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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백 신화’는 아직 배고프다

홍명보호, 올림픽 이어 브라질월드컵까지 승승장구 기대

  • 육성철 전 신동아 기자 / ‘왜 클럽축구가 더 재미있을까’ 저자 ysreporter@daum.net

‘포백 신화’는 아직 배고프다

‘포백 신화’는 아직 배고프다
축구엔 판정승이나 우세승이 없다. 120분 동안 밀리더라도 단 1분 동안 반전으로 승리할 수 있다. 인체 가운데 가장 확률이 낮은 발로 결정하는 스포츠이기에 승패의 의외성은 배가된다. 제아무리 ‘종갓집 드림팀’이라도 변방 복병에게 일격을 당하는 게 바로 축구다. 하물며 11m 앞에서 겨루는 승부차기라면 어느 팀이든 승률 50%를 기대할 수 있다.

‘홍명보호’가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살렸다.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은 10년 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데자뷔였다. 2002년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섰던 홍명보는 10년 뒤 감독 자리에서 기성용 선수의 축하 세리머니에 감격했다. 그 상대가 주최국 위세를 부린 영국 단일팀이고, 그 멤버가 프리미어리그의 비싼 스타플레이어들이었기에 승리 기쁨은 배가됐다.

한국 축구와 올림픽은 질긴 악연을 가졌다. 1960~70년대 ‘아시아 맹주’로 군림하면서도 올림픽 본선과 인연이 멀었던 비운의 역사가 그 배경이다. 그 시절 한국 축구는 1964년 도쿄올림픽에 참가해 3패로 예선 탈락한 기록을 남겼을 뿐이다. 한국은 24년이 지나 그것도 주최국 자격으로 올림픽 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 라이벌 일본이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것과 비교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은 7회 연속 본선 티켓을 따냈다. 근대올림픽에 축구가 도입된 이래 이런 족적을 남긴 나라는 한국과 이탈리아뿐이다. 이탈리아가 이번 런던올림픽 유럽예선에서 탈락했기에 한국은 4년 뒤 세계 축구사에 전무후무한 8회 연속 본선 진출의 금자탑을 쌓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에 배당되는 출전권 3장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4경기 2골 실점 짠물수비



한국 올림픽대표팀의 범상치 않은 기록은 더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부터 시작된 최종예선 무패 전통이 그것이다. 통산 21승8무, 20년간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런던올림픽의 경우 한국은 최종예선에서 전통적으로 약세였던 중동 세 팀을 맞아 3승3무를 거뒀다. 무패 질주는 본선까지 이어져 브라질에 패하기까지 19경기에 이르렀다. 홍명보호가 메달권 후보로 당당히 대접받을 만한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은 런던올림픽 본선에서 멕시코, 스위스, 가봉과 B조에 편성됐다. 올림픽 직전까지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영국, 브라질, 스페인을 피했다는 점에서 행운의 조 추첨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멕시코와 스위스는 중요한 고비에서 한국 축구에 일격을 가했던 팀으로 결코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었다. 축구팬들은 조 1위로 8강에 진출해 껄끄러운 영국을 피하길 바랐으나, 1승2무는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홍명보호는 4강까지 5경기를 치르면서 3골을 넣고 5골을 내줬다. 경기당 득점 0.6골로 4강 진출팀 가운데 최하위다. 승부차기는 공식 기록상 무승부이기에 한국은 단 한 경기를 이기고 준결승에 오른 셈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도 기록상으로는 2게임(폴란드, 포르투갈)을 이기고 4위를 차지했다(이탈리아와의 16강 연장전은 골든골로 승리해 공식 기록은 무승부).

한국 축구의 해묵은 숙제인 골 결정력 부족은 이번에도 발목을 잡았다. 뉴질랜드나 세네갈과의 최종평가전 때처럼 골이 터졌더라면 한국은 아마도 조 1위를 너끈히 차지했을 것이다. 그나마 해외파인 박주영, 김보경, 지동원이 1골씩 터뜨렸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저 침묵했다면 예선 통과도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한국 축구의 수비력이다. 한국은 8강까지 4경기를 치르면서 2골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사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눈물을 흘린 사연은 공격보다 수비 쪽에 더 많았다. 잘 싸우고도 어이없는 수비 실책으로 탈락하는 시나리오는 4년마다 되풀이되는 낯익은 드라마였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10년 전 월드컵 4강신화도 7경기 3실점(6득점)이라는 짠물수비가 바탕이었다.

한국 축구 도약의 또 다른 기회

홍명보호의 수비라인은 골키퍼와 포백이 핵심이다. 공격이 막힐 경우엔 비길 수 있으나 수비가 무너지면 무승부도 어렵다는 계산이었다. 본선에서 쓸 수 있는 23세 이상 와일드카드 3장도 수비력 보강에 집중했다. 골 결정력 빈곤이라는 숙제를 풀지 못한 채 골키퍼 정성룡과 수비수 김창수를 발탁한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홍 감독은 대회 직전까지 중앙수비수 이정수의 합류를 강력히 요청했으나 소속팀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홍 감독이 수비조직력을 가다듬는 데 주력한 이유는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다. 그는 태극마크를 달고 A매치 136경기를 뛰었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부터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그는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두 골을 넣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경기를 최종수비수로 뛰었다. 누구보다 한국 축구의 수비 문제를 훤히 꿰뚫고 있다는 얘기다. 홍 감독을 보좌하는 김태영 코치도 수비수로 월드컵 무대에 세 차례 선 바 있다.

수비수 코칭스태프는 본선에서 달라진 포백을 선보였다. 김영권과 황석호가 지키는 중앙수비는 안정감을 보였고, 윤석영과 오재석이 버티는 윙백은 균형을 맞췄다. 4-2-3-1 포메이션에서 포백 강화는 더블볼란치의 체력 부담을 덜어줬고, 이것이 해외파 공격수들이 그라운드를 휘저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홍명보호가 올림픽 무대로 향하기 직전 한국 축구는 참혹한 시련을 겪었다. A대표팀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 3차 예선에서 복병 레바논에 발목을 잡혀 조광래 감독이 경질되는 파국을 맞았다. 설상가상 K리그는 승부조작 파문에 휘말려 선수가 목숨을 끊는 비극을 초래했고, 대한축구협회마저 석연치 않은 행정처리 등으로 언론의 비난을 받았다. 홍명보호의 선전은 축구팬들을 다시 운동장으로 불러 모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는 점에서 가뭄 속 단비라 할 것이다.

홍명보호는 과연 올림픽과의 악연을 끊을 수 있을까. 한국 축구는 처음 출전한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1승과 8강의 벽을 넘어섰다. 또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56년 만에 다시 8강 무대에 섰다. 두드릴 만큼 두드렸으니 이제 문을 열 때가 됐다. 2002년 세계를 놀라게 한 홍명보 감독과 김태영 코치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홍 감독에겐 늘 주위의 시샘이 따라붙는다. 프로팀 감독 한번 안 하고 대표팀을 잇따라 맡는 것에 대한 입길도 있었다. 그러나 런던올림픽에서 그는 자신의 색깔로 한국 축구를 세계 4강에 올려놓았다. 어쩌면 축구팬들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도 그의 얼굴을 볼지도 모르겠다. 올림픽 4강 진출의 지진으로 한국 축구는 요동치고 있다.



주간동아 850호 (p48~49)

육성철 전 신동아 기자 / ‘왜 클럽축구가 더 재미있을까’ 저자 ysreporte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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