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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반쪽 대통령’ 무르시 이집트 정국 주도할 수 있을까

군부가 사실상 실권 장악 제2의 권력투쟁 예고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반쪽 대통령’ 무르시 이집트 정국 주도할 수 있을까

이집트 새 대통령에 이슬람주의자인 무함마드 무르시(61)가 당선됐다. 이집트 중앙선거관리위원회(SPEC·이하 선관위)는 6월 24일 대통령선거(이하 대선) 결선투표에서 무르시가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대선 결선투표는 6월 16, 17일에 실시됐다. 6월 21일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선관위가 400건의 부정선거 의혹을 조사해야 한다며 발표를 연기했다.

결선투표에선 이집트 최대 이슬람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의 무르시와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마지막 총리를 지낸 아흐마드 샤피크(71) 후보가 대결했다. 무르시는 대선 1차 투표에서 득표율 24.78%를 기록하며 후보 13명 가운데 1위, 샤피크는 23.66%를 얻어 2위를 차지했다. 무르시는 이번 결선투표에서 51.73%의 득표율을 얻어 48.27%를 기록한 샤피크를 물리쳤다.

사상 첫 직선투표 대통령

이로써 무르시는 이집트 역사상 최초로 직접 자유 민주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가 최고통치자가 됐다. 이집트는 1952년 이전까지는 왕정이었고 이후에는 정체가 공화정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한 적은 없었다. 무르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집트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수도 카이로 타흐리르광장에 시민 수만 명이 모여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무르시는 “모든 이집트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국민의 단결만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1951년 이집트 나일 강 삼각주 지역 샤르키아에서 태어난 무르시는 카이로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해 학·석사 학위를 땄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남캘리포니아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노스리지 캠퍼스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1985년 이집트로 돌아온 그는 자가지크대학 재료공학과 교수를 지냈다. 1992년부터 무슬림형제단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0년 무소속으로 하원의원에 당선돼 의회에 입성했다.



당시 무슬림형제단은 불법단체였기 때문에 무르시는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밖에 없었다. 2005년 하원의원 선거에서도 당선됐으나 부정선거 항의시위를 주도한 개혁파 판사들을 지지한 혐의로 구속돼 7개월간 수감생활을 한 전력이 있다. 2010년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과 함께 ‘변화를 위한 국민연대’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는 또 지난해 1월 무바라크 전 대통령 반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돼 수감된 바 있다. 당시 교도소 벽이 반정부 시위로 무너져 수감자들이 도망쳤는데도 무르시는 “체포가 정당한 것인지 법적인 부분을 따져봐야 한다”며 탈옥하지 않았다.

무르시는 지난해 4월 무슬림형제단이 합법화된 이후 대변인을 맡으면서 정치 전면에 나섰다. 무슬림형제단은 지난해 6월 자유정의당을 만들었으며 무르시를 당수로 선출했다.

무르시는 애초 무슬림형제단이 내세운 대선후보는 아니었다. 4월 선관위는 자유정의당 대선후보이던 카이라트 알 샤테르 전 하원 부의장이 돈 세탁과 테러 지원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로 후보 자격을 박탈했다. 샤테르 전 부의장은 무슬림형제단의 부대표이자 전략가로 활동해왔으며 국민에게 상당한 지지를 받아온 유력한 대선후보였다. 무슬림형제단은 선관위의 예상치 못한 결정에 따라 무르시를 대선 한 달 전에 후보로 부랴부랴 내세웠다. 뒤늦게 대선에 뛰어든 무르시는 선거운동 초반 여론조사에서 중위권에 머물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무르시는 카리스마와 지도력이 부족했지만 무슬림형제단의 강력한 지지와 이슬람 성직자들의 후원으로 대권을 차지하게 됐다.

무르시는 철저한 이슬람주의자라는 평을 들어왔다. 이 때문에 무슬림형제단에서도 무르시는 강경파로 분류된다. 그는 ‘이슬람이 해결책(Islam is the Solution)’이라는 선거구호를 걸고 이집트를 이슬람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철저한 이슬람주의자

이슬람주의 또는 이슬람 근본주의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헌법으로 삼고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토대로 이슬람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슬람주의는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으로 이슬람권이 식민지배를 당한 것에 대한 반성과 자각에서 비롯됐다. 이슬람주의자들은 향락과 물질을 숭배하는 서양문명을 거부하고 원시 이슬람의 순결한 정신과 엄격한 도덕으로 되돌아가 이슬람 사회를 부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사회학자인 하산 알반나가 1928년 창설한 무슬림형제단은 이슬람 부흥운동을 벌여온 정치·사회단체이며, 그동안 두 차례나 불법단체로 규정돼 탄압을 받았다. 무슬림형제단은 1948년 당시 이집트 마지막 국왕 파루크 1세 통치 시절 단원 가운데 한 명이 마흐무드 파샤 총리를 암살함으로써 불법단체가 됐다. 이후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의 쿠데타를 적극 지원한 무슬림형제단은 왕정 붕괴 이후 햇빛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1954년 세속주의 공화국을 세우려 하는 나세르를 암살하려다 실패하면서 다시 불법단체가 됐다. 무슬림형제단은 그동안 술 판매 금지를 비롯해 여성의 노출 금지 등 샤리아의 엄격한 집행을 주장해왔다. 샤리아는 술, 도박, 매춘, 음악, 마약 등을 금지한다. 특히 여성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 여성은 신체 노출을 피해 온몸을 가리는 옷을 입어야 한다. 또 무슬림형제단은 다른 종교의 자유에 대해서도 반대해왔다. 무슬림형제단 단원은 현재 100만여 명이나 되며 이집트뿐 아니라 알제리, 튀니지, 요르단, 시리아 등으로 세력을 확장해 이슬람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다.

지식층이 주축인 세속주의자와 인권운동가, 그리고 여성들은 무슬림형제단의 득세에 반감을 드러냈다. 시민혁명을 주도한 이집트 자유주의 세력도 무슬림형제단의 부상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왔다. 전체 인구 8000만 명에서 10%를 차지하는 콥트 기독교 신자들은 무슬림형제단을 아예 노골적으로 반대해왔다. 하지만 무슬림형제단은 노동자를 비롯해 농민과 도시 저소득층에게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동안 학교와 병원, 공장 등 서민을 위한 복지와 생계지원 시설을 운영하는 등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온 덕이다. 특히 무슬림형제단은 국민의 거부감을 약화시키기 위해 민주주의와 여성의 권리 옹호, 종교의 자유를 외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의 이념이 온건 이슬람주의로 변신한다고 볼 수 있다.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에 가장 반대해온 세력은 군부다. 군부는 1월 21일 실시한 총선 결과가 발표된 이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당시 총선 결과를 보면 무슬림형제단의 자유정의당은 하원 전체 498석 중 235석(득표율 47.18%)을 얻어 제1당이 됐고, 이슬람 강경파인 알누르당은 121석(25%)으로 제2당이 됐다. 독재자 무바라크의 빈자리를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들이 채운 셈이다.

군부는 이슬람주의 정당들이 입법부를 장악하자 향후 제정될 헌법은 물론, 각종 법률이나 예산 편성 등에서 입지가 크게 줄어들 것을 우려해왔다. 군부는 지난해 1월 무바라크 사임 이후 국가를 과도 통치해온 군최고위원회(SCAF)를 중심으로 무슬림형제단을 견제할 방안을 모색했다. 군부는 이집트 국민 상당수가 무슬림형제단이 주창하는 이슬람주의에 반대한다는 점을 적극 이용했다. 과거처럼 탱크와 병력을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차지할 경우 국민의 반발이 거세질 것을 감안해 합법적으로 무슬림형제단으로부터 권력을 빼앗는 방법을 모색해왔다.

군부가 고안한 술책은 ‘부드러운 쿠데타’를 감행하는 것이었다. 부드러운 쿠데타란 군이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와 선관위 같은 사법기관이나 법률, 헌법 등을 이용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뜻한다.

헌재의 의회 해산 판결

이집트 헌재는 6월 14일 국민을 깜짝 놀라게 만든 판결을 내렸다. 헌재는 일부 하원의원들이 총선에서 불법적으로 당선됐다면서 전체 의회 구성도 불법이기 때문에 의회를 해산하라고 명령했다. 총선 위헌 판결을 낸 이유는 하원의원 의석 중 3분의 1은 정당별 후보가 아닌 무소속 후보에게 할당됐음에도 정당들이 후보를 냄으로써 ‘평등의 원칙’을 위배했다는 것이다.

이번 헌재 판결로 무바라크 정권을 무너뜨린 시민혁명의 첫 성과인 의회가 공중분해됐고, 무슬림형제단이 차지했던 의회 권력도 없어졌다. 의회가 새 헌법을 작성하려고 구성한 제헌위원회 역시 사라졌다. 1979년 설립된 헌재는 파루크 술탄 소장을 비롯해 재판관 20명으로 이뤄졌다. 현재 재임 중인 재판관은 모두 무바라크 정권 때 임명된 인사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법무부가 헌재의 판결이 나오기 하루 전인 6월 13일 발표한 ‘행정명령’이다. 1966년 통과된 군사법규 제25호 규정에 따라 내려진 행정명령의 주요 내용은 군과 정보기관원이 ‘특정 범죄’에 연루된 혐의가 있으면 민간인도 체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이다. 특정 범죄란 정부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일탈 행위, 폭발물 소지 및 사용,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거나 공격하는 행위, 공공재산이나 문화재 등을 파괴하는 행위, 공공기관에서 파업을 벌이는 행위 등을 말한다.

무바라크는 30년간 비상계엄령을 통해 국가를 통치했다. 비상계엄령은 5월 말 폐기됐지만, 과도정부를 맡고 있는 군최고위원회는 ‘행정명령’이라는 형태로 이를 통째로 부활한 셈이다. 행정명령을 무효화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은 의회에 있다. 헌재의 결정으로 의회는 해산됐고 입법권은 군최고위원회로 넘어갔다. 행정명령의 유효기간은 새 헌법이 제정돼서 발효될 때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총선이 다시 실시될 때까지 입법권을 갖게 된 군최고위원회는 6월 17일 민간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된 임시헌법도 공포했다. 무르시가 대통령이 될 것에 대비해 선제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임시헌법은 지난해 3월 국민투표로 가결됐는데 군최고위원회는 임시헌법의 일부 조항을 개정하고 부칙을 추가했다.

개정된 임시헌법의 주요 내용을 보면, 군최고위원회는 앞으로 새 헌법이 공식 제정될 때까지 군 병력을 지휘 통솔하는 권한을 보유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내각을 임명하는 권한 등 행정권을 갖도록 했다. 특히 대통령은 군최고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전쟁을 선포할 수 있고, 국내 혼란이 발생했을 때 치안 확보와 질서 유지를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려면 군최고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와 함께 군최고위원회 위원장은 앞으로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군 총사령관과 국방장관을 맡도록 했다. 또 대통령은 군 인사와 예산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런 내용을 보면 군 최고 통수권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사실상 군최고위원회 위원장이라고 할 수 있다. 군최고위원회는 장성 20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위원장은 육군 원수이자 국방장관인 모하메드 후세인 탄타위(77) 군 총사령관이다.

주요 위원들을 보면 사미 하페즈 에난 육군참모총장, 레다 마흐무드 하페즈 공군사령관, 아브드 엘 아지즈 세이프 엘딘 공군방위사령관, 모하브 마미시 해군참모총장 등이다. 탄타위 사령관은 과거부터 무바라크의 잠재적인 후계자 중 한 명으로 거론돼왔다. 전형적인 야전군 출신으로 1991년부터 국방장관을 맡아온 그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세 차례나 참가했으며, 1991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는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여한 공로로 쿠웨이트 해방 훈장을 받기도 했다. 군최고위원회가 강력한 권한을 보유함으로써 무르시는 앞으로 행정권만을 행사할 수 있는 ‘반쪽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군최고위가 제헌의원 직접 지명

군최고위원회는 이미 헌법을 공식 제정할 제헌위원회 위원 100명을 직접 지명했다. 제헌위원회가 최대 3개월 이내 헌법 초안을 작성하면 군최고위원회는 15일 내 국민투표를 통해 가부를 결정하고 헌법 승인 후 1개월 이내에 총선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군최고위원회는 앞으로 제정될 헌법의 모든 조항에 대해 반대할 권리도 갖고 있다. 군최고위원회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고 국방장관과 장성 등 11명이 위원인 국방위원회도 만들었다. 국방위원회는 안보 등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이집트 군부는 1952년 나세르가 왕정을 타도하고 쿠데타로 집권한 이래 줄곧 강력한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매김해왔다. 대통령을 지낸 4명은 모두 군 출신이었고, 주요 요직도 군 출신 인사가 차지했다. 또 이집트 경제와 산업의 30~35%를 군부가 장악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군부가 일종의 ‘쿠데타’를 감행한 이유는 민간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기득권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군부와 무슬림형제단이 앞으로 권력을 놓고 치열하게 투쟁할 가능성이 높다. 군부와 무슬림형제단이 ‘물과 기름’ 관계를 청산하고 상호협력하기에는 국가 정체성을 비롯해 지향점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집트 시민혁명의 제1막은 끝났고, 제2막이 시작된 셈이다.



주간동아 2012.07.02 844호 (p48~51)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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