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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미식생활

달콤한 유혹 ‘설향’이가 너무 이~뻐

겨울 속 봄 딸기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달콤한 유혹 ‘설향’이가 너무 이~뻐

달콤한 유혹 ‘설향’이가 너무 이~뻐

하우스 딸기다. 품종은 ‘설향’이지만 눈의 향이 아니라, 봄의 향기를 담고 있다.

딸기는 예전에 양딸기라고 했다. 우리 땅에서 자생하는 딸기가 있어 서양에서 온 것과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그 위치가 바뀌어 양딸기는 그냥 딸기가 됐고 그 원래의 딸기에는 ‘산-’이라는 접두어가 붙었다. 딸기는 아메리카 지역이 원산지다. 18세기 유럽에서 원예종으로 개량해 전 세계로 번졌다. 한반도에는 20세기 초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딸기는 예전에는 노지에서 재배해 수확이 가능한 5월 말에나 먹을 수 있었다. 1970년대 대학에 다녔던 사람은 기억할 것이다. 5월이면 대학은 축제기간에 돌입하는데, 이때 미팅을 많이 했다. 특히 딸기밭에서 하는 이른바 ‘딸기팅’이 인기였다. 그때 수도권 딸기밭은 서울 서대문구 일대, 경기 수원에 많았다. 81학번인 필자는 ‘딸기팅’의 거의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어느 지역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어느 날 딸기밭 원두막에서 처음 본 청춘 남녀가 단체로 둥그렇게 앉아 바구니에 가득 담긴 딸기를 엄청 먹었더랬다. 그때 앞에 앉았던 여학생 얼굴은 생각나지 않고, 작고 맛없는 딸기에 소주를 마셔야 했던 쓴 기억만 생생하다.

그 봄날의 딸기가 계절을 잊은 지 오래다. 요즘에는 크리스마스 전후에 비닐하우스 농사로 지은 딸기가 그해의 첫 생산품이라도 되는 양 시장에 깔린다. 당도와 때깔은 노지 딸기에 비해 월등하지만(필자 기억으로는) 옛날 정취가 나지 않아 섭섭하다. 또 5월에 나오는 것이라 해도 노지 재배는 없다는 것이 더 서운하다.

딸기 농부에게 물어봤다. “왜 노지 딸기가 없어요?” 충격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 비가 옛날 비가 아니에요. 산성비가 내려서 딸기가 다 녹아요.” 아 그렇구나! 딸기 하나 노지에서 키우지 못하는 환경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딸기는 한때 ‘장희’ ‘육보’ ‘레드펄’ 등 일본 품종을 많이 심었다. 국내 품종보다 당도가 높고 생산성도 좋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로열티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내 품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2000년대 중반 국내 품종 ‘설향’이 나와 농가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설향’ 맛이 일본 품종보다 낫고 생산성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설향’은 충남도농업기술원 논산딸기연구소에서 개발한 것으로, 이 연구소에서 개발한 품종엔 ‘향’자 돌림의 ‘매향’ ‘금향’도 있다. 향을 특화한 딸기라 이런 이름이 붙었을 것인데, 한곳에서 ‘설향’과 일본 품종의 딸기를 비교해 먹어보면 그 상큼한 향 차이를 금방 느낄 수 있다. 일본 품종은 그냥 단맛만 있는 정도다.



요즘 시장에선 딸기 상자에 품종을 표시한다. 일본 품종은 로열티를 줘야 한다니 한국 품종을 찾아 먹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설향’이 낫다, ‘매향’이 낫다, ‘금향’이 낫다 등 말이 많은데, 필자 입에는 ‘설향’이 맛있다. 향도 좋고 과육도 단단하며 알이 굵다. 한 알이 한입에 꽉 차는데, 입안 가득 ‘설향’을 베어 물면 이른 봄 물기 머금은 풋풋한 식물 향이 물씬 올라온다. ‘설향’ 개발자가 겨울에 주로 수확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눈의 향’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겠지만 입안에서 느껴지는 향은 봄이다. 눈 속에서 맛보는 봄 향기다. ‘딸기팅’을 위해 딸기밭에서 만났던 청춘들도 이 겨울의 딸기를 먹으며 눈부신 봄날을 추억하고 있을까, 어떨까.



주간동아 2012.02.06 823호 (p68~68)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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