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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엉터리 대학 국제화 02

숫자만 부풀리면 국제화되나

교육의 질이나 연구 성과 아닌 정량평가 잣대로 판단

숫자만 부풀리면 국제화되나

숫자만 부풀리면 국제화되나

한국형 경영전문대학원(MBA)이 시행된 지 6년, 각 대학들이 해외 명문대와 제휴하거나 외국인 교수를 초빙하는 등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매년 대학평가를 시행하는 일부 신문사에서 몇 년 전부터 국제화지수라는 것을 포함시키고, 교육과학기술부도 국제화역량이라는 지표가 들어간 대학평가를 하면서 우리 대학들의 국제화, 아니 ‘국제화병’이 시작됐다. 대학평가에 국제화지표가 들어가면서 우리나라 대학들의 국제화병이 시작됐다고 얘기하는 것은 대학평가에서의 좋은 순위가 대학운영의 절대적인 잣대로 자리매김하는 천한 현실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평가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학이 그 본연의 임무인 교육과 연구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제대로 못 하고 있다면 어느 부분이 미흡하고 그 미흡한 부분을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는지를 알려면 각 대학의 교육과 연구를 평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대학평가가 대학 본연의 임무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일부 신문사와 교육과학기술부가 행하는 대학평가의 결정적인 문제는 정량평가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평가가 실제적인 교육 질이나 연구 성과를 정성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고 숫자로만 가늠하는 정량적인 평가에 의존하면서 대학 순위 끌어올리기에 혈안이 된 대학들이 숫자 부풀리기 놀음을 하고 있다.

물론 정성평가가 쉽지 않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대학을 평가하는 과업의 엄중함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평가가 미치는 파급효과를 생각한다면, 더욱이 평가의 원래 목적이 대학 줄 세우기가 아니라 대학 역량을 제대로 진단하는 데 있다면, 쉽지 않다는 이유로 정성평가를 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조금 격하게 얘기하자면 제대로 못할 바에는 안 하는 것이 낫다.

학생 경험, 교육과정 개발에 더 신경 써야



현재 대학평가에서 국제화를 평가하는 지표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외국에 나가 있는 교환학생 수, 각 대학에 들어와 있는 교환학생 수, 외국인 학생 수, 외국인 교수 수, 영어강의 수 등이다. 수, 수, 수. 모두 제대로 된 국제화를 하지 않더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 숫자들이다. 그러니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국제화 숫자 부풀리기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국제화가 무엇인가. 외국물 좀 먹고 외국어 좀 나불대는 것이 국제화는 아니다. 단연코 말하지만 국제화는 외국의, 더 솔직히 말하면 서구 기준에 우리를 맞추는 것이 아니다. 국제화는 나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세계와 조우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고들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것, 그러면서 내 안에 남을 이식하고 남에게 나를 이해시켜 나와 남이 우리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대학의 국제화는 우리 학생들이 남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게끔 하고, 남이 우리를 제대로 이해하게끔 하는, 우리와 남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교육을 통해 가능하다.

그런데 외국물 좀 먹고 외국인 좀 만나면 자동적으로 국제화가 된다고 생각하는 한심한 인식 수준에서 국제화를 밀어붙이니 교환학생 수, 외국인 학생 수, 외국인 교수 수, 영어강의 수가 대학 국제화를 평가하는 지표가 되는 것이다. 국제화로 가는 길에서 학생을 교환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고, 외국인을 교수로 채용할 수도 있으며, 외국인 유학생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대학이 국제화를 추구하는 중간 과정일 뿐이고, 그 수가 많다고 해서 국제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교환학생 수가 적어도, 외국인 학생과 외국인 교수가 거의 없어도 국제화는 가능하다. 대학의 자원을 제대로 활용해 나와 남이 서로 이해하며 우리를 형성하는 심도 깊은 교육과정을 개발해 운영한다면 제대로 된 국제화를 성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대학의 국제화를 숫자만 가지고 정량적으로 평가하니 사달이 나는 것이다. 제대로 된 국제화는 생각조차 않고 외국 대학에 교류협정을 구걸해 우리 학생을 보내고 외국인 학생을 끌어오고 있다. 국적만 한국인이 아니면 “오케이(OK)”라고 하고, 왜 외국인을 교수로 채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물음과 답을 얻는 과정은 과감히 생략한 채 외국인 교수를 늘리려고 난리들이다. 이렇게 숫자를 늘려놓곤 만족스러워한다. 우리 대학은 국제화에서 앞서간다며. 외국에 나간 우리 학생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우리 학교에 온 외국인 학생이 어떤 교육을 받으면서 그들 가슴에 한국을 어떻게 새기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애당초 그런 국제화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대학평가 차라리 그만둬라

이런 엉터리 국제화의 폐해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영어강의다. 영어강의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경우가 있다. 다만 영어로 강의를 운영하려면 그 전에 영어로 강의하는 것이 교육 목적을 성취하는 데 더 효과적인지, 교수와 학생들은 영어로 진행하는 강의를 제대로 소화할 역량이 되는지를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또한 영어로만 강의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아니면 한국어와 영어를 혼용해서 강의하는 것이 효과적인지도 고려해보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영어로 강의를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 대학들이 영어강의가 필요해서 경쟁적으로 영어강의를 확대하는 것일까. 아니라는 걸 다 안다. 우리는 안다. 대학평가에서 좋은 점수 받으려고 기를 쓰고 영어강의를 확대하고 자랑한다는 것을. 때로는 교수들에게 영어강의를 우격다짐 식으로 강요하기도 하고, 돈을 더 지급하거나 강의시수를 더 인정해주는 식으로 영어강의를 유도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끼리 되지도 않는 영어로 강의를 진행하는 블랙코미디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연출되고 있다.

이런 영어강의 확대에 긍정적인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국제화 효과는 전혀 없다). 학생들이 강의를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해야 하니 자기주도학습 역량이 획기적으로 향상된다는 점이다. 영어강의가 끝나면 영어 압박에서 해방된 학생들이 교수를 따라 나와 복도에서 절박한 질의응답을 주고받으니 복도가 진정한 강의실이 되는 전 캠퍼스의 강의실화도 효과라면 효과다.

대학의 국제화는 21세기가 요구하는 필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의 국제화가 수의 증가로 성취되지 않는 것도 필연이다. 대학의 국제화는 나와 남이 어떻게 우리를 형성할 수 있느냐라는 어려운 물음에 답을 찾는 지난한 고민 과정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대학마다 그 답이 같을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대학평가를 하는 일부 신문사와 교육과학기술부 담당자에게 호소한다. 이제 제발 정량평가는 그만하라고. 제발 정량평가가 대학의 한심한 운영자들과 만나서 어떤 희한한 부작용을 초래하는지를 똑똑히 보라고. 평가를 하려면 제대로 하자고.



주간동아 2012.07.02 844호 (p18~19)

  • 전인한 서울시립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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