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0

2017.05.31

외교

위안부 합의와 실리 챙기기 제3의 길 모색하나

전문가들, 우리 국익 위해 별도 논의 필요…한일 양국관계 물밑서 힘겨루기 양상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17-05-29 16: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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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협의를 유지할까, 파기 후 재협상할까, 아니면 제3의 해법을 모색할까. 한일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한일 갈등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7~20일 더불어민주당 문희상 의원을 대일 특사로 보내면서 일단 대화의 물꼬를 텄다.

    이번 특사 파견을 통해 위안부 합의는 존중하되 한국 내 합의 반대 여론을 감안한 후속 조치로 내용을 보완하고, 일본이 요구하는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이전 문제를 처리하는 등 ‘물밑 교감’이 있었다는 관측이 많다. 위안부 합의 문제를 넘어 미래 지향적인 양국관계 발전을 위해 관련 전문가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현안 먼저 논의를

    4선 의원 출신이자 지일파(知日派)로 통하는 유흥수 전 주일본 한국대사는 “당장 위안부 합의 문제를 풀려고 덤벼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경제, 안보, 문화 등 다른 현안을 하나 둘 해결하면서 논의해도 늦지 않는다”며 “한일 양국은 우리 국민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밀접하고 큰 이익관계에 놓여 있다. 일본에 사는 60만 재일동포를 포함해 다른 면도 많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유 전 대사는 이어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이 양국관계 개선의 기회”라며 “한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실질 교류협력을 앞세우면서 갈등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선 기간 문재인 캠프에서 동북아 외교관계와 한일관계 정책자문을 맡았던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도 “위안부 합의 재협상 여부가 향후 양국관계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라며 “먼저 한국은 위안부 합의에 대한 검증작업을 통해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는 등 협상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사카 교수는 또 “2015년 12월 28일 합의가 어떻게 체결됐는지 합의 도출 과정과 경위 등을 분석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양국 현안 논의와 위안부 합의 문제를 분리하는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엔 고문방지위원회(CAT)는 5월 12일(현지시각)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수정할 것을 권고해 양국 간 재협상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CAT는 이날 펴낸 한국 관련 보고서에서 ‘피해자 보상과 명예 회복,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 약속 등에 대한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산하 CAT가 한국 보고서를 낸 것은 6년 만이다. 보고서가 강제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사회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처음 공식 평가를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유엔 산하기구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상과 명예 회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사실상 재협상을 권고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OHCHR는 보고서에서 ‘피해자 38명이 지금도 생존해 있다’면서 ‘피해자 구제권을 명시한 고문방지협약 제14조 기준에서 보면 합의 범위와 내용 모두 부족하다’고 밝혔다.

    권철현 전 주일본 한국대사는 “국제기구에서 재협상을 권고한 것은 실제 우리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제대로 못 했다는 것을 지적한 셈”이라며 “우리에겐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관련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면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갈등 관리’와 양국 공조의 길

    위안부 합의를 철회하고 재협상을 통해 국제법을 바탕으로 일본을 압박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용중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위안부 합의 내용은 구두로 발표한 것이 전부다. 중요한 것은 양국이 문서로 된 합의문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일종의 정책 조정 지침에 불과하다. 실제 위안부 합의는 국제법상 조약이 되기 위한 내용과 절차, 형식을 중대하게 흠결하고 있다”며 “개인이 받은 피해를 국가가 대신 합의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개인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약이 되기 위한 법적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도 “국가 간 조약이나 협약은 그 내용을 발표해야 한다. 합의문을 왜 발표하지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합의문 같은 실증적인 증거를 내놓은 다음에 본격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며 “합의 내용처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이라는 문구가 있으면 이는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인도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인 동시에 식민지배 당시 희생에 대한 사죄”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합의문이 있으면 정권이 바뀌었다해도 그것을 마음대로 깰 수는 없다. 그럴 경우 한일관계는 파국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앞으로 국내 여론의 흐름과 일본 정부의 태도가 관건이다. 위안부 합의 직후부터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강조해온 아베 정권은 합의 내용을 근거로 평화의 소녀상 이전을 우리 정부 측에 집요하게 요구해왔다. 특히 지난해 12월 말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를 일본으로 소환한 뒤 85일 만에 복귀시키는 강경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당장 위안부 합의를 전향적으로 논의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한편 최근 일본 정부가 CAT 측에 ‘한일 정부는 합의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이라는 점을 확인했다’는 내용의 반론문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5월 15일 “이번의 일(CAT 권고)은 한국을 언급한 것”이라며 “일본 정부에 대한 법적 구속력은 전혀 없다”고 항변한 바 있다.

    올해 한일관계의 핵심은 ‘갈등 관리’에 있다. 위안부 합의 문제를 넘어 가깝고 먼 나라에서 가까운 이웃이 되기 위한 협력과 주도권 잡기의 물밑 샅바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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