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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책동네 이야기

편집자 이름 저자만큼이나 무겁다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편집자 이름 저자만큼이나 무겁다

편집자 이름 저자만큼이나 무겁다
1990년대 초반은 사회주의의 붕괴로 ‘거대서사’가 해체된 이후 대중의 관심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급격히 옮아가던 시기였다. 따라서 성공한 기업가의 일대기와 평범한 개인의 솔직한 고백서를 자기계발서처럼 읽었다. 그 무렵 특별한 이력의 자기 삶을 솔직하게 담아낸 한 여성의 책이 밀리언셀러에 오르며 이 시장을 주도했다. 독특한 제목도 큰 구실을 했다.

‘버드나무 밑에서는 미꾸라지를 서너 마리는 잡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베스트셀러라는 ‘대박’은 후속 작품에도 영향을 끼쳐 몇 차례 흥행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떤 저자의 후속 작품은 베스트셀러에 잠시 오르긴 하지만, 전작의 후광을 누리지 못한 채 곧 사라지고 만다. 흔히 저자가 첫 책의 판매에 고무돼 편집자에게 자기 글을 단 한 줄도 고치지 말라고 큰소리치면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한다.

일본의 전설적인 편집자 겐토샤의 겐조 도오루는 평소 문예 출판사 편집자에게 “사람의 정신을 상품화하는 가장 비도덕적인 일을 하기 때문에 튀는 피를 맞을 각오로 작가에게 육박하지 않고서는 가슴속 피고름이나 상처를 안은 사람이 좋은 작품을 써줄 리 없다. 피 흘리며 인생을 걸고 일하라. 그러면 원하는 작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저자는 현대 의학과 과학, 시스템으로는 치료 불가능한 사람이지만, ‘쓴다’고 하는 행위로 구제되는 사람이기에 저자와 사귀려면 단순히 형식적이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오장육부, 즉 인생을 걸고 사귀라”라고 조언했다.

1950년생인 겐조는 1952년생 무라카미 류가 1976년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데뷔한 때부터 친한 친구로 지냈다. 그는 친구인 무라카미 류의 상상력을 위해 한 식당을 두 번 방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우리 시대 최고의 인문저자로 꼽히는 철학자 강신주가 최근 김수영을 통해 한국 인문학의 뿌리를 찾는 철학서 ‘김수영을 위하여’(천년의상상)를 펴냈다. 이 책 표지에는 ‘강신주 지음/ 김서연 만듦’이라고 적혔는데, 책을 만든 편집자 이름이 저자 무게만큼이나 대접받은 최초의 사례다.



강신주는 이 책 프롤로그에서 “이 책의 편집자 김서연은 ‘김수영 전집’ 1981년판을 내게 구해주면서 책 안쪽에 이런 말을 썼다. ‘사포처럼 살갗을 도려내는 일상의 적과 싸우느라… 얼마나 아팠을까, 그 사람.’ 정확한 지적이다”라고 썼다. 김서연은 ‘편집자의 말’에서 “내가 느끼는 사람에, 내 온몸을 내리친 김수영에 비슷한 공명을 느끼며 살아내는 이가 있었다. 강신주다. 그는 내게 처음으로 ‘네가 옳다. 네가 맞게 살고 있다’고 말해준 사람이다. (중략) 김수영에게서 독립해야 하는 까닭도 그에게 배웠다. 그는 내게 김수영을 보며 느낀 감정과 애정을 하나의 글로 모아주었다”고 썼다.

이 책은 강의 결과물이다. 강의를 진행하는 동안 저자와 편집자는 얼마나 교감했을까. “‘불온’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인문학의 주요 정신과 본질을 제시한 김수영이 한국 인문학의 핵심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직감한 철학자 강신주, 김수영의 글쓰기 원동력이었던 설움의 코드를 찾아내 원고 집필을 제안한 편집자 김서연. 이 책은 지은이의 힘 있는 글쓰기와 편집자의 열망을 합쳐 완성했다”는 출판사의 설명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은 정신적 교류의 크기를 가늠해볼 따름이다.

편집자 이름 저자만큼이나 무겁다
저자가 편집자 이름을 표지에 올리고 싶다는 이 소박한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지만 앞으로 이런 교감이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



주간동아 836호 (p74~74)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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