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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박희숙의 미술관

가사노동 그 표시 안 나는 고단함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여인들

가사노동 그 표시 안 나는 고단함

가사노동 그 표시 안 나는 고단함

‘시장에서 돌아와’, 샤르댕, 1739년, 캔버스에 유채, 47×38,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민족의 명절 추석이다. 선선하면서도 화창한 초가을 날씨가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을 더욱 즐겁게 한다. 그러나 주부들은 풍요로움이 가득한 추석이 반갑지만은 않다. 요즘은 남자가 많이 도와준다고 하지만 명절 기간 내내 힘든 가사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추석 가사 노동의 시작은 장보기다. 필요한 물건을 조금씩만 사도 어깨가 축 늘어질 정도로 무거워 조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주부들은 지친다. 시장을 보고 돌아온 여인을 그린 작품이 장 시메옹 샤르댕(1699~1779)의 ‘시장에서 돌아와’다. 이 작품은 평범한 중산층 여인의 가사 노동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시장에서 닭을 사가지고 온 여인이 탁자에 빵 두 덩어리를 올려놓고 기대어 서 있다. 보자기에 싼 닭과 빵은 장을 봤음을 나타내며, 여인이 머리에 쓴 외출용 모자와 스카프, 그리고 구두는 시장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여인이 탁자에 기대어 선 자세는 시장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와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 여인이 시장에서 사온 닭은 전통적으로 성적 욕망을 암시하는데, 여인의 얼굴이 거실 쪽을 향한 것과 뺨이 붉은 것은 화면 왼쪽의 소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자와 여인의 관계를 암시한다. 바닥에 놓인 그릇과 쓰러진 물병은 가사 노동의 고단함을 나타낸다. 샤르댕은 화면 왼쪽의 문을 반쯤 열어 여러 개 방을 자연스럽게 연결함으로써 공간을 극대화했다.

주부들은 시장에서 힘들게 음식 재료를 사 온 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신선한 음식을 가족에게 먹이려면 서둘러 조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엌에서 여자들이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 빈첸초 캄피(1536~1591)의 ‘부엌의 모습’이다. 그림을 보면 여자들이 주방에서 치즈 혹은 버터를 만들고, 파이를 구우려고 밀가루도 반죽하고 있다. 남자들은 소의 배를 가르고, 쇠꼬챙이에 닭고기를 꽂고 있다.



이 작품에서 여자가 음식을 장만하고, 남자가 고기를 다듬는 것은 주방에서 남자와 여자가 맡은 일을 각각 나타낸다. 주방 안쪽에 보이는 커다란 식탁은 사람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음을 설명하는데, 흰색 테이블보로 덮은 식탁과 식기는 여자가 손님을 초대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주방에서는 지금 잔치음식을 장만하는 중이다. 캄피의 이 작품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식으로 교훈적 메시지를 담지 않고 요리와 식재료를 사실적으로만 묘사했다.

가사노동 그 표시 안 나는 고단함

(위) ‘부엌의 모습’, 캄피, 1585년경, 캔버스에 유채, 72×5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소장. (아래)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벨라스케스, 1618년, 캔버스에 유채, 60×103,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주부들이 가사 노동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노동이 고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옛말이 있듯 ‘수고했다’는 말은 노동하는 당사자에겐 큰 힘이 된다. 가족이 이런 말조차 해주는 않는 것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도 가사 노동을 주제로 삼았다. 이 작품은 성서의 한 장면을 묘사했다. 마르타가 집을 방문한 예수를 극진하게 대접하고자 부엌에서 분주하게 일하는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 곁에 앉아 마냥 설교만 듣고 있다. 혼자 부엌에서 일하는 것이 속상한 마르타가 늙은 노파에게 동생이 일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게 그림이 묘사한 내용이다.

마르타는 테이블에 손절구를 올려놓고 절구공이로 마늘을 빻고 있다. 테이블에는 빻기 위해 쪼개 놓은 마늘, 생선 네 마리, 달걀, 그리고 도기 주전자가 놓였으며 늙은 여인이 방 안쪽을 가리키고 있다. 마리아는 부엌 뒤쪽으로 보이는 방에서 예수의 설교를 듣고 있다. 테이블에 놓인 생선은 예수의 설교를 나타내며, 달걀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부활을 상징한다. 늙은 노파의 손짓은 불만을 토로하는 마르타에 대한 충고다.

전경의 부엌을 어둡게 처리한 것은 어렵고 힘든 가사 노동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마르타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명상적이고 종교적인 생활도 중요하지만 여성 노동 또한 가치가 상당하다는 것을 일깨우려는 의도다.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가 그린 이 작품의 제목은 원경의 설교 장면에서 나왔지만, 그는 17세기 스페인의 평범한 가정을 묘사하고자 부엌 장면을 정면에 내세웠다. 그는 당시 스페인에서 유행하던 ‘보데곤(bodego´n)’방식을 따랐다. 보데곤은 술집이나, 식당, 음식을 배경으로 서민의 생활방식을 보여주는 그림을 말한다. 이 작품은 벨라스케스가 보데곤과 종교화라는 서로 다른 장르를 통합해 표현한 최초의 작품이다.

*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주간동아 803호 (p15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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