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3

2012.06.25

“죽을 각오로 살 덜어내니 인생이 확 달라졌습니다”

‘40kg 감량’ 뮤지컬 연출가 백재현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12-06-25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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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을 각오로 살 덜어내니 인생이 확 달라졌습니다”
    6월 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인기 검색어 가운데 ‘백재현 40kg 감량’이 있었다. 이 검색어를 클릭하자 사진 한 장이 떴다. 사진 속에는 기자가 아는 개그맨 출신 뮤지컬 연출가 백재현(42)이 맞나 싶을 만큼 확연히 다른 모습의 그가 있었다. 2년 전 태권도를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 ‘타타인붓다’를 공연할 당시에 만난 그는 거구였는데, 사진 속 그의 모습은 호리호리했다.

    “50인치였던 허리가 30인치로 줄었어요. 하마터면 몰라볼 뻔했죠?”

    6월 17일 오후에 마주한 백재현은 정말이지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불룩했던 배는 온데간데없고 몸통과 팔다리는 미끈했다. 살만 빠진 게 아니라 양악수술과 몇 군데 성형수술로 얼굴 크기와 인상도 확 바뀌었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남자가 이토록 ‘페이스오프’한 것일까.

    외모 비하 댓글에 자살 충동

    백재현은 지난해 1월 건강검진을 받은 병원에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진단을 받았다. 담당의사는 그의 아버지가 49세에 고혈압으로 사망한 가족력을 근거로 “몸을 이대로 방치하면 앞으로 6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당시 그의 몸무게는 118kg. 당뇨가 악화해 운동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혈당수치는 물론 혈압도 위험수위를 넘어선 상태였고 장기도 말짱한 게 없었어요. 내시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니 지방이 잔뜩 끼어 죄다 허옇더라고요. 담당의사 얘기처럼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을 것 같았지만 도무지 운동할 엄두가 나질 않았어요.”

    운동을 대신해 체중을 줄일 방법을 찾던 그는 지난해 3월 담당의사의 권유로 위밴드수술을 받았다. 위 입구가 좁아지도록 위 상부를 묶는 위밴드수술은 음식물을 조금만 섭취해도 금세 포만감을 느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수술 직후 7kg을 감량했지만, 식욕을 참지 못해 요령껏 음식물을 잘게 씹어 삼키다 보니 수술 석 달 만에 체중이 120kg으로 불어났다.

    그러던 지난해 6월, 그는 트위터에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나는 가수다’를 비판하고 KBS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다가 악성댓글에 시달린 일명 ‘백재현 트위터 사건’에 휘말렸다. 그의 외모를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표현이 넘쳐나자 그는 우울증에 빠져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고 한다.

    “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대중은 나를 그렇게밖에 기억 못 하나 싶고, 모든 생각의 끝이 ‘살아서 뭐 해’가 되더라고요. 그러다 정말 죽으려고 한강 둔치에 간 적도 있어요. 술을 좀 마시고 한강 다리로 올라갈 참이었는데 어머니와 후배들, 내가 만든 작품이 아른거려 죽을 수가 없었어요. 그때 결심했죠. 밑져야 본전이니 차라리 죽을 각오로 다시 태어나자, 사람들이 죽길 바라는 백재현을 여기에 묻고 새로운 나를 찾자고.”

    죽을 각오를 하니 죽어도 못할 것 같던 운동을 할 용기도 생겼다. 그는 지난해 7월 한 달간 전문가 상담을 받고 8월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10년 전부터 살을 빼려고 황제다이어트니 지방흡입술이니 안 해본 게 없는 그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운동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담당 트레이너는 과한 운동이나 무리한 식이요법을 주문하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 살을 빼려고 안간힘을 쓸 때보다 수월했다. 그런데도 살이 쭉쭉 빠져 6개월여 만에 체중이 120kg에서 84kg으로 줄었다.

    이후 양악수술을 받고 회복하느라 두어 달 운동을 쉬었는데, 잘 먹지 못해 5kg이 더 줄었다. 그가 죽고 싶을 만큼 아픈 고통을 감수하면서 양악수술을 받은 이유도 건강 때문이다. 그는 “윗니가 심하게 돌출돼 보철물을 씌워도 자꾸 깨져 고심 끝에 결정한 일”이라며 “구강외과와 성형외과 협진을 거쳐 양악수술 후 눈과 코도 고쳤다”고 털어놨다.

    “살을 빼는 데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안 받고는 그 결과가 하늘과 땅 차이더라고요. 혼자 살을 뺄 때는 물 한 모금도 마음 편히 못 마시는 데다, 그렇게 힘들여 살을 빼면 마치 불치병에 걸린 사람처럼 보기 흉했거든요. 그런데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아 규칙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하루에 물을 2ℓ이상 마시고,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매끼 150g의 단백질을 섭취했더니 스트레스 받지 않으면서 살을 뺄 수 있었어요.”

    최근 다시 건강검진을 받았다는 그는 “혈당수치는 물론 혈압과 맥박도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고, 내장 비만까지 깨끗이 사라져 허옇던 장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며 좋아했다. 담당의사도 “의술이나 약으로도 이렇게 빨리 건강을 회복하긴 힘들다”면서 “건강을 되찾겠다는 강한 의지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건강해진 게 가장 기쁘죠. 살이 빠진 뒤 자신감도 회복했고요. 어머니도 처음엔 왜 살을 빼느냐고 하시더니 가뿐해진 제 모습을 보고는 흡족해하세요(웃음).”

    “10년 후 라스베이거스에 있을 것”

    “죽을 각오로 살 덜어내니 인생이 확 달라졌습니다”
    백재현의 이력은 화려하다. 1993년 KBS 특채 개그맨으로 발탁된 유망주로 ‘개그콘서트’ 원년 멤버다. 지금은 창작뮤지컬 ‘루나틱’을 9년째 무대에 올리는 뮤지컬 연출가 겸 제작자다. 그사이 이혼을 하고 갖은 악성루머에 시달리는 어려움도 겪었다.

    “작품이 없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대학 은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연기자는 신이 인류의 감성적 마찰을 해소하려고 보낸 반신(半神)이다. 연기자가 없다면 전쟁이 끊이지 않을 텐데, 무대를 보면서 마음에 낀 때를 씻어내기 때문에 인류가 유지되는 것’이라고요. 저도 연기하면서 마음의 묵은 때를 벗겨내요. 공연을 보고 흐뭇해하는 관객을 바라보면 작품의 숭고한 진정성에 몰두하는 제 일에 사명감도 느끼죠.”

    ‘개그콘서트’에서 그와 동고동락했던 후배들은 지금도 그를 정신적 지주로 꼽는다. 후배들과 다시 한 무대에서 개그를 하고 싶지 않은지 묻자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후배들이 참 잘하더라고요. 아이디어도 신선하고 연기도 자연스럽고. 개그에도 트렌드가 있는데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검사를 맡으러 가면 서수민 PD가 ‘형, 이런 걸 어떻게 무대에 올려?’ 그럴걸요(웃음).”

    엄밀히 따지면 그는 현재 개그맨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늘 코미디와 함께해왔다. 내년이면 공연 10주년을 맞는 ‘루나틱’도 장르는 코미디다. “코미디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의 10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아마 한국엔 없을 거예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러려면 빨리 영어를 배워야 하는데…. 어떡하죠? (치아)교정기를 빼려면 아직 멀었고, 이대로는 발음이 새서 의사소통이 힘들겠는데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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