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3

2011.09.05

감동과 기쁨 주고 흥행을 쏴라!

여유와 함께 영화세상

  • 정지욱 영화평론가, 한일문화연구소 학예연구관 nadesiko@unitel.co.kr

    입력2011-09-05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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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동과 기쁨 주고 흥행을 쏴라!
    차례상에 오곡백과가 차려지듯, 이번 추석 연휴에도 40여 편의 영화가 관객을 기다린다. 추석 연휴가 시작하는 9월 둘째 주말에 관객과 만나는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신작 ‘북촌방향’을 비롯해 모두 9편. 이에 앞서 9월 첫째 주에는 액션영화 ‘콜롬비아나’를 비롯해 9편, 8월 넷째 주에는 로맨틱 코미디영화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등 12편이 개봉했다. 이전에 개봉해 계속 스크린에 걸린 영화까지 합하면 40편이 넘는다.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마친 가족이 오붓하게 즐길 만한 영화도 있고, 연인끼리 보기에 좋은 영화도 많다. ‘나홀로족’이라면 요절복통 코미디영화를 보면서 추석을 만끽할 수도 있다.

    ★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

    1 ‘파퍼씨네 펭귄들’ - 뒤뚱뒤뚱 남극 펭귄과 기막힌 동거

    성공한 사업가 파퍼(짐 캐리 분)는 가족을 등한시한 탓에 전처와 자녀들에게는 ‘남’만도 못한 존재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돌아가신 아버지에게서 이상한 ‘유산’을 상속받는다. 그것은 바로 남극 펭귄!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이 애물단지를 버리려고 백방으로 알아보던 파퍼는 오히려 펭귄 5마리를 추가로 배달받고, 심지어 그의 아들은 펭귄이 생일선물이라고 오해한다. 오랜만에 아빠 노릇을 하게 된 파퍼는 민폐덩어리들을 갖다 버릴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한다. 결국 파퍼는 뒤뚱뒤뚱 걷는 남극신사들과 기막힌 동거에 돌입한다.



    연기의 귀재 짐 캐리를 압도하는 여섯 펭귄의 열연이 압권이다.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암컷 대장은 물론, 소리 지르는 데 1등인 꽥꽥이, 방귀로 인사를 대신하는 뿡뿡이 등 독특한 캐릭터들이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면서 파퍼의 혼을 쏙 빼놓는다. 따뜻한 마음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교훈을 전하는 ‘파퍼씨네 펭귄들’은 부부작가 리처드 앳워터와 플로렌스 앳워터가 쓴 ‘파퍼 씨와 12마리 펭귄들’을 원작으로 한 가족영화다.

    감독 : 마크 워터스/ 출연 : 짐 캐리, 칼라 구기노, 안젤라 랜스베리/ 상영시간 : 95분/ 등급 : 전체 관람가/ 제작 국가 : 미국

    2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 - 소녀의 눈으로 본 ‘헤어짐’의 의미

    아스나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외롭게 지내는 소녀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일등을 독차지하고 엄마를 위해 집안일도 열심히 하는 착한 딸이다. 그의 유일한 낙은 매일 산에 올라 아버지가 남긴 광석라디오를 듣는 것이다.

    어느 날 산에 오르던 아스나는 괴물을 만나 생명에 위협을 느낀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ou’라는 소년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ou’에게 마음을 빼앗긴 아스나는 다음 날 소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진다. 새로 부임한 모리사키 선생님에게 지하세계 아가르타의 설화를 듣고 희망을 품게 된 아스나는 선생님이 지하세계로 가는 방법을 아는 아크엔젤의 일원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마침내 아스나는 모리사키 선생님과 함께 지하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많은 이와 만나고 이별한다. 어린 시절에는 마음속에 담아둔 사람과 이별하면 사무치는 그리움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저 어른들의 말대로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는 순리에 따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반드시 만남이 있다’고 믿을 뿐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을 잊게 마련이다.

    이르긴 하지만 조상에게 한 해의 거둠을 감사하고, 주위 사람들과 나눔의 기쁨을 함께하는 추석을 맞아 한 소녀의 시각에서 ‘헤어짐’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초속 5센티미터’로 관객을 찾아왔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재패니메이션 ‘별을 쫓는 아이’는 가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슬프지만 아름답고 따스한 이야기다.

    감독 : 신카이 마코토/ 출연(목소리) : 카네모토 히사코, 이리노 미유, 이노우에 가즈히코/ 상영시간 : 116분/ 등급 : 전체 관람가/ 제작 국가 : 일본

    3 ‘챔프’ - 도전, 그 충분하고 아름다운 가치

    가장 유력한 위너스컵 우승 후보였던 기수 승호(차태현 분)는 교통사고로 시신경을 다쳐 3류 선수로 전락한다. 교통사고로 아내마저 잃은 승호는 어린 딸 예승(김수정 분)과 단둘이 살아간다. 모두가 “승호는 끝났다”고 말하지만, 예승만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그의 우승을 학수고대한다.

    승호가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시신경을 다친 그날, 공교롭게도 최고의 자질을 갖고 태어난 경주마 우박 역시 새끼와 건강한 다리를 잃는다. 결국 우박이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더는 사람을 태우지 않는다.

    비록 이들은 사고로 달릴 수 없는 처지가 됐지만 꿈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다. 사고로 시력을 잃어가는 퇴물 기수 승호와 운명 같은 상처를 가진 경주마 우박이가 만나 서로에게 소울메이트가 돼 다시 한 번 꿈의 레이스에 도전한다.

    ‘챔프’는 모두가 무모하다고 여기는 레이스에 도전하는 기적 같은 이야기다. 영화는 같은 운명에 놓인 인간과 동물의 교감을 통해 장애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극적으로 그려낸다. 또한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가족과 주변 인물을 통해 가족 간 사랑과 따뜻한 인간애를 감동적으로 전한다.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이분법적 평가가 지배하는 시대에 ‘챔프’는 도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음을 일깨워준다.

    감독 : 이환경/ 출연 : 차태현, 유오성, 박하선, 김수정/ 상영시간 : 133분/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제작 국가 : 한국

    감동과 기쁨 주고 흥행을 쏴라!
    ★ 연인끼리 즐기기에 좋은 영화

    1 ‘통증’ - 강풀 원작 가슴을 울리는 멜로

    어린 시절 자동차사고로 가족을 잃은 죄책감과 그 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통증을 느낄 수 없게 된 남자 남순(권상우 분). 그는 후천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탓에 마음의 상처도, 타인의 상처도 느낄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 원인으로 작은 통증조차 치명적인 여자 동현(정려원 분). 작은 상처에도 피가 멈추지 않아 늘 고통에 시달려왔음에도 그는 씩씩하며 삶에 대한 의지도 강한 사랑스러운 여자다.

    삶도, 감정도 무미건조하지만 순수한 남자 남순은 동현을 만난 이후 생전 처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슴 뻐근한 통증을 느낀다. 남순에게 통증은 곧 사랑이다. 의지할 곳 없던 동현은 남순을 만나고 처음으로 기댈 안식처가 생겼다. 행복했던 순간, 따뜻했던 느낌, 설레는 마음. 이 모든 것을 통증으로 기억하는 동현에게 남순과의 만남은 강렬한 통증이다. 동현에게 통증은 곧 추억이다.

    거친 사내 이야기를 주로 다뤘던 곽경택 감독이지만, 이번에는 비수를 꽂듯 직설적 언어와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사로 남녀 모두의 가슴을 절절하게 울리는 멜로를 만들었다. ‘원소스 멀티유즈’ 콘텐츠의 제왕이라 불리는 강풀 원작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반항아적 모습의 권상우와 한없이 지켜주고만 싶은 여인 정려원의 하모니도 볼 만하다.

    감독 : 곽경택/ 출연 : 권상우, 정려원, 마동석/ 상영시간 : 105분/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제작 국가 : 한국

    2 ‘콜롬비아나’ - 킬러 삼촌 밑에서 복수 준비

    콜롬비아 암흑조직에 부모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9세 소녀 카탈리아는 아버지가 남긴 칩으로 미국대사관을 찾아가 단판을 지은 뒤 목숨을 건진다. 그리고 CIA의 보호를 받으며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감시를 피해 삼촌(클리프 커티스 분)을 찾아간다. 공부보다 아버지의 복수에 더 집중하던 카탈리아는 그날 이후 킬러인 삼촌 밑에서 완벽한 복수를 준비해나간다.

    치명적인 매력과 스마트한 두뇌, 그리고 프로페셔널한 실력을 갖춘 여전사로 성장한 카탈리아(조 샐다나 분)는 세상의 온갖 쓰레기를 처단한 뒤 자신만의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살인을 한 뒤에는 사랑하는 대니(마이클 바턴 분)와 꿈결 같은 사랑을 나누고 홀연히 사라진다. 카탈리아는 FBI는 물론, 그의 부모를 살해한 암흑조직에도 표적 대상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연기처럼 잠입해 살인을 저지른 뒤 유유히 사라진다. 최고의 킬러로 성장한 카탈리아의 치명적인 자태가 스크린에 아른거릴 때마다 액션 하나하나가 섹시하기 이를 데 없다.

    ‘테이큰’을 연출한 뤽 베송이 제작하고, ‘트랜스포터 : 라스트 미션’의 올리비에 메가턴 감독이 연출한 영화답게 폭발적인 액션이 미끈하게 펼쳐진다. 초반의 어린 카탈리아가 뛰고 달리는 추격 장면은 물론, 영화의 마지막까지 작렬하는 폭발신 또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중국집에 가서 ‘짬뽕과 짜장’ 사이에서 고민하듯, ‘액션과 멜로’ 사이에서 갈등하는 연인에게 ‘콜롬비아나’는 안성맞춤인 영화다.

    감독 : 리비에 메가턴/ 출연 : 조 샐다나, 마이클 바턴, 클리프 커티스/ 상영시간 : 105분/ 등급 : 15세 관람가/ 제작 국가 : 미국, 프랑스

    3 ‘푸른소금’ - 요리사를 꿈꾸는 전직 조폭

    연합조직의 보스가 사망하기 전 이미 조직에서 은퇴하고 떠난 두헌(송강호 분)을 후계자로 지목하자 조직은 분열하기 시작한다. 방파제에서 할 일 없이 바닷바람을 한껏 맞으며 시간을 보내는 두헌은 음식점을 차리겠다는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요리학원에 다닌다. 조직에 몸담았던 과거가 믿기지 않을 만큼 칼솜씨는 형편없고 모양새도 서툴러 늘 웃음거리가 되지만, 요리사 자격증을 향한 그의 꿈은 뜨겁기만 하다.

    불량스러운 차림새로 요리학원에 나타난 세빈(신세경 분)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 두헌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세빈의 뛰어난 요리 실력에 놀라워하며 동업하자고 농담을 던지는 사이 두 사람은 인간적으로 가까워진다. 두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그를 죽일 기회만 엿보던 세빈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푸른소금’은 작위적인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소탈한 송강호의 매력과 연약해 보이지만 소녀적 매력이 가득한 신세경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이 있는 영화다. 게다가 비장미 넘치는 천정명과 김민준, 감초처럼 나타나 즐거움을 던져주는 오달수의 매력적인 연기도 감상할 수 있다.

    액션과 멜로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선서하는 ‘푸른소금’은 연인에게 꼭 어울리는 영화다. 연출을 맡은 이현승 감독은 전작 ‘시월애’와 마찬가지로 유려한 색감과 CF를 보는 듯한 감미로운 음악, 아름다운 장면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감독 : 이현승/ 출연 : 송강호, 신세경, 천정명, 이종혁, 김민준/ 상영시간 : 120분/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제작 국가 : 한국

    4 ‘퍼블릭 에너미 넘버원’ - 희대의 갱 자크 메스린 일생

    섹시함과 재치, 여기에 당당한 카리스마와 의리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최고의 남자 자크 메스린(뱅상 카셀 분)은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알제리에서 군복무를 한 뒤 인생이 180도 바뀐다. 그의 새로운 인생은 친구 장 폴(로이 드퓌 분)과 함께 도둑질을 일삼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단번에 유혹하고 은행 강도로 돌변하는가 하면, 백만장자 납치극을 벌이는 등 세상이 주목하는 이슈 사건의 중심에는 늘 그가 있다.

    이후 자크는 갱 두목 귀도(제라르 드파르디유 분)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한다. 그러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가정을 꾸리면서 손을 씻기로 마음먹는다. 그렇지만 일탈에 대한 유혹은 끊이지 않는다. 결국 마지막 한탕을 노리던 자크는 경찰에 붙잡혀 최악의 죄수만 모아둔 특수교도소에 수감된다. 하지만 자크는 또다시 짜릿한 탈옥의 기회를 엿보는데….

    ‘퍼블릭 에너미 넘버원’은 32번의 은행 강도, 백만장자 납치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수감과 탈옥을 밥 먹듯 했던 프랑스 희대의 갱 자크 메스린의 자서전을 토대로 한 영화다. 1956년 알제리 저항군을 사살한 뒤 인간병기로 변모해 능청스레 경찰 행세를 하는가 하면, 도둑질을 벌이면서 여인을 품에 안는 등 천하제일의 악당을 뱅상 카셀의 열연으로 만날 수 있다.

    이전 작품에서 마초적 매력을 한껏 자랑했던 뱅상 카셀이 콧수염과 턱수염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변장술을 선보일 때면 폭소가 절로 나온다. 삐딱하기 그지없는 그의 생생한 연기 뒤에 감춰진 탁월한 심리묘사를 간취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퍼플릭 에너미 넘버원’은 프랑스 최고의 악당, 혁명적 선동가이자 낭만주의자였던 자크 메스린의 일생을 약 4시간에 담아놓은 영화의 1부다. 1부를 보고 나면 나머지 이야기가 담긴 2부의 개봉에 촉각을 세울 것이다.

    감독 : 장 프랑수아 리셰/ 출연 : 뱅상 카셀, 제라르 드파르디유, 로이 드퓌, 세실 드 프랑스/ 상영시간 : 113분/ 등급 : 청소년 관람 불가/ 제작 국가 : 프랑스

    감동과 기쁨 주고 흥행을 쏴라!
    ★ 나 홀로 충분히 추석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

    1 ‘북촌방향’ - 쪼잔한 남자들의 발칙한 이야기

    한때 영화감독이던 성준(유준상 분)은 서울에 올라와 북촌에 사는 친한 선배 영호(김상중 분)를 만나려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성준은 전에 알던 여배우를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다. 인사동까지 내려와 혼자 막걸리를 마시는데 앞좌석에 앉은 영화과 학생들이 합석을 원했고, 술에 잔뜩 취한 성준은 옛 여자(김보경 분)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음 날인지, 아니면 어떤 날인지 분명치 않지만 성준은 여전히 북촌을 배회하고, 또 우연히 전에 알던 여배우를 만나 대화를 나눈 뒤 헤어진다. 친한 선배를 만난 성준은 선배의 후배인 여 교수(송선미 분)와 셋이서 ‘소설’이라는 술집에 가는데, 술집 주인(김보경 분)은 성준의 옛 여자와 무척이나 닮았다.

    그리고 다음 날인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날인지 분명치 않고 성준은 선배와 정독도서관에서 대화를 나눈 뒤 전직 배우(김의성 분)를 만나 술을 마신다. 그 자리에 여 교수가 합류하고 네 사람은 다시 ‘소설’이라는 술집을 찾는다.

    영화 속에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감독은 실제로 홍상수 감독 자신의 모습이고, 베트남에서 사업하다 돌아왔다는 배우는 실제 베트남에서 사업하다 돌아온 이다. 이전부터 홍 감독의 영화를 즐겨봤고, 단편적이더라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주워들은 적 있는 관객이라면 영화 곳곳에 숨겨진 페이소스에 무릎을 치며 즐거워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누구고 저건 누굴까, 이건 언제고 저건 언제일까를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홍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남자들은 충분히 나일 수 있고, 내 주위의 그놈들 가운데 한 명일 수 있다. 그렇게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살아 숨 쉬는 쪼잔한 남자들을 아주 솔직하고 발칙하게 가감 없이 그려냈다.

    명절을 맞아 홀로 허벅지를 찔러야 하는 사람이라면 담백한 흑백화면으로 80여 분간 들려주는 홍 감독의 넋두리에 키득거릴 수 있을 것이다. 단, 연인끼리 보고난 뒤 옆에 있는 사람의 실체를 재확인하고 투덜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감독 : 홍상수/ 출연 : 유준상, 김상중, 고현정, 김보경, 김의성/ 상영시간 : 79분/ 등급 : 청소년 관람 불가/ 제작 국가 : 한국

    2 ‘돈 비 어프레이드 : 어둠 속의 속삭임’ - 기발한 스페인풍 판타지 호러

    건축가인 아버지 알렉스(가이 피어스 분)와 여자친구 킴(케이티 홈스 분)에게 맡겨진 소녀 샐리(베일리 매디슨 분)는 자식에게 전혀 관심 없는 엄마에게 버림받았다. 알렉스와 킴은 빅토리아 양식의 유서 깊은 고저택을 매입해 리모델링하는 중이다. 아버지를 따라 저택에 온 샐리는 미로처럼 복잡한 정원을 홀로 거닐다 숨겨져 있는 지하실을 발견한다. 그날 밤부터 샐리는 지하실과 연결된 통풍구를 통해 이상한 속삭임을 듣게 되고, 마침내 단단하게 봉인된 출구를 열다.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공인 이빨요정들이 샐리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돈 비 어프레이드’는 ‘상상력의 거장’이라 불리는 길예르모 델 토로가 각본을 쓰고 제작을 맡았다. 그만의 독특한 색감과 기발한 감성이 곳곳에 묻어나는 스페인풍 판타지 호러영화다. 동화 모티프에 기괴한 판타지와 호러가 잘 버무려져 평소 판타지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강력하게 추천한다. 아역 배우 베일리 매디슨이 절제된 감정 연기를 펼쳐 공포가 지나치지 않게 다가오기 때문에 공포를 즐기려는 관객에겐 흠으로 다가올 수 있다. 악몽이 무섭지 않고 꿈결처럼 아름답게 다가오는 영화라 하겠다. 아직 가을이 무르익지 않았지만, 낡은 집과 소녀로 비장하게 마무리하는 이 영화를 본다면 가슴에 처연한 가을빛을 담아내는 혼자만의 추석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 : 트로이 닉시/ 출연 : 베일리 매디슨, 가이 피어스, 케이티 홈스/ 상영시간 : 99분/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제작 국가 : 미국, 호주

    3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 나보다 못한 친구가 시집갔다고?

    어렵게 시작한 빵집은 망하고, 비호감 룸메이트는 매일 속을 긁는다. 나쁜 남자에게 빠져 시간을 낭비하다 결국 헌신짝 취급을 받는 애니(크리스튼 위그 분)의 삶은 엉망진창이다. 어느 날 그의 가장 친한 친구 릴리언(마야 루돌프 분)은 결혼을 선언하고, 죽마고우인 애니는 그의 들러리를 서기로 한다. 돈만 많은 무개념 미녀 헬렌(로즈 번 분), 섹시한 유부녀 리타(웬디 맥렌던 커비 분), 딱 봐도 호박씨 100단인 베카(엘리 켐퍼 분), 위풍당당 염치없는 메건(멜리사 맥카시 분). 취향이 제각각인 들러리들과 묘한 경쟁을 벌이며 함께 준비하는 결혼식은 자꾸 꼬여만 간다. 친구의 결혼식을 멋지게 꾸며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애니의 고민은 끝이 없다.

    이 영화는 자기보다 못난 친구가 먼저 시집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울화가 치미는 골드미스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했다. 게다가 쥐뿔도 없으면서 남들 앞에서 온갖 허세를 떠는 솔로들의 자화상이 애니를 통해 스크린에 펼쳐진다. 결국 우정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미국식 코미디긴 하지만, 나 홀로 명절을 이겨내야 할 이 땅의 모든 위대한 솔로에게 작은 위로가 될 영화다.

    감독 : 폴 페이그/ 출연 : 크리스튼 위그, 마야 루돌프, 로즈 번, 웬디 맥렌던 커비, 엘리 켐퍼, 멜리사 맥카시/ 상영시간 : 124분/ 등급 : 청소년 관람 불가/ 제작 국가 : 미국

    감동과 기쁨 주고 흥행을 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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