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2

2012.06.18

북쪽으로 출입문…대피소 맞아?

일부 시설 전시성 날림공사로 ‘초기 생존 보장’ 장담 못 해

  • 연천, 파주=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사진=이기욱 기자 p35mm@donga.com

    입력2012-06-18 13: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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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으로 출입문…대피소 맞아?

    북쪽으로 출입문이 나 있는 경기 파주시의 한 긴급대피시설(왼쪽)과 남쪽으로 출입문이 나 있는 연천군의 긴급대피시설이 대조를 이룬다.

    “포탄을 피해 대피하라는 시설이 포탄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출입문이 나 있으면 어쩌자는 건지….”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한 이후 정부는 ‘접경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초기 생존을 보장하겠다’며 긴급대피시설을 말 그대로 긴급히 설치했다.

    소방방재청 담당자는 “연평도 포격이 있은 지 석 달 뒤인 2011년 2월 국방부,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와 기타 자문위원이 회의를 열고 접경지역에 주민 대피용 긴급대피시설을 설치할 것을 결정해 민방위 긴급대피시설 사업이 시작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회의 이후 인천 서해 5도는 물론 휴전선에 접한 경기와 강원 접경지역에까지 대피시설을 마련토록 지침이 하달됐다. 시설기준은 국방부 화생방 방호시설 지침을 근거로 마련했다.

    2011년 한 해 동안 경기도는 김포시와 파주시에 각각 12곳, 연천군에 대피시설 8곳을 설치했고, 강원도에도 모두 18곳을 새로 만들었다. 긴급대피시설을 짓는 데 들인 예산은 150억 원이 넘는다. 국비 63억 원과 교부세 63억 원이 전체 사업비에서 70%를 차지했고, 나머지 30%는 도비와 시군비로 충당했다. 평균 건축비는 3.3㎡당 400만 원 정도로 책정했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은 긴급대피시설 가운데 일부는 ‘초기 주민생존 보장’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게 허술하게 지어져 ‘전시성 날림공사’라는 지적을 받는다.



    # 피신했다가 직격탄 맞을라

    긴급대피시설은 북한의 포탄 공격 등을 피해 주민이 피신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 그런데 정작 포탄이 날아올 위험성이 큰 북쪽을 향해 출입문을 설치한 대피시설도 여럿 있다. 대피시설 인근의 한 주민은 “대피소로 피신하려다 오히려 직격탄을 맞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했다.

    # 나 홀로 서 있는 대피시설

    유사시 주민이 신속하게 대피하려면 주민 모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에 대피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일부 대피시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 중턱에 나 홀로 서 있거나 논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누구를 위한 대피시설인지 의아했다.

    파주시 관계자는 “토지매입 예산이 내려오지 않아 공유지 등 대피시설을 지을 땅을 구할 수 있는 곳에 짓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북쪽으로 출입문…대피소 맞아?

    논 한가운데 있는 대피시설.

    북쪽으로 출입문…대피소 맞아?

    산 중턱(왼쪽)과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오른쪽)에 긴급대피시설이 나 홀로 들어서 있다.

    # 방화문으로 대체된 방폭문

    북쪽으로 출입문…대피소 맞아?

    비상탈출용 사다리가 수직으로 서 있다(왼쪽). 연천군 신서면사무소 한켠에 설치한 대피시설은 보행로로 만들어져 노인도 쉽게 대피시설로 들어설 수 있다.

    대피시설 설치기준에 따르면, 출입문은 북한의 기습 포격 등 유사시 접경지역 주민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포탄이 떨어져도 견딜 수 있는 방폭문으로 해야 한다. 연천군은 규정대로 두께 20cm 콘크리트에 철문을 덧대 만든 육중한 방폭문을 대피시설 주출입구에 설치했다. 오부근 연천군 민방위계장은 “(소방방재청이 내려보낸) 설치기준에 맞춰 방폭문을 달긴 했는데, 평상시 활용하기엔 너무 무거운 게 단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파주시는 몇몇 대피시설에 방폭문을 설치했지만, 나머지 대피시설에는 두께 5cm 정도의 철문으로 대체했다. 더욱이 파주시의 경우 대피시설 출입문을 유리문으로 설치한 곳도 여럿 있었다. 파주시 관계자는 “면 단위에서 설계와 시공을 하다 보니 대피시설마다 차이가 있다”며 “유리로 된 출입문은 철문으로 교체하도록 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포시 담당자는 “(김포시) 자체 회의를 거쳐 대피시설을 주민이 평상시 원활히 활용할 수 있도록 무거운 방폭문 대신 방화문으로 바꿔 달았다”고 말했다.

    # 있으나마나 한 보조출입구

    대피시설은 주출입구는 물론 보조출입구를 두도록 했다. 적의 포탄 공격 등으로 출입구가 봉쇄되는 상황이 발생해도 비상탈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부 대피소는 수직으로 사다리를 설치해놓아 건강한 성인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북한과 인접한 지역은 농가가 많고 거주 주민도 대부분 고령 노인이다. 이 때문에 수직으로 설치한 보조출입구는 말 그대로 ‘시늉’만 냈다는 비판을 받는다. 파주시 파주읍 한 주민은 “노인은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말라고 그렇게(수직으로) 설치한 것 아니겠느냐”고 개탄했다.

    북쪽으로 출입문…대피소 맞아?

    1. 두께가 얇은 철문을 방폭문이라며 설치해놓았다. 2. 유리문을 출입문으로 단 대피소도 있다. 3. 20cm 두께의 방폭문을 지탱하려면 그에 걸맞은 시설(맨 오른쪽)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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