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8

2012.07.30

미식가 오해 말라 맛없는 것 먹는다

음식 글쓰기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입력2012-07-30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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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식가 아닌 사람이 없다. 사람들을 만나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디에 있는 어느 식당 음식이 맛있는지 줄줄 꿰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명색이 맛 칼럼니스트인 필자조차 그 방대한 식당 리스트에 두 손을 들 때가 있을 정도다.

    식당 섭렵의 역사는 돌아가신 백파 홍성유 선생이 그 길을 처음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교통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았을 그 시절에 백파는 전국 식당을 두루 돌아다니며 식당 정보를 이런저런 매체에 연재하고 또 책으로 엮었다. 백파 이후 식당 정보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미식가라고 여겼다.

    1990년대 초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 필자는 잡지를 제작하고 있었다. 후배 기자가 그분들을 취재할 일이 있다고 해서 말미에 꼭 이 질문을 해달라고 주문한 적이 있다. “스스로 미식가라 생각하시는지요?”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후배 기자의 대답은 이랬다. “미식가라 하는 분은 없었습니다. 탐식가 정도이니 그리 봐달라고 했습니다.”

    미식가(美食家)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음식에 대하여 특별한 기호를 가진 사람. 또는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 방점을 찍자면 ‘좋은 음식을 찾아’ ‘즐기는’ 정도가 될 것이다. 좋은 음식을 찾아 즐기는 일은 극히 개인적인 취미 행위라 할 수 있다. 자기 입에 들어오는 음식은 오롯이 자신의 감각에만 충실히 발동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식당을 돌아다니며 그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는 일은 일종의 노동이지 미식 행위라 할 수 없다. 진정한 미식가는 어디에 있는 어느 식당 음식이 맛있다고 주변 사람에게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나면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 테고, 그럼 결국 자신이 즐길 몫조차 챙기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필자도 미식가는 아니다. 음식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돈벌이를 위한 노동일 뿐이다. 일반 독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다양한 음식을 많이 먹어본 경험이 있으며,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두고 있다는 것 정도다. 나는 스스로를 탐식가(貪食家)라고도 하지 않는다. 음식 탐욕이 약한 편이다. 소식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한 번에 먹는 음식량이 적고, 입도 짧아 한 종류의 음식을 한자리에서 많이 먹지 못한다. 그렇다고 기호가 특별난 것도 아니다. 남이 못 먹는 것을 억지로 찾아 먹지도 않고 그럴 생각도 없다.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소문을 들어도 당장 달려갈 준비가 돼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눈에 보이는, 앞에 닥치는 음식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도 필자의 머리는 늘 용량 부족이다.



    미식가도 아니고 탐식가도 아닌데 맛칼럼을 쓰고 있으니 ‘·#52059;식가’라고 이름을 붙여볼까 하다 생각해낸 것이 악식가(惡食家)다. 악식가의 사전적 뜻은 ‘맛없고 거친 음식을 즐겨 먹는 사람’이다. 사전 뜻풀이대로라면 마조히즘에 빠진 사람으로 읽힐 수 있겠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는 악식가의 뜻은 다르다. ‘맛없고 거친 음식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 맛칼럼을 쓰는 노동이 딱 그렇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음식에 대한 취재가 곧 맛있는 음식에 대한 취재일 것으로 여기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취재하면서 열에 아홉은 맛없는 음식을 먹는다. 맛없는 음식이 나왔다 하면, 일반 소비자는 그 음식을 안 먹으면 되지만 필자는 그 음식이 왜 맛없는지 계속 먹으며 따져야 한다. 그래야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맛칼럼 쓰는 일은 미식이 아닌 것을 넘어 고역스러운 노동인 것이다. 인간 노동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지 않은가.

    미식가 오해 말라 맛없는 것 먹는다

    쥐치포 공장에서 본 쥐치포 잔해. 이 냄새를 한 번 맡으면 1년 정도 쥐치포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맛을 취재하는 현장은 보통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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