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9

2012.05.29

위험에 맞서는 SK의 기업가정신

오너 경영진, 자원개발 현장 누비며 남다른 도전

  • 김민지 인턴기자 kimminzi4@naver.com

    입력2012-05-29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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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에 맞서는 SK의 기업가정신

    1 2011년 2월 SK네트웍스가 지분을 보유한 호주 앵구스 탄광을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 400m 갱도에 들어가 채굴 현장을 살피는 최태원 SK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 2 2009년 12월 원유 공급 중단 문제를 해결하려고 테러가 빈발하는 이라크를 방문한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이 방탄조끼를 입고 포즈를 취했다. 오른쪽은 유정준 SK㈜ G&G추진단 사장.

    최근 대기업 2, 3세 경영자들이 ‘땅 짚고 헤엄치기’식 안전 경영에만 몰두한다는 사회적 비판이 거세다.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지 않고 기존 계열사의 지원을 받아 손쉽게 돈을 벌려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기업가정신이 살아 있는 나라”라던 세계적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찬사가 무색할 정도다.

    이런 가운데 위험을 무릅쓴 과감한 경영활동으로 큰 성과를 낳은 SK그룹(이하 SK) 오너 경영진의 사연이 화제다. 4월 일본 지바상과대학 경영학술지는 “SK의 지원이 없었다면 일본은 위기에 직면했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사태로 일본 정유시설이 파괴돼 석유 수급에 차질이 생기자, 최태원 SK 회장이 직접 지원에 나섰던 일을 높이 평가하는 논문이었다. 이 대학과 SK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SK 관계자들도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시 SK 측은 일본 최대 정유업체 JX에너지가 공장 가동 중단으로 처리하지 못한 원유 2억 달러어치를 사주고 휘발유 26만 배럴을 공급했으며, 일본 동북전력에는 발전용 중유 1만t을 제공했다.

    위기 속에서 빛나는 파격 행보

    이에 그치지 않고 최 회장은 그 얼마 후 일본 협력사를 방문해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 공포와 방사능 누출 위험으로 일본을 탈출하던 다른 글로벌 기업들과는 반대되는 행보여서 일본인에게도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이는 SK이노베이션과 JX에너지의 지주회사인 JX홀딩스가 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최 회장의 위험지역 경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자원개발을 그룹의 주요 성장전략으로 내세운 그는 지난해 2월 SK네트웍스가 지분 25%를 보유한 호주 앵구스 탄광을 찾았다. 최 회장은 동행한 유정준 SK㈜ G·G추진단 사장이 만류하는데도, 석탄과 인부를 나르는 운반구에 올랐다. 그는 암흑 속에서 작업 현장까지 6km의 구불구불한 레일 위를 이동해 지하 갱도에 도착했다. 지하 400m 탄광갱에서 그는 채굴된 석탄을 집어들어 성분과 상품가치 등을 꼼꼼히 확인하는 등 세 시간 동안 갱도 현장을 둘러봤다. 최 회장은 당시 “안전을 고려한 현장 관계자들의 채근만 없었다면, 직접 채굴도 해보고 싶었다”며 “수직 400m 아래 지하세계에서 자원부국의 꿈을 다시 한 번 키웠다”고 말했다고 한다.



    같은 해 4월엔 페루 아마존 밀림에 있는 카미시아 광구를 두 번이나 다녀왔다. 해당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던 말라리아 등의 풍토병에 노출될 위험을 감수한 결정이었다.

    이에 앞서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는 기업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유일하게 쓰촨지역을 찾았다. 여진이 계속되는 참담한 피해 현장에서도 수업을 하던 학교를 참관하고, 그 자리에서 즉시 학교 건립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 학교는 ‘행복 소학교’라는 이름으로 2010년 개교했다. 이런 인연으로 쓰촨성에는 SK차이나 서부지역본부가 들어섰으며 현재 도시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위험을 무릅쓴 경영활동은 파트너들의 신뢰를 이끌어내 기업 성과로 이어진다. 위기 속에서 더욱 빛이 난 기업가정신은 최태원 회장뿐 아니라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2007년 이라크전쟁 이후 SK가 이라크 지방정부와 유전개발 계약을 했다는 이유로 이라크 중앙정부는 부당하게 SK에 원유 공급을 중단했다. 당시 SK는 원유 수입에 차질이 생기면 그룹 경영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웃돈을 주고 현물시장 등에서 석유제품을 사올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현물 가격 폭등으로 이어져 SK는 큰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 나선 이가 최 부회장이다. 그는 2009년 하루 사망자가 600명이나 될 정도로 테러가 빈발하는 이라크를 방문했다. 당시 그는 ‘두바이 출장’이라는 ‘하얀 거짓말’로 자신을 걱정할 가족과 회사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그는 현장에서 방탄복을 입은 채 이라크 석유부를 방문하고 전쟁으로 파괴된 정유공장에도 갔다.

    위험에 맞서는 SK의 기업가정신

    2010년 4월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섬에 있는 고무농장을 방문한 최태원 회장(가운데).

    최 부회장은 또 이라크 실력자로 알려진 알 샤리스타니 부총리를 만나, 사업 이야기보다 SK장학재단인 ‘한국고등교육재단’과 바그다드대학 등의 학술교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샤리스타니 부총리는 이런 그의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꼈는지 SK를 적극 지원할 의사를 비쳤다. 곧이어 SK는 원유 수입 재개와 유전개발사업 입찰 자격을 회복했다. 원유 수입량도 당초 5만 배럴에서 6만5000배럴로 증가했다. 아울러 이때 체결한 이라크 도라(Daura) 정유공장의 현대화 프로젝트도 현재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 재계에선 최 부회장의 ‘방탄복 투혼’에 대해 ‘오너 경영진의 살아 있는 기업가정신’이라고 평가한다.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의 이런 파격 행보는 SK가(家)의 전통을 이은 것이라는 평도 있다. 선친인 고(故) 최종현 전 SK 회장 역시 현장을 찾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 1973년 4차 중동전쟁 발발로 석유파동이 일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한국을 석유수출 금지국으로 분류했던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최 전 회장은 전쟁 중이던 중동지역의 사우디아라비아로 직접 날아가 석유공급 재개의 물꼬를 텄다.

    SK家 전통 잇는 2, 3세

    자원개발사업을 벌이는 현장은 대부분 환경이 열악하다. 최 전 회장은 석유자원 개발을 위해 1989년 미얀마 밀림지대에 자리한 석유 광구 운영권을 취득한 뒤 곧바로 약 20명의 석유개발 인력을 투입했다. 이듬해 봄 그도 미얀마를 찾았다. 당시 미얀마는 사회주의 국가인 데다 사회기반시설도 최악의 수준이었지만 최 전 회장을 막지는 못했다.

    당시 최 회장이 한국에서 먼저 챙겨간 것은 현지 직원들이 먹을 김치와 된장이었다고 한다. 그는 또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미얀마에 머물면서 현지 상황을 점검하고 음식문제에서 의료문제까지 꼼꼼히 챙겼다. 현장에서 환자가 발생하면 곧바로 제트기를 이용해 병원으로 후송할 수 있는 ‘SOS 국제서비스’에 가입하기도 했다.

    미얀마 프로젝트는 1994년 광권을 반납하면서 표면적으론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최 전 회장은 실패한 직원들을 오히려 격려함으로써 똘똘 뭉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SK가 이집트, 베트남 등지에서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실패에서 배운 바가 많았기 때문이다. SK의 자원개발 매출 2조 원 시대는 이런 실패와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SK 한 관계자는 “실무진은 위험요소 때문에 오너 경영진의 위험지역 방문을 만류하지만, 경영진은 ‘위험은 누구에게나 같은 것’이라며 현장을 직접 찾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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