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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기(卒記)

명부(冥府)에서도 그렇게 이름을 댈까? “본드, 제임스 본드”

명부(冥府)에서도 그렇게 이름을 댈까? “본드, 제임스 본드”

영국 배우 로저 무어(1927. 10. 14~2017. 5. 23)




명부(冥府)에서도 그렇게 이름을 댈까? “본드, 제임스 본드”

[동아 DB]

청말 중국 역사평론가 리쭝우(李宗五)는 ‘삼국지’의 손권을 이렇게 평했다. “배 속이 시커멓기로는 조조를 이길 수 없고, 얼굴 두껍기로는 유비를 이길 수 없지만, 손권은 그 둘에 버금갈 정도로 시커먼 배 속과 두꺼운 얼굴을 겸비했다.”

역대 최장수 ‘007’ 시리즈 제임스 본드였던 로저 무어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을 할 수 있다. 중후한 남성미로는 초대 본드인 숀 코네리를 따를 수 없고, 액션연기로는 2대 본드 조지 라젠비에 뒤지며, 열정 면에선 4대 본드 티머시 돌턴에 못 미치고, 세련됨으론 5대 본드 피어스 브로스넌에게 밀리며, 거칠기론 7대 본드인 대니얼 크레이그에 범접할 수 없다. 하지만 무어는 그들의 장점을 골고루 겸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개성 없다는 악평 속에서도 1973년 ‘007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부터 85년 ‘007 뷰 투 어 킬(A View To A Kill)’까지 12년간 7편에 출연하며 롱런했다.

무어도 이를 인정했다. 2014년 영국 신문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연기를 배우던 초창기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성공하려면 사람됨과 재능, 그리고 행운을 골고루 갖춰야 한다고. 나는 이런 통념에 맞섰다. 내 성공의 99%는 운이었다. 그것은 내가 인간성이 좋아서도, 재주가 뛰어나서도 아니었고 순전히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장소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본드로 활약하던 시기는 007을 탄생시킨 냉전기의 절정이었다. 영국 첩보원 출신인 이언 플레밍의 원작소설 속 본드는 바로 그 냉전기에 딱 어울리는 두 얼굴의 전사였다. 낮에는 슈트가 어울리는 신사지만 밤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암살자, 여자를 유혹할 땐 꽃미남이지만 남자를 상대할 땐 냉철한 승부사…. 마땅히 정신분열증에 시달려야 할 캐릭터임에도 자기 이름은 꼭 두 번 말하는 능글맞음과 마티니는 젓지 말고 꼭 흔들어 마셔야 한다는 여유로움으로 빈틈없이 무장한 멘탈 갑. 로저 무어라는 옷을 입고 있을 당시 본드야말로 핵전쟁 공포를 스크린(Screen), 섹스(Sex), 스포츠(Sports) 등 3S의 쾌락으로 잊고 살고자 했던 냉전시대 관객의 환상에 충실한 존재였다.



냉전시대 아이콘으로서 본드의 대명사가 된 영국 배우 로저 무어가 5월 23일 스위스에서 암으로 숨을 거뒀다. 향년 90세.

무어는 1927년 영국 런던에서 아일랜드 혈통의 경찰관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타고난 외모를 바탕으로 왕립연극학교를 졸업한 뒤 53년 미국으로 건너가 주로 TV 배우로 활약했다. 신출귀몰한 도둑이 등장하는 ‘세인트’ 시리즈와 미국 서부시대 유명 도박꾼 이야기를 담은 ‘매버릭’ 시리즈의 주인공을 맡았다. 

숀 코네리가 1967년 ‘007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를 끝으로 하차를 선언하고 호주 출신의 모델 조지 라젠비가 69년 ‘007과 여왕(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딱 한 편만 출연한 뒤 낙마하자 무어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007 제작진은 영국 출신 배우를 고집했는데, TV 시리즈를 통해 미국 관객에게도 익숙한 그를 발탁한 것. 당시 그의 나이 46세. 번외편인 67년 ‘007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에서 57세로 본드 역을 맡았던 데이비드 니븐을 제외하면 가장 나이 든 본드였다. 007에서 하차할 때 나이도 가장 많은 58세. 역대 2위는 2002년 49세에 하차한 피어스 브로스넌이다.

본드 역을 그만둔 뒤 그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후원하는 활동가로 더 많이 활약했다. 1991년부터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맡아 오드리 헵번의 뒤를 이어 전 세계 결식아동 돕기에 나섰다. 이 일로 영국 정부로부터 훈장(1999)과 기사작위(2003)를 받았다. 본드 이미지와 달리 결혼은 4번에 그쳤다. 영국(2명), 이탈리아, 스웨덴 출신 여인이었고 이탈리아 부인과 사이에서만 자식 3명을 뒀다.

졸기(卒記)
졸기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마지막 평가를 뜻하는 말로 ‘조선왕조실록’에도 당대 주요 인물이 숨지면 졸기를 실었다.







주간동아 2017.05.31 1090호 (p80~80)

  • 권재현 신동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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