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8

2012.07.30

“제발, 나 좀 말려달라”

성범죄자 치료 프로그램 걸음마 수준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2-07-30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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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나 좀 말려달라”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는 성범죄자 대상 치료 프로그램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성범죄자 재범 방지를 위한 치료 프로그램 개발 연구 :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실태조사’(2011)의 내용을 정리해 현황을 짚어봤다.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공감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보다 마음이 편해지고 새로운 것도 알게 됐다. 그리고 교육을 받으면서 ‘아, 이 교육이 필요한 거였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도 교육을 받고 나면 알게 되는 것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성범죄자 A)

    “솔직히 내가 봤을 때는 별로 필요 없는 것 같다. 심리 상담하면서 과거를 들었다 놓으니까 사람들이 기분이 더 안 좋은 거다. 상담해봤자 내가 왜 범죄를 저질렀나,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 홧김에 모르고 한 걸 가지고…. 필요성을 못 느낀다.”(성범죄자 B)

    연구자가 교도소에 수감된 성범죄자 20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한 결과, 성범죄자들은 치료 프로그램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렸다. 치료 프로그램 가운데 역할극과 피해자 마음 이해하기를 통해 여러 사람의 생각을 헤아리고, 하고 싶었던 말을 해서 마음이 후련해졌다고 밝힌 반면, 성범죄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 과정은 불편했다고 응답한 것이다(표 참조).

    치료 프로그램에 대한 성범죄자들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뭘까. 응답자 가운데 38%가 프로그램 만족도 조사에서 ‘불만족’(4.4%)이나 ‘보통’(33.3%)이라고 한 것은 선진국에 비해 치료 상황이 열악하기 때문이 아닐까. 성범죄자들은 “개별 면담, 진행자의 전문성, 프로그램 내용을 강화하고, 개인의 변화 의지를 증진시키는 내용을 보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11년 전국 15개 교도소에 수감된 성범죄자 393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치료 프로그램 수강자는 1443명에 그쳤다. 치료 프로그램 시간도 범죄자 1인당 40~100시간밖에 안 됐다. 선진국에서 200~300시간을 투입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성범죄자 중 재범자 68%

    최근 성범죄가 늘면서 정부는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화학적 거세와 전자감시제도 등을 실시하는 한편, 치료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감시제도만으로는 성범죄 재범률을 낮출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게다가 성범죄자는 대부분 부모로부터의 학대나 학교 시절 비행 등 결핍되고 불행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치료 프로그램을 거치지 않으면 재사회화할 기회가 사실상 없어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크다.

    실제로 2010년 대검찰청이 실시한 범죄 분석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성범죄로 기소된 사람 중 초범자는 32%, 재범자는 68%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범죄 발생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대검찰청이 실시한 범죄 분석에 따르면, 2000년에 1만189건이던 성범죄는 2001년 1만495건, 2002년 1만1688건, 2003년 1만2484건, 2004년 1만3968건, 2005년 1만3631건, 2006년 1만5157건, 2007년 1만5386건, 2008년 1만5094건, 2009년 1만6156건으로 늘었다. 2010년 현재 성범죄는 하루 44건, 한 시간에 1~2건 발생하는 셈이다.

    2006년 우리나라는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범죄행동을 유발한 여러 심리적 이상을 규명한 뒤 교정, 치료를 목적으로 치료 프로그램 시범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치료 프로그램을 시행할 법률상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법무부는 2009년 이를 보완하려고 성폭력사범 치료 프로그램 시행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후 2010년과 2011년에는 성범죄자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령을 제정하면서, 성범죄 치료 프로그램 대상자가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자에서 19세 미만 청소년 대상 성폭력사범으로 확대됐다. 더 나아가 지난해부터는 성범죄 수형자의 치료 프로그램 기본교육 시간을 20시간에서 40시간으로 늘렸다. 또한 프로그램 참가자에게 인성교육을 면제하고, 교육 참여 우수자에 대해서는 ‘가족 만남의 날’에서 유리한 처우를 받게 하는 등 참여를 독려했다.

    “제발, 나 좀 말려달라”
    19세 미만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로 확대

    성범죄자 치료 전문가의 경우 사회복지학, 심리학, 교육학 등 치료 업무 관련 전공자 비율이 전체에서 75%에 달한다. 하지만 사회복지사 자격증 등 관련 자격증 소지자는 43%에 그쳐 법무부는 2008년 6월부터 현재까지 매년 2회 2주 과정으로 해마다 80여 명을 교육하면서 전문성을 보강하고 있다. 이들은 “성범죄자가 프로그램 참여를 거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면서 “프로그램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교육 프로그램이나 워크숍 기회, 조직적 배려, 슈퍼바이저 활용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실태조사를 마친 연구자는 성범죄자 치료 프로그램을 좀 더 체계적으로 실시하려면 종합적인 ‘성범죄자 평가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여자의 경과를 파악하는 평가 시스템을 정착하지 않으면 프로그램 효과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치료 프로그램 진행을 현재처럼 일주일에 몰아서 하는 방식보다 일주일에 1~2회 진행하고, 성범죄자들이 출소한 후 치료 성과를 유지하기 위해 별도의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제발, 나 좀 말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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