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5

2012.09.17

레임덕은 없다

28회 남북연합

  • 입력2012-09-17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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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여기 온다고?”

    유명환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정일이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평양 주석궁 집무실 안이다. 2010년 10월 5일,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과 대통령실장 조순형이 김정일과 마주보고 앉아 있다. 방금 유명환은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의 북한 방문 의사를 밝힌 것이다.

    “예, 위원장님.”

    유명환이 정중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방문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무슨 이유로?”

    김정일의 표현은 직설적이다. 그러나 조금 익숙해지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러자 대답은 조순형이 했다.

    “예. 대중국 관계 때문입니다, 위원장님.”

    “지금 대라고 했소?”

    불쑥 김정일이 묻자 조순형이 긴장했다가 곧 대답했다.

    “예. 큰 대(大) 자가 아니라 대할 대(對) 자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의자에 등을 붙인 김정일이 옆에 앉은 외무상 박의춘을 보았다.

    “빨리 날짜 잡도록 하라고.”

    # 중국은 북한 위쪽의 이른바 동북3성(省), 즉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에 대한 동북공정을 실시해오고 있다. 정부 주도로 진행하는 역사편찬 작업에 발해는 물론이고 고구려까지 중국 역사에 편입하고 있다. 한국 측에서는 그것을 뻔히 보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왜냐하면 그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이 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북한이 중국에 동조한다고 믿는 사람도 있는 형편이다. 더욱이 북한은 동해 쪽 나진·선봉지구를 중국에 50년간 임대함으로써 동북아의 새로운 ‘홍콩’으로 탄생할 것이란 희망에 부풀어 있으나, 이것은 중국이 북한을 ‘합병’하는 첫 수순일 수도 있다. 그래서 중국 조선족 동포들 사이에 북한이 머지않아 동북아의 네 번째 중국 성, 즉 조선성(朝鮮省)이 될 것이라는 소문도 퍼진 상황이다.

    2010년 10월 7일, 청와대 소회의실에서 이명박이 주최한 당정협의회가 열렸다. 세우리당에서는 당대표 박근혜와 원내대표 정몽준, 총무 김무성과 홍준표 등 최고위원 다섯 명이 참석했고 정부에서는 총리 이회창과 어제 북한에서 돌아온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 국방부 장관 김태영과 통일부 장관 현인택, 그리고 국정원장 장세동이 나왔다.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실장 조순형, 외교안보수석 김성환이 배석하고 있다. 오늘 주제는 어제 북한에서 돌아온 유명환으로부터 ‘남북경협’에 대한 보고를 듣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이 인사를 마치고 나서 말했다.

    “3국 동맹으로 일본을 견제해 배상금을 받아내게 됐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정리해야 합니다.”

    모두 시선만 주었는데 당(黨) 측은 웬 뜬금없는 소리인가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전 국민이 중국과의 동맹에 고무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서약이 아닌 일본 견제용의 일시적 동맹관계라고 해도 그렇다. 이명박이 말을 이었다.

    “어제 외교부 장관이 평양에 다녀온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외교부 장관은 김 위원장을 만나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순간 당 측 요인들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인 것이다. 지난번에는 김정일이 답방 형식으로 서울에 왔으니 이번에는 이쪽에서 가는 것이 맞다. 이명박의 시선이 박근혜에게로 옮겨졌다.

    “아무래도 이번 방북은 남북연합의 기초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박 대표께서도 이 작업의 첫 단계부터 참여하시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명박이 말하자 박근혜가 심호흡을 했다. 역사적인 과업에 동참하자는 것이다. 박근혜가 정색하고 대답했다.

    “예,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 소문이 안 날 리가 없다. 각료들은 그렇다고 해도 당료들의 입이 싸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식의 회의는 아무리 입단속을 해도 내용이 밖으로 샌다는 사실을 이명박이 모를 리 없다. 그것을 또한 노련한 정치인들이 모르겠는가. 은근히 세상으로 퍼뜨려지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더구나 기밀회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북연방인가?”

    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홍준표가 묻자 남경필이 고개를 갸웃했다. 남경필이 홍준표의 차에 같이 타고 있다.

    “글쎄, 연방까지 가겠습니까?”

    남북연방은 DJ 정권에서 내놓았던 통일 수순이다. 남경필이 말을 잇는다.

    “남북연합이라고 했습니다. 연방이 아니었어요.”

    “글쎄, 그게 그거지 뭐.”

    했다가 홍준표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요즘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이거, 이대로 나가다간 자고 일어났더니 통일이 되었다고 하게 생겼어.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깜빡했다간 병신되겠다니까.”

    # 남북한과 일본은 2010년 8월 29일 ‘한반도와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전쟁배상금’ 지급에 관한 합의를 했다. 8월 29일은 조선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지 딱 100년이 되는 날이다. 1910년 8월 29일 이완용 등 역적들이 조선 3대 총감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한일병합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조선은 역사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8월 29일을 ‘국치일’로 제정했던 터라 이번 8월 29일의 배상금 합의는 ‘국치’를 보상할 만했다. 일본은 남북한에 배상금 475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약속했으며 ‘종군위안부’에 대해서는 일왕과 총리가 사과를 했다. 이제 8월 29일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65년 한이 풀린 날이 되었다.

    또한 일본은 독도가 한국령임을 선언했다. 뒤늦게 한국이 반환 요청한 대마도에 대해서는 추후 협의하기로 했다. 중국은 일본으로부터 655억 달러의 배상금을 받기로 합의했으며 센카쿠 열도를 회수한 것은 물론이다.

    이곳은 평양 대동강변 김정일의 제37 초대소 안. 원탁에 둘러앉은 김정일과 측근들이 파티를 벌이고 있다. 그동안 파티를 삼갔던 김정일이 일본의 전쟁배상금 결정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475억 달러 중에서 북한 몫은 320억 달러다. 이명박은 배상금 475억 달러를 어떻게 남북한이 나눌지 여야 수뇌부와 상의했고, 먼저 북한 측 의견부터 듣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때 북한 측 요구가 320억 달러였다. 남조선 측은 두말 않고 합의했다. 조금 더 부를 걸 하는 욕심이 마음속에서 일어났지만 김정일은 남조선의 통 큰 양보에 마음이 풀린 상태다. 자신도 통이 크다고 자부하는 터라, 며칠 전 유명환이 다녀갔을 때도 호의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자, 들지.”

    하고 김정일이 코냑 잔을 들고 말하자 측근들이 일제히 술잔을 들었다. 간부들 대표로 장성택이 소리쳤다.

    “만수무강하십시오!”

    그러자 간부들이 일제히 따라 외친다.

    “만수무강은 뭘.”

    코냑을 한 모금 삼킨 김정일이 쓴웃음을 짓는다.

    “백 살까지만 살아도 원이 없겠다.”

    혼잣말이어서 옆에 앉은 김영남도 듣지 못한 것 같다. 다시 주위가 조용해졌을 때 김정일이 말했다.

    “일본에서 배상금이 들어오면 공장부터 지어야겠어.”

    “그렇습니다.”

    여럿이 맞장구를 쳤을 때 김정일의 시선이 장성택을 스치고 지나갔다. 왼쪽으로 두 사람 건너편에 앉은 장성택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술잔을 내려놓은 김정일이 물었다.

    “이봐, 장 부장. 할 말이 있나?”

    장성택은 노동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보위부 등 모든 보안기관을 감독, 장악해왔다. 국내외 정보는 장성택이 주무르고 있는 것이다. 그때 장성택이 말했다.

    “고려시에서 부정부패 행위자가 적발되고 있습니다, 위원장 동지.”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장성택의 목소리가 울렸다.

    “물론 남조선의 썩은 물에 오염된 것입니다. 입주민은 물론이고 시 행정청에 근무하면서 부정을 저지르는 불순분자도 있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다시 술잔을 든 김정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장성택을 보았다. 정색한 표정이었으므로 장성택은 상반신을 세웠다.

    “특히 F지구가 심합니다. 거주자와 행정청 요원이 짜고 남조선 투자자한테 웃돈을 받아 영업지역을 팝니다. 장소가 좋은 곳은 평당 100만 원씩 웃돈이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웃돈이라면 프리미엄이군.”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100평짜리 영업장이면 웃돈 1억을 받아먹는다는 말씀입니다.”

    “으음.”

    김정일이 신음을 뱉었을 때 장성택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F지구는 시 행정청에서 책정해준 지가보다 암거래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랐다고 합니다. 위치가 좋은 곳은 다섯 배가 되었다는 곳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정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장성택을 보았다.

    “그 다섯 배로 뛴 지가를 누가 다 먹나?”

    “예, 행정청 요원하고 대지와 주택을 배정받은 인민이지요.”

    “물론 남조선 놈들은 그곳에 새 건물을 짓고 영업하면서 돈을 벌겠지?”

    “예, 지도자 동지. 투자한 자본을 빼내려고 기를 쓰겠지요.”

    F지역은 유흥업소가 들어서는 곳이다. 그곳에 거주하는 북한 주민은 시 행정청 허가를 받고 투자자와 동업 형식으로 주택을 개·보수해 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랬더니 경쟁이 일어나면서 웃돈이 붙고 부정이 시작되었다. 금방 오염이 되더니 몇 달도 안 되어서 이제는 먼저 웃돈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그때 김정일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야. 그런데 속도가 좀 빠른 것 같군.”

    # 2010년 10월 15일, 개성을 거쳐 고속도로를 이용해 이명박이 평양에 입성했다. 김정일은 평양시 입구 개선문 앞에서 이명박을 맞았는데 수만 명의 환영 인파가 운집했다. 차에서 내린 이명박 손을 잡으며 김정일이 웃었다.

    “이것이 우리 식입니다. 이해하십시오.”

    지난번 김정일의 한국 방문 때는 도로가에 환영 인파가 보이지 않았다. 동원하지 않았다기보다 그러지 못하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김정일과 함께 붉은색 카펫이 깔린 연단에 올라 인파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명박 옆에는 청와대에서 지도자 수련을 하는 김정은도 서 있다.

    “나 오래 못 삽니다.”

    손을 흔들던 김정일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으므로 이명박은 잠시 못 알아들었다. 그때 김정일이 몸을 가깝게 붙이더니 다시 말했다.

    “이 대통령, 나 오래 살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분명하게 들렸으므로 이명박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그때 김정일이 발을 떼면서 말했다.

    “자, 인사는 이만하면 되었습니다. 인민들한테 얼굴 보였으니 가십시다.”

    연설 준비까지 해왔지만 이명박은 잠자코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단상에 올랐던 두 정상과 일행이 내려오자 군중의 함성은 더 높아졌다. 김정일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지만 이명박의 웃음 띤 표정은 조금 일그러져 있다. 앞에는 김정일의 전용 벤츠가 대기하고 있었고, 둘은 뒷좌석에 올랐다. 연단 밑에 늘어선 수십 대의 검은색 벤츠는 장관이었다. 차가 출발하자 이명박이 머리를 돌려 김정일을 보았다.

    “위원장님, 아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자 김정일이 정색했다.

    “내가 살날이 몇 달 안 남은 것 같습니다.”

    “아, 아니, 그건….”

    놀란 이명박이 말을 멈추고는 숨을 들이쉬었다.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안다. 정보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당사자 입으로 들으니 놀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때 김정일이 말을 이었다.

    “이번에 중국 관계 때문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 털어놓으려고 작정했지요.”

    “위원장님, 어떻게….”

    “혈관 계통입니다. 오래되어서 내가 내 병을 잘 압니다.”

    자르듯 말한 김정일이 길게 숨을 뱉고 나서 말을 잇는다.

    “이번에 남북관계부터 매듭을 지읍시다. 이 대통령이 이렇게 오신 것도 남북 문이 트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좀 불편한데.”

    후진타오가 지그시 웃으면서 시진핑을 보았다. 시진핑은 정색한 얼굴로 후진타오의 가슴께만 본다. 그 옆쪽에 앉은 외교부장 양제츠는 몸을 세운 채 굳어 있다. 지금 이명박의 북한 방문 이야기를 하던 참이다. 옆쪽 TV 화면에는 평양 시가지를 달려가는 검은색 벤츠 대열이 비치고 있다. 엄청난 장례차 행렬 같다. 그때 후진타오가 머리를 돌려 양제츠를 보았다. 어느덧 정색하고 있다.

    “대중국 관계 협상이라면 어떤 이야기일 것 같나?”

    “예, 경제특구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양제츠가 들고 온 서류를 펴며 말을 잇는다.

    “동북공정에 관한 이야기를 이명박 씨가 꺼낼 가능성도 있습니다.”

    “둘 다 우리한테는 불편한 이야기군.”

    입맛을 다신 후진타오가 시진핑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이봐요, 시 부주석.”

    “예, 주석 동지.”

    “이명박이 제의한 3국 동맹으로 우리가 재미 좀 봤지만 이명박은 믿을 인간이 못 됩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제 어미도 팔 인간이지.”

    입맛을 다신 후진타오가 말을 바꾼다.

    “하루아침에 등을 찍을 수 있는 인간이오. 조심해야 합니다.”

    “그자 임기는 2012년에 끝나지 않습니까?”

    “아직 2년이나 남았소.”

    정색한 후진타오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끝나면 부주석이 김정일한테 다녀오는 게 낫겠소.”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시진핑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이명박이 흐려놓은 물을 제가 정화하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레임덕은 없다
    # 평양의 제9 초대소는 국빈 접대용으로 사용된다. 이명박은 김정일과 함께 제9 초대소로 들어가 여장을 풀었다. 오후 12시 반, 옷을 갈아입은 이명박이 응접실로 나갔더니 외교안보수석실 안보비서관 최길중이 서둘러 다가왔다. 얼굴이 굳어 있다.

    “대통령님, 위원장께서 점심을 이곳에서 같이 하시겠답니다.”

    “이곳에서?”

    “예, 준비를 다 해놓았다는데요.”

    이명박이 눈만 껌벅였다. 본래 일정은 점심은 따로 먹고 오후 3시부터 주석궁에서 회의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윽고 이명박이 말했다.

    “할 수 없지. 같이 밥 먹어야지.”

    놀라기는 했지만 무례한 짓도 아니고 의전 따질 일도 아니다. 그래서 30분쯤 후인 오후 1시경 이명박과 김정일은 초대소의 커다란 원탁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다. 이명박 좌우에는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 외교안보수석 김성환, 대변인 이동관과 안보비서관 최길중이 앉았다. 김정일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과 외교상 박의춘, 노동당 행정부장 장성택을 배석했으니 최고위층은 다 모인 셈이다.

    원탁에는 산해진미가 놓였는데, 이명박이 처음 보는 요리도 있다. 김정일이 툭툭 던지는 말에 자주 웃음이 터지는 분위기였지만 대화가 자주 끊겼다. 다시 정적이 덮였을 때 이명박이 입을 열었다.

    “신의주는 한국이 개발하게 해주시지요.”

    김정일은 시선만 주었다. 정색한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나진, 선봉에다 신의주까지 중국에 개발을 맡기면 국경 양끝이 중국 영역이 됩니다. 지금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발해는 물론 고구려까지 중국 역사에 편입하려는 공작을 하는 중입니다.”

    초대소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원탁에 둘러앉은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그때 김정일이 대답했다.

    “하긴 중국 조선족 사이에서는 북조선이 곧 중국의 조선성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명박의 시선을 받은 김정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되면 고구려 이상 가는 대조선(大朝鮮)이 될 것이라고 한다는군요. 말하자면 한반도와 옛 고구려 영토까지 포함한 지역이 조선성이 될 테니까요.”

    “글쎄, 그렇게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그것 때문에 평양에 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명박 얼굴이 상기되고 목소리는 떨렸다. 김정일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맥을 탁 짚고 말하는 것이 한 수 더 뜨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김정일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신의주 특구를 중국 정부에 맡기는 작업은 보류하겠습니다.”

    이명박과 한국 대표단을 둘러본 김정일이 말을 잇는다.

    “나진·선봉지구는 일본과 미국, 러시아에 대한 견제 지역입니다. 이번 대일 전쟁배상금 작전에도 유용하게 써먹었던 것처럼 우리한테 이로운 점이 많습니다.”

    이명박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쪽은 이미 조약을 맺은 상태다. 김정일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말했다.

    “위원장님, 그렇다면 앞으로 남북 간 영토문제에 관한 협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어떻게 보십니까?”

    “북남연합을 하십시다.”

    김정일이 대뜸 말했다. 그러고는 빙그레 웃는다.

    “북남 영토방위에 대한 연합 말씀이오. 일단 이것으로 시작해서 북남연방, 북남통일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시 김정일이 핵심을 찌른다. 바로 이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남북정상은 이렇게 손발이 맞았다.

    이원호

    레임덕은 없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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