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2

2012.06.18

커지는 글로벌 공포 ‘퍼펙트 스톰’ 닥쳐오나

  •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

    입력2012-06-18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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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도 전에 남유럽 재정위기까지 발생하면서 세계경제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반복되는 위기로 자본주의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물론, 주식이나 부동산 등 각종 자산이 거래 대상이다. 그런데 제품이나 서비스와 달리 자산시장에서는 미래 예측에 근거해 가격이 형성되고 거래가 이뤄진다. 문제는 미래 예측이 상황에 따라 급격히 바뀌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결국 자산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경우가 많고, 때에 따라서는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거품이 형성되기도 한다. 그리고 거품이 꺼지면서 경제체제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더구나 자산시장에서의 버블 형성 및 붕괴가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과 겹치는 경우 그 파장은 상당한데, 20세기 최악의 위기로 꼽히는 대공황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이미 경험했다.

    1929년 자본주의를 덮친 대공황은 특히 미국에서 그 부정적 영향이 극대화했다. 당시 주가는 90% 가까이 하락했고 실업률은 25%까지 상승했다. 성장률도 4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러한 분위기가 미국 민주당의 집권으로 이어지면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정책 같은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을 시행했다. 1936년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가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을 출간하면서 불황 또는 공황의 발생 원인과 그 처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특히 위기를 극복하려는 정부 주도의 총수요 관리정책과 팽창적 재정 및 통화정책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이러한 움직임은 상당 부분 성과를 내면서 소위 수정자본주의체제를 확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물론 대공황을 극복하는 데는 1930년대 말 발생한 제2차 세계대전도 한몫했다. 과잉공급의 원인이 된 생산설비가 파괴돼 공급이 줄고 전쟁 관련 물자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공황이 해소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위기가 발생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체제는 상당한 유연성을 발휘했고, 이에 따라 체제 변화가 이뤄지면서 새로운 흐름을 형성했다. 따라서 일각에서 제기하는 체제 문제와 관련한 논의는 섣부른 감이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대체수단이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체제가 실패한 점을 감안하면 체제 논의는 좀 더 현명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



    세계경제에 암울한 그림자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떠안은 과제는 위기의 본질을 잘 분석해 헤쳐나갈 수 있는 맷집을 계속해서 기르는 일일 것이다. 또한 위기에 대처하는 전략적 접근을 우선시하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 바람직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위기가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위기가 발생하는 원인은 그때그때마다 다르다. 특히 이번에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는 그 양상이 매우 독특하다.

    첫째, 과거의 위기는 남미 채무위기나 아시아 외환위기처럼 개발도상국 또는 신흥국에서 발생한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위기가 미국과 유럽이라는 전통 선진국에서 발생했다. 미국과 유럽국가는 대부분 선진국으로 금융산업이 크게 발달했다. 특히 미국은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국가로, 세계경제를 실질적으로 이끌어왔다.

    문제는 이러한 국가에서 위기가 발생하면서 그 위기가 전 세계로 급속히 번져나갔다는 점이다. 물론 그동안 금융시장이 발전하고 각국 경제의 상호연계성이 강화된 점도 중요한 구실을 했다. 미국 주식시장의 하락과 유럽 주식시장의 부진이 한국시장에 직격탄을 날리는 모습에서 그야말로 지구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는 동남아국가와 한국에서 발생했지만 세계시장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반면 이번 위기는 선진국에서 발생함으로써 그 파장이 전 세계에 미치고 있다.

    둘째, 이번 위기는 재정위기와 금융위기, 그리고 금융기관위기가 연이어 발생한 것이 특징이다. 대공황 당시 효과를 발휘한 정부의 팽창적 재정정책이 부각되면서 이후 경기가 둔화하거나 위기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지출을 확대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그 결과 각국에서 정부부채 규모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남유럽 재정위기로 이어졌다.

    특히 각국 정부가 2008년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불황을 재정팽창정책으로 해결하면서 재정건전성이 훼손돼 국가채무 문제가 새삼 부각됐다. 일단 재정위기가 발생하면 전통적 위기대응 처방으로 팽창적 재정정책을 펴기 어렵고, 이 때문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힘들어진다. 최근 위기 극복과 재정건전성 확보라는 다소 모순된 과제가 부각되고 유럽에서 긴축이냐 성장이냐 하는 해묵은 과제를 논의하는 것도 이러한 어려움을 반영한 결과다.

    셋째, 이번 위기는 기축통화체제의 한계점을 노출함으로써 그에 대한 개편 논의를 불러왔다. 기축통화체제는 미국 달러가 중심인 브레턴우즈체제와 유럽 17개국이 사용하는 유로화체제로 크게 나뉜다. 그중 브레턴우즈체제에서는 미국 달러를 전 세계가 국제통화로 사용한다. 각국은 국내통화를 각자 발행해 사용하는데, 이때 달러와의 교환 비율, 즉 환율이 그때그때 바뀐다. 환율 변동은 매우 귀찮고 힘든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불균형을 해소하는 구실도 한다. 문제가 있거나 위기를 당한 국가는 예외 없이 환율 변동으로 자국통화 약세를 경험하고, 이로 인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원화 약세로 수출이 증가함으로써 외환유동성이 개선되는 효과를 봤다.

    그러나 유로존(유로화 사용권)의 경우 국내통화와 국제통화를 구별하지 않고 유로화를 사용하면서 환율 자체가 사라졌다. 국가로서의 독립성은 유지하되 돈은 똑같이 사용하다 보니 국가 간 누적된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경쟁력 있는 독일은 각종 제품을 수출하면서 부를 축적했고 반대로 경쟁력이 약한 그리스 같은 나라는 지속적인 무역적자에 시달렸다. 이번에 위기를 겪은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이 모두 수출경쟁력이 떨어진 국가라는 사실이 이를 대변한다.

    유럽 재정위기는 환율 조정 기능이 사라진 상황에서 국가별로 독립적인 정책을 수행하는 것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잘 보여준다. 이 때문에 최근 단일통화체제에서 탈퇴하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통합을 더 강화해 각국의 독립적인 정책 수행 권한을 아예 유로 집행부로 넘길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넷째, 이번 위기 발생과 관련된 국가는 예외 없이 지속적인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기록해왔다는 점에서 소위 쌍둥이 적자의 문제점과 한계점이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지속적인 적자는 반드시 큰 문제를 야기한다는 점이 부각된 것이다. 위기 원인을 제공한 미국은 지난 30여 년간 한 번도 무역흑자를 낸 적이 없다. 물론 미국의 지속적 무역적자는 세계 경제체제로 달러를 공급하는 구실을 한다. 이렇게 풀려나간 달러는 각국 외환보유액으로 쌓이기도 하고 국가 간 거래를 촉진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세계경제에 과잉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거품을 형성한다. 미국 무역적자가 기축통화 과잉으로 이어지고 시스템에 위기를 부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유로화 국가 간 불균형 지속

    유럽 위기는 좀 다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 간 불균형이 지속되면서 적자국이 좀처럼 적자를 해소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남유럽국가나 독일 모두 유로화를 사용하지만 유로화를 발행할 수는 없다. 유로화는 유로중앙은행에서만 발행할 수 있다. 지속적인 무역적자를 경험하는 남유럽국가는 유로화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그로 인해 국내화폐가 줄어들게 된다. 이때 국내화폐를 새로 찍을 수는 없다. 이를 내버려두면 디플레이션과 불황이 찾아온다. 그러나 이는 단기적으로는 고통스럽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가격경쟁력을 회복하도록 해준다. 자국 물가 하락으로 수출이 촉진돼 빠져나간 유로화가 다시 유입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남유럽국가들은 이를 거부하고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국가가 직접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해외에서 끌어온 것이다. 그런데 유로존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이들 국가는 싼 금리로 돈을 끌어올 수 있었다. 결국 무역적자로 빠져나간 돈을 국가부채로 다시 끌어다가 재정적자를 기록하면서 국내에 풀어버린 것이다.

    정부는 일단 박수를 받았지만 무역적자를 해소하지 못했고 국가부채는 자꾸 증가하면서 위기의 씨앗을 키웠다. 결국 미국의 재정적자가 부각되면서 국제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한 직후 남유럽국가들의 국가부채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번 위기는 정점에 이르렀다.

    다섯째, 이번 위기로 과도하게 발전한 금융시장과 금융상품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그동안 금융시장이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하고 이로 인해 시장과 상품이 복잡해지면서 다양화하는 경우 긍정적 측면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투자 대상이 다양해지고 투자 기법도 고급화하면서 새로운 이윤 기회를 창출하고, 그에 따라 회사나 개인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금융공학이라 부르는 분야가 부각됐으며, 펀드나 각종 증권의 수와 종류도 다양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이 초래한 부정적 측면도 상당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특히 이러한 상품이나 투자 대상이 시장 간 연결성을 과도하게 증진시키면서 한 시장에서의 문제가 다른 시장으로 급속히 전달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아울러 금융상품 설계에서 과도한 레버리지를 가능케 함으로써 시장 위험도가 증가했다.

    여섯째, 이번 위기는 금융시장에 대한 탈규제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계기를 제공했다. 경제 전반에 걸친 규제완화 분위기 속에서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도 상당 부분 완화하면서 효율성이 증대됐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강화했어야 할 규제도 있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금융 분야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감독을 통한 건전성 유지가 중요하다는 점이 부각된 것. 불필요한 규제는 여전히 완화해야 하지만 필요한 규제는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장에 대한 재규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곱째, 이번 위기는 금융감독과 관련한 각종 논의의 시발점을 제공했다. 과거에 정립된 감독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각국은 자국의 환경에 맞는 감독체계 개편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재무부 중심의 감독체계를 구축한 미국과 중앙은행 중심의 감독체계를 마련한 영국의 움직임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특히 영국은 일원화된 감독기구를 미시감독기구와 거시감독기구로 이원화하는 등 흥미로운 움직임을 보인다.

    여덟째, 이번 위기는 금융산업에서 탈중개화 또는 시장중심으로 진행되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시장중심보다 기관중심의 금융이 부각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적절한 규제와 통제를 가할 때 기관중심 금융이 가진 장점이 부각되면서 탈중개화가 아닌 재중개화의 움직임이 가시화한 것이다.

    맷집을 길러야 하는 이유

    아홉째, 이번 위기로 금융시장에서는 미국 중심의 일극적 세계화 움직임 대신, 미국과 함께 중국이나 독일 같은 국가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다극적 세계화 움직임이 보편화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열째, 우리나라의 경우 위기 때마다 반복되는 해외로의 자본유출 증가 현상이 예외 없이 발생하면서 자본유출에 대한 대비책이 절실하다는 점을 또다시 확인했다. 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이러한 상황이 발생해도 잘 대응하는 맷집을 길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열한째, 이번 위기로 외환보유액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지적됐다. 1997년에는 외환보유액이 200억 달러 수준에 머물러 위기를 막지 못한 반면, 2008년에는 2600억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 덕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이렇듯 이번 위기가 주는 교훈과 과제는 막중하다. 특히 금융산업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한 것은 매우 중요한 움직임이다. 향후 금융산업이 제자리를 찾아 금융산업 발전과 금융시장 안정을 이루는 동시에, 금융기관과 산업의 위기관리 능력이 향상돼 똑똑한 금융, 따뜻한 금융, 맷집 좋은 금융 등 삼박자가 잘 조화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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