도 MI6 국장 ‘M’(주디 덴치 분)의 지시에 따라 발포한다. 결국 총에 맞은 본드는 벼랑 위 다리를 달리던 기차에서 떨어진다. M16에는 본드가 작전 중 사망한 것으로 보고된다.

하지만 그는 간신히 목숨을 구하고 휴양지에서 은거 중이다. 그러다 MI6 런던 본부에 가스 폭발 테러가 일어나자 업무에 복귀한다. M은 런던 본부 폭발 테러에 이어 테러조직에 침투해 암약하던 비밀요원들의 명단이 유출됐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제임스 본드를 다시 한 번 작전에 투입한다. 하지만 잇따른 작전 실패로 M은 퇴임 요구를 받는 한편,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본드 역시 새로운 작전을 수행하려면 그 전에 체력 및 메디컬 테스트와 정신 감정을 통과해야 한다. 어렵사리 절차를 통과한 본드는 일련의 사건이 한때 이름을 떨쳤던 요원 실바(하비에르 바르뎀 분)의 소행임을 알게 된다. M에 대한 퇴진 압력이 거세지면서 본드는 점차 고립되고, 어둠에 숨었던 적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최대 위기를 맞는다.

M16 런던 본부에 가스 폭발 테러
냉전시대 첩보기관의 업보

멘디스 감독은 ‘007’ 시리즈가 허용한 첩보액션 장르의 공식은 정확히 지키면서도 제임스 본드와 첩보기관의 수장 M, 악당 실바 등 주요 등장인물이 겪는 정체성 위기를 탁월하게 묘사했다. 특히 실바는 냉전시대 해체 이후 각종 할리우드 액션영화에 ‘악마’로 등장해 각광받았던 러시아와 동유럽 구체제의 잔당이나 중동 테러리스트, 미국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라크나 북한이 영화적으로나 시대적으로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그러고는 조커나 최근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베인 같은 ‘상처받은 개인’이나 ‘왜곡된 인성과 비틀린 자아를 가진 확신범’이 악한으로서 훨씬 드라마틱하고 설득력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인다.

M은 영화 중간중간 문득 과거의 ‘업보’를 술회한다. 그가 직접 말하진 않지만, 영화는 그 업보가 냉전시대에 세계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저지른 수많은 살인과 폭력임을 암시한다. 실바는 그 부산물이다. M이 청문회에서 하는 이야기는 ‘공적’을 잃어버린 시대의 고뇌와 액션영화의 트렌드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이제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적은 국가도 아니고, 정치 지도자도 아닙니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제복도 입지 않은 개인입니다. 적의 존재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주간동아 2012.10.29 860호 (p64~65)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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