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2

2012.06.18

마침내 뽑아든 ‘박주영 카드’

홍명보 감독 기자회견에 동석…올림픽 메달 구상 본격화

  • 윤태석 스포츠동아 기자 sportic@donga.com

    입력2012-06-18 1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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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뽑아든 ‘박주영 카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대표팀이 한국 축구 사상 첫 메달에 도전한다. 런던올림픽 남자 축구는 16개 팀이 4개 조로 나눠 조별리그를 치른 뒤 각조 2위까지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8강부터는 단판승부다. 한국은 멕시코, 스위스, 가봉과 함께 B조에 속했다. 멕시코와는 7월 26일 밤 10시 30분, 스위스와는 7월 30일 새벽 1시 15분, 가봉과는 8월 2일 새벽 1시에 맞붙는다.

    런던은 한국 스포츠와 인연이 깊은 장소다.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은 한국이 정부 수립 후 처음 출전한 하계올림픽이다. 대한축구협회에서 발간한 ‘한국축구 100년사’에 따르면 한국 축구는 런던올림픽에 가는 첫발걸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선수를 선발할 때 학연, 지연, 혈연이 작용해 시끄러웠다. 제대로 된 합숙도 없었다. 당시 첫 상대는 공교롭게도 이번 런던올림픽과 마찬가지로 멕시코였다. 한국은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5대 3으로 승리했지만 2차전에서 스웨덴을 만나 0대 12라는 치욕적인 점수로 패했다. 스웨덴 축구팀은 금메달을 땄다.

    한국 축구의 첫 올림픽 도전이 그렇게 막을 내린 후 올림픽 메달은 한국 축구의 오랜 염원이었다. 한국은 1964년 도쿄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이후 번번이 아시아 예선에서 미끄러져 올림픽무대를 밟지 못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개최국 자격으로 22년 만에 출전해 소련, 미국과 득점 없이 비기고 아르헨티나에 1대 2로 패하는 등 선전했지만 토너먼트에 오르지는 못했다.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 축구는 올림픽 단골손님이 됐다. 1992년 바르셀로나, 1996년 애틀랜타,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에 이어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7회 연속 올림픽무대에 진출했다. 김호곤 감독(현 울산현대 감독)이 이끌던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는 조별리그를 통과해 처음으로 8강 토너먼트에 오르는 쾌거도 이뤘다. 한국 축구의 올림픽 역대 최고 성적이다. 그러나 8강에서 파라과이에 2대 3으로 져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올림픽 단골이지만 성적은 부진



    홍명보호는 과연 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까. 홍 감독은 올림픽에 철저히 대비했다. 그는 2009년 이집트 U-20 월드컵에서 8강 신화를 쓴 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면서부터 올림픽 준비에 들어갔다. 아시안게임은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23세 이하 선수들만 출전할 수 있다.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주축 선수들은 1987년생이었지만, 홍 감독은 과감하게 두 살이나 어린 1989년생들을 발탁했다. 2년 후 런던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선수로 팀을 꾸린 것이다. 비록 목표했던 금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3, 4위전에서 이란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동메달을 따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홍 감독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1989년생 선수들은 이집트 U-20 월드컵, 광저우아시안게임 같은 큰 국제대회를 거치면서 한 단계 성장해 현재 런던올림픽 주축 멤버로 자리잡았다. 김보경(세레소 오사카), 김민우(사간 도스), 김영권(오미야 아르디자), 구자철(FC 아우크스부르크)이 이른바 ‘홍명보 아이들’이다. 이들은 빼어난 실력으로 현재 A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올림픽 팀이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한 관건 중 하나는 와일드카드 선발이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은 23세 이하 선수만 뛸 수 있지만 팀당 3명까지 24세 이상 선수를 포함할 수 있다. 이것이 와일드카드다. 올림픽이 월드컵과 비교해 수준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보완하려고 도입한 제도다. 그러나 한국은 아시안게임이든 올림픽이든 그동안 와일드카드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홍 감독은 그간의 실패 원인으로 “실력이 최고인 선수를 뽑았지만 다양한 이유로 팀에 녹아들지 못했다”는 점을 들었다.

    와일드카드 후보 ‘0순위’는 박주영(27·아스널)이다. 홍 감독은 올림픽에 대비해 광저우아시안게임 때도 박주영을 와일드카드로 선발했다. 박주영이 팀원들과 호흡하고 함께 부대끼면서 팀워크를 다지길 바라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박주영은 아시안게임에서 네 살 어린 후배들과 격의 없이 지내고 희생정신을 보여 홍 감독을 흐뭇하게 했다.

    “박주영 군대 안 가면, 나라도…”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튀어나왔다. 박주영이 지난 시즌 아스널에서 거의 시합을 뛰지 못해 경기력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 모나코로부터 10년 장기체류자격을 얻어 사실상 군 면제를 받은 사실이 밝혀진 것. 박주영이 직접 해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대한축구협회가 기자회견을 주선했지만 박주영이 외면했다. 해명할 게 없다며 대한축구협회 권유를 뿌리쳤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최강희 A대표팀 감독은 카타르(원정), 레바논(홈)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1, 2차전에서 박주영을 제외하는 강수를 뒀다.

    병역문제는 한국에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불법은 아니지만 법을 교묘하게 이용한 박주영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다. 박주영이 직접 해명을 안 하면 홍 감독도 그를 뽑기 곤란한 상황에 몰렸다.

    홍 감독은 정면 돌파로 난관을 극복했다. 박주영을 직접 만나 설득해 기자회견을 갖도록 한 것이다. 5월 중순 귀국해 두문불출하던 박주영이 6월 13일 마침내 서울 신문로 대한축구협회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유럽무대에서 축구로 국위선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법률 검토 과정에서 모나코에서 얻은 장기체류자격으로 병역을 연기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지난해 8월 29일 병무청을 통해 허가를 받았다. 이민을 위한 것도, 병역면제를 받기 위한 것도 아니다. 축구를 더 하고 싶은 마음에 생각이 부족했다.”

    박주영은 이날 고개를 숙였다. 그 옆에 홍 감독이 앉아 있었다. 홍 감독은 “박주영이 군대에 안 간다고 하면 내가 대신 가겠다는 말을 하려고 나왔다”고 뼈 있는 농담을 던진 뒤 말을 이어갔다.

    “감독으로서 몇 가지 철학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팀을 위한 감독, 또 선수를 위한 감독이 되는 것이다. 선수가 필드 안팎에서 어려울 때 나는 그 선수와 함께할 마음이 돼 있다. 오늘도 팀을 위한 자리라 염치 불고하고 나왔다.”

    홍 감독은 또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나는 팀을 택했을 것(박주영을 뽑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이라면서 “(이번 기자회견도) 내가 박주영을 설득한 게 아니라 선수 스스로 내린 결정이다. 어렵고 힘든 결정을 해준 것에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진심이 박주영의 마음을 움직였고 팀과 선수를 모두 살렸다.

    박주영이 와일드카드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최종 엔트리 판도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일단 박주영의 합류로 공격수 포지션에 무게감이 더해졌다. 나머지 와일드카드 2장은 취약 포지션에 쓸 가능성이 높다.

    홍 감독은 이미 “(박주영이 아닌) 와일드카드 1명을 확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골키퍼 정성룡(27·수원)이 유력하다. 그럼 나머지 1장은 홍정호(23·제주)의 부상으로 공백이 생긴 중앙수비수일 공산이 크다. A대표팀 이정수(32·알 사드) 등이 거론된다.

    올림픽대표팀은 7월 2일 정식 소집되지만 홍 감독은 일부 유럽파 선수를 미리 경기 파주NFC로 불러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와일드카드를 포함한 최종 엔트리는 6월 21일경 발표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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