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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이형석의 영화읽기

이웃 행세하는 사이코패스 이웃사람이 잡는다

김휘 감독의 ‘이웃사람’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이웃 행세하는 사이코패스 이웃사람이 잡는다

이웃이 죽이고, 이웃이 범인을 잡는 기막힌 사회…. 공권력은 도대체 어디로 갔나.

4월 수원에서 한 여성이 사이버112에 전화를 걸어 “모르는 남자에게 납치돼 성폭행당하고 있다”며 위치까지 비교적 정확히 알려줬으나,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결국 끔찍하게 살해됐다. 전화를 받은 사이버112 요원은 공포에 떠는 피해 여성의 상황을 부부싸움으로 오인했고, 출동한 경찰은 초동 탐문수사를 소홀히 해 뒤늦게 여성을 발견했을 땐 이미 잔혹하게 시신이 훼손된 상태였다. 피해 여성은 신고 후에도 몇 시간이나 살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이 조금만 더 빨리 출동하고, 조금만 더 치밀하게 탐문수사를 했더라면 끔찍한 희생을 막을 수 있었으리라는 안타까움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른바 ‘오원춘 사건’이다.

경찰은 없다. 사법부는 무능하다. 공권력은 사라졌다. 오원춘 사건 희생자에게 경찰은 부재했다. ‘도가니’의 피해 소년과 소녀들에게 사법부는 무능함을 넘어 가해자들만큼이나 악질적인, 사실상 공범이었다. ‘부러진 화살’에서도 공권력은 실종된 지 오래다.

그래서 남은 것이 ‘이웃사람’이다. 잠재적 범인이 이웃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믿고 기댈 곳도 이웃뿐이다. 죽이는 자도, 죽는 자도 이웃이며, 그것을 막는 자도 이웃이다. 인기 웹툰(인터넷 만화) 작가 강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이웃사람’의 제목은 차라리 상징적이다. 검경을 막론하고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회의와 불신이 ‘이웃사람’만 남긴 셈이다.

아래층 남자에게 무참히 살해된 딸



카메라는 웹툰 컷과 흐름을 충실히 따라간다. 강산맨션 101동 202호 안주인 경희(김윤진 분)는 고교생 딸 여선(김새론 분)을 끔찍한 사건으로 잃었다. 실종됐던 여선이 인근 산에서 토막 난 시신으로 발견되지만, 살인범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경희는 딸이 사라진 그날, 마중을 나가지 못한 죄책감에 휩싸여 자꾸 환영을 본다. 경희 눈에는 죽은 딸 여선이 밤 이슥한 시간만 되면 평소처럼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누가 여선을 죽였기에 죽어서도 제 갈 길을 못가고 망령이 되어 집 안에 나타나는 것일까. ‘이웃사람’은 범인이 누군지 알아맞히며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영화가 아니라, 또 다른 이를 죽이려는 자와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범인 정체를 알려준다. 경희 집 바로 아래층 102호에 사는 사이코패스 승혁(김성균 분)이다.

이웃 행세하는 사이코패스 이웃사람이 잡는다
여선의 시신이 발견된 후, TV와 신문 등을 통해 미제 연쇄살인사건과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게 알려지고 아파트 주민들은 승혁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맡는다. 동네 가방판매점 주인(임하룡 분)은 TV에 비친, 시신이 담겨 있던 가방을 자신이 팔았다는 것을 희미하게 기억해내고 승혁의 존재를 더듬어간다. 피자배달부 청년(도지한 분)은 인근 지역에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 주기와 동일하게 101동 102호에 사는 승혁이 열흘에 한 번 피자를 시켜먹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든다. 한편, 오지랖 넓은 부녀회장(장영남 분)은 101동 102호 수도요금이 이상하리만치 많이 나오자 승혁과 설왕설래한다. 시신 처리와 핏자국 청소 등을 위해 물을 무지막지하게 쓴 까닭에 수도요금이 일반 독신가구에서는 불가능한 수십만 원씩 부과됐던 것.

엄마를 닮아 성격이 활달한 부녀회장의 고교생 딸 수연(김새론 분ㆍ1인 2역)은 동네 이곳저곳을 누비며 친절하고 싹싹하게 이웃을 대해 인기가 좋다. 동네에서 흉악 사건이 터지자 수연은 이웃들로부터 밤길 조심하라는 걱정과 당부의 말을 듣는다. 소연을 노리는 범인의 2차 범행을 막으려는 동네 주민의 노력이 이야기의 한 축이다. 여기에 사채업자이자 깡패(마동석 분)가 주차 문제로 범인과 얽히고, 과거 행적이 비밀에 싸인 경비(천호진 분)가 가세하면서 승혁을 향한 포위망이 점차 조여든다. 그럴수록 승혁은 더욱 흉포하게 범행을 계속한다.

공권력에 대한 기대 사라져

이웃 행세하는 사이코패스 이웃사람이 잡는다
‘이웃사람’은 비교적 오랜만에 연쇄살인을 다룬 한국 영화다. 한때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을 다룬 한국 영화가 붐을 이뤘다. 가장 절정에 이르렀던 때가 2010년. 그해 최고 흥행작이었던 원빈, 김새론 주연의 ‘아저씨’는 옆집 소녀를 납치한 인신매매범을 응징하는 전직 특수요원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 역시 사이코패스에게 약혼자를 잃은 한 남자의 복수극을 수위 높은 폭력 장면으로 담아내 화제가 됐다. 아내와 딸을 무참하게 잃은 남자의 복수극 ‘무법자’, 어린 딸을 연쇄살인범에게 빼앗긴 목사의 처절한 추적을 담은 ‘파괴된 사나이’도 있었다. ‘용서는 없다’도 흉악범에게서 딸을 구하기 위한 한 남자의 분투를 담았다.

2010년은 유죄 확정 전 흉악범의 신상과 얼굴을 언론이 공개하는 문제를 두고 찬반 논란이 거셌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만큼 흉악범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들끓고, 가해자에겐 신상 공개는 물론 화학적 거세, 전자팔찌와 발찌, 심지어 사형 등 엄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강력한 공권력과 처벌을 원하는 대중의 욕망은 영화 주인공 직업에도 반영됐다. ‘아저씨’의 전직 특수요원(원빈 분), ‘악마를 보았다’의 국가정보원 경호요원(이병헌 분), ‘무법자’의 강력반 형사(감우성 분), ‘용서는 없다’의 부검의(설경구 분) 등이 대표적이다. 의사(擬似)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흉악범을 강력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대중 심리를 반영한 결과다.

그러나 ‘이웃사람’은 공권력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조차 완전히 깨져버린 국민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경찰은 간 데 없고, 이웃사람끼리 연대하고 감시해야만 그들 곁에 있을지도 모르는 인두겁 쓴 악마를 막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경찰과 공권력이 등장하지 않아서인지 영화는 훨씬 짜임새 있고 흥미로우며 감성적이다. 다만 극장 문을 나설 때쯤 또다시 우리 자신과 가족의 밤길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주간동아 2012.08.27 852호 (p58~59)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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