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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위기의 한국축구

박지성·이영표 떠난 자리 이렇게 클 줄이야!

한국 축구 조광래호 대안 부재에 고민…협회 차원의 장기적 대책 시급

  •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박지성·이영표 떠난 자리 이렇게 클 줄이야!

박지성·이영표 떠난 자리 이렇게 클 줄이야!
한국축구가 라이벌 일본과의 경기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8월 10일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0대 3으로 완패했다. 한국이 일본에 3골 차로 진 것은 1974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정기전 때 1대 4로패배한 이후 37년 만이다. 한국이 2000년 12월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이어온 일본 원정 무패 행진도 막을 내렸다.

경기에서 패한 것도 문제지만 너무 무기력하게 완패했다는 점이 팬들을 더 자극했다. 한국은 이날 경기에서 주장 박주영(AS 모나코)을 비롯해 해외파를 대부분 불러들였다. 정강이뼈 골절로 수술을 받은 이청용(볼턴 원더러스 FC), 감기몸살로 빠진 손흥민(함부르크 SV), 소속팀 사정으로 제외한 지동원(선덜랜드 AFC), 승부 조작 연루설로 뽑히지 못한 홍정호(제주 유나이티드)가 출전하지 않았지만 일본에 완패를 당할 만한 선수 구성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경기 내용에서 단 한 부분도 일본을 앞서지 못했다.

어이없는 참패 비난 목소리 쇄도

한일전이 끝난 직후 팬들은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박지성과 이영표의 공백에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일부 팬은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실적으로 성사 가능성이 없는 얘기지만 팬들이 박지성과 이영표를 그리워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을 앞두고 그해 5월 도쿄에서 한일전이 열렸다. 당시 경기에서 박지성은 선제골을 넣으며 한국의 2대 0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는 한국의 완승이었다. 경기 내용도 좋았고, 특히 박지성은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이어 그해 10월 서울에서 한일 친선전이 열렸다. 당시 박지성은 출전하지 않았지만 이영표가 있었다. 경기는 일본에 다소 밀렸어도, 정신적 리더 이영표가 후배들을 잘 이끌어 일본의 공격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그리고 올해 1월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다시 한국과 일본이 맞붙었다. 이 경기에는 박지성과 이영표가 나란히 출전했다. 경기는 쉽지 않았다. 일본은 장기인 짧은 패스로 한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경기 경험이 많은 박지성과 이영표는 후배를 진두지휘해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다.

이처럼 한일전에서는 유독 박지성과 이영표의 존재감이 컸다. 경기를 유리하게 진행하든, 일본에 끌려가든 박지성과 이영표는 한국축구 대표팀의 버팀목이었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떠나고 처음으로 열린 이번 한일전에서 일본은 예상대로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럴 때 상대 쪽으로 넘어간 경기 흐름을 빼앗고, 상대의 맥을 끊어줄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구실을 하는 선수를 찾아볼 수 없었다. 박지성과 이영표의 빈자리가 더 커 보였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박지성·이영표 떠난 자리 이렇게 클 줄이야!
조광래호가 한일전에서 팬들의 기대를 무너뜨렸지만, 그동안 한국축구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신력과 체력을 앞세웠던 한국축구에 기술을 가미했고, 이른바 ‘만화축구’라는 타이틀을 통해 짧은 패스로 아기자기한 축구가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해 보였다.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한일전 이전까지 평가전과 아시안컵 등 총 13경기를 치러 8승4무1패를 기록했다. 아시안컵에서 3위에 머물긴 했지만 준결승 한일전 승부차기 패는 공식기록상 무승부이기 때문에 무패로 대회를 마친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에도 세르비아와 가나 등 한국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앞서는 팀과의 대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이런 점에서 이번 한 번의 결과를 두고 조광래호를 무작정 비난하는 것은 무리다. 한국축구 대표팀은 9월부터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전을 치른다(124쪽 참조). 월드컵 예선전까지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

그러나 이제는 평가전이 아니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려면 매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 한일전처럼 어이없는 결과는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긴장의 끈을 늦춰선 안 된다. 한일전 참패를 통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축구협회 한 관계자도 “이번 참패를 계기로 대표팀 운영과 관련해 전반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첫 번째로 제기한 것이 대표팀 훈련시간이다. 조광래호는 출범 이후 FIFA와 대한축구협회 규정을 준수해 훈련을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훈련할 시간이 없었다. 경기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다. 새롭게 대표팀에 합류한 선수가 팀 전술에 적응할 시간이 별로 없었고, 그 결과 A매치 등 주요 경기에는 해외파가 주로 출전했다.

일본은 이번 한일전을 앞두고 국내파 위주로 대표팀을 구성해 사흘간 따로 훈련했다. 이는 한일전 준비뿐 아니라 차후 대표팀의 가용 인원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조광래호도 해외파가 빠질 것에 대비해 국내파 태극전사에게 대표팀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단기간의 소집훈련도 좋고, 평가전이면 더 좋다. 그래야만 해외파와 국내파 사이의 기량 차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대표팀 전력도 두텁게 만들 수 있다.

플랜B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한국은 이번 한일전에서 예상외 부상자가 나오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경기 도중 왼쪽 풀백 김영권(오미야 아르디자)이 발목을 삐었다. 김영권 대신 투입한 박원재(전북 현대)는 상대 슈팅에 얼굴을 맞아 뇌진탕 증세를 보였다. 대표팀은 또다시 왼쪽 풀백을 교체해야 했다. 교체카드 2장을 모두 한 포지션에 쓴 것이다. 그러면서 조 감독의 구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전략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한 포지션에 2명을 연속 기용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런 경우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의 포지션을 바꿔 부상자가 나온 포지션을 커버하고, 다른 포지션의 선수를 새로 투입해 변화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한일전에선 그런 전술이나 임기응변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부분까지 고려해 선수를 기용하고 전술을 짜는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플랜B로 예상치 못한 상황 대처해야

조광래호는 올해 초부터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와 불협화음을 냈다. 올림픽대표팀과 선수 선발을 놓고 이견을 보이다 급기야 조 감독이 기자회견을 통해 기술위원장과의 불편한 관계를 공개적으로 밝혀 협회 관계자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아직도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9월부터 올림픽대표팀도 2012년 런던올림픽 최종예선을 치른다. 선수 차출을 놓고 또다시 잡음이 일 수 있다. 현재 축구대표팀은 위기다. 그만큼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A팀 코칭스태프와 한국축구 전체를 관장하는 기술위원회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안 좋은 감정을 털어버리고 위기 탈출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선수들도 달라져야 한다. 한국축구는 올해 승부 조작 사건으로 홍역을 앓았다. 선수가 그만큼 정신적으로 해이해졌다는 얘기다. 일부 선수에게 해당하는 것이지만, 한국축구 자체에 승부 조작이 만연했다는 방증이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은 한국축구 이미지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K리그 선수의 해외 진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선진 축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면 한국축구는 성장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대한축구협회 차원의 장기 플랜도 필요하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선수를 육성해왔다(122 참조). 그 결과 유럽 클럽이 일본 J리그를 주목하고, 일본 선수도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유럽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반면 대한축구협회는 먼 미래보다 당장의 성과에 집착한다. 지금까지는 몇몇 엘리트 선수 위주의 육성정책이 운 좋게 성공을 거두며 아시아 맹주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언제까지 통하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한국도 최소 10~20년에 걸친 장기 플랜을 통해 유소년 선수를 세계적인 선수로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일본의 강력한 도전을 뿌리치고 아시아 넘버1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주간동아 803호 (p118~120)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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