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2

2012.08.27

누구에 ‘바람 불어 좋은 날’인가

민주당 대선 경선 본게임 시작…선거인단 몰린 호남 표심이 가장 큰 변수

  • 이명환 내일신문 정치부 기자 mhan@naeil.com

    입력2012-08-27 0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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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5일 제주에서 시작한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 대통령선거(이하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전국 순회 경선은 9월 1일 전북 경선을 기점으로 중반에 접어든다. 중반 이후 경선은 정치적 근거지를 지키는 ‘사수전’과 틈새를 노리는 ‘공성전’을 반복할 전망이다. 여기에 전통 지지층의 결집으로 그동안 민주당 경선에서 터닝포인트 구실을 했던 호남권 경선이 징검다리로 배치돼 있다. 특히 중반 경선 결과는 선거인단 50%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경기 경선 향방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영향력이나 주도권이 확실한 지역에서는 ‘근거지 사수전’이 치열히 전개될 전망이다. 앞선 후보는 대세를 확인하고, 뒤진 후보는 역전 발판을 잡는 기회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치적 근거지는 ‘잘해야 본전’인 곳이다. 1위를 못하거나 3~4위로 밀리면 ‘안방을 내준 후보’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국민완전참여경선제를 도입하면서 약화하긴 했지만, 텃밭의 정치적 상징성은 여전하다. 텃밭이 가진 중요성은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확실히 드러났다. 당시 울산 경선에서 대구·경북(TK) 출신 김중권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게 17표차로 1위를 빼앗기면서 정치적으로 상처를 입었다. 광주 경선에선 전남을 정치적 연고로 삼았던 한화갑 후보가 3위로 밀렸다. 제주 경선에서 1위를 기록했던 한 후보는 정작 자기 거점에서 1위를 빼앗기면서 일주일 뒤 충남 경선을 앞두고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노무현과 이인제 후보의 양강 구도로 치른 2002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한참 뒤졌던 정동영 후보가 존재를 과시한 것도 텃밭이었다. 경선 중반에 치른 전북 경선은 정 후보에게 ‘경선 완주’의 근거를 마련해줬다. 전북 선거인단은 후보 3명에게 3분의 1씩 표를 나눠주고 전북 출신 정 후보에게 2위 표를 주면서 경선 완주의 명분을 제공했다. 이후 정 후보는 이인제 후보가 사퇴해 위기에 몰리던 민주당 경선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경선지킴이’ 구실을 톡톡히 했다.

    정치적 안방 내주면 치명타

    이번 18대 대선후보 경선 중반 일정도 근거지 사수와 공성전이 적절히 교차돼 있다. 문재인, 김두관 후보는 9월 4일(경남), 9월 8일(부산), 9월 12일(대구·경북) 경선에서 안방을 지켜야 한다. 두 후보는 5월에도 영남에서 안방 경쟁 대리전을 벌였다. 이해찬, 김한길 후보가 맞붙은 당대표 경선에서 김두관 후보 측의 지원을 받은 김한길 후보가 부산을 제외한 울산, 대구·경북, 경남에서 1위를 차지한 것. 김 후보의 지사직 사퇴와 출마 배경에 이 같은 결과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많다. 최근 김두관 후보가 컷오프에서 탈락한 조경태 의원을 영입하면서 반전을 꾀하고 있어 그 결과가 영남 지역 경선 결과에 반영될지 주목된다.



    정세균 후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중반전 신호탄인 전북 경선(9월 1일)에서 반전 기회를 잡아야 의미 있는 경선 결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북은 정 후보 고향이다. 이 지역에서 1위를 하거나 근소한 표차로 2위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내외부에서 중도 하차 압력이 밀려올 가능성이 높다.

    이들 후보 3명이 근거지 사수전을 펴는 반면, 수도권에 근거지를 둔 손학규 후보는 ‘공성전’을 벌여야 할 처지다. 손 후보 측은 영호남에서 근소한 차로 2위 자리를 유지하며 수도권으로 올라와야 결선투표에서 뒤집을 수 있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다만 9월 2일 치르는 인천 경선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해야 후반 수도권 표심을 장악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호남, 이번에는 ‘전략적 투표’?

    중반 경선에서 최대 관심사는 민주당 전통 지지층인 호남의 선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번 민주당 경선이 인구비례에 따른 득표 보정 없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호남이 가진 중요성이 역대 어느 경선보다 높은 상황이다. 즉, 기존 경선에선 호남 당원이 영남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아 인구비례를 통한 보정작업을 거치면 4대 1 정도 수준의 영향력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 경선은 1인 1표제를 적용하기 때문에 호남 선거인단의 결정이 경선 결과에 직접적 영향을 끼칠 공산이 크다.

    민주당 전북도당 관계자는 “권리당원만 2만4000여 명으로 대선 경선에 참가하는 선거인단이 10만 명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민주당 조직국 관계자는 “10만 명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원 40%가 호남에 몰린 것을 감안한다면 전북에서 15만 명을 넘겨야 경선 역동성이 확인된다는 얘기다.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노무현, 정동영, 이인제 후보에게 3분의 1씩 표를 나눠주며 ‘삼분지계’로 표심을 표출했던 전북은 이번 경선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리라는 관측이 많다. 당 관계자는 “문재인, 손학규, 정세균 후보가 비슷한 수준에서 지지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문 후보는 통합 이전에 시민통합당과 백만민란 출신 활동가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고 전국에서 당원 수가 가장 많은 전주 완산갑에서 지지세가 높다. 손 후보는 익산과 군산, 김제·완주 지역에서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다. 정 후보는 전주 덕진과 진안·무주·장수·임실 등에서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후보 측도 정읍과 군산을 중심으로 반격을 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과 달리 광주·전남(9월 6일)은 투표 양상이 달리 나타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제주 경선 전 박준영 전남지사가 사퇴하면서 표 계산이 복잡해졌기 때문. 박 지사는 예비경선 내내 ‘참여정부 실정론’으로 친노(친노무현) 책임론을 부르짖었다. 호남의 정치적 지지가 절실한 문 후보에게 불리한 대목이다. 손 후보와 김 후보도 오래전부터 공을 들였지만 지지세를 확고히 틀어쥘지는 미지수다.

    광주·전남 지역 시민사회계 한 인사는 “결선투표 가능성,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단일화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지 여부 등을 꼼꼼히 따져서 선택할 것”이라며 “정권 교체에 가장 근접한 후보자를 전략적으로 선택하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일부에선 광주·전남권을 대표하는 후보자 부재로 경선 분위기 자체가 뜨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역 언론계 관계자는 “당 밖에 안철수라는 확실한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당내 후보자에게 얼마나 관심을 줄지 의문”이라며 “민주당 후보라는 애정이 전과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노무현 바람을 일으켰던 ‘반전’을 기대하긴 어렵고, 9월 6일 이전 추세가 그대로 이어지는 결과를 보이리라고 예측했다. 호남 지역 경선 결과는 득표율이 높고 낮은 것을 떠나 호남에서의 승리라는 정치적 상징성이 더해져 수도권 공략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데 이견은 없다.

    후보자 간 짝짓기나 득표율 차이가 경선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고, 안방을 내준 후보자가 중도 하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경선이 밋밋하게 진행되면 9월 15~16일 치를 서울·경기 경선 흥행에 빨간불이 켜질 개연성도 높다. 당 지도부나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은 “경선 중반에 엎치락뒤치락하는 결과가 이어져야 수도권 경선에서 재미를 기대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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