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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잡스 시대’ 애플이 사는 법

잡스 사임 IT 역사의 한 페이지 끝…한국 기업도 지금부터 철저히 준비해야

  • 김현수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kimhs@donga.com

‘포스트 잡스 시대’ 애플이 사는 법

“불행하게도 바로 그날이 왔습니다.”

8월 24일(이하 현지시간)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의 편지 한 통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애플 CEO직을 사임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애플 CEO로서 더는 직무를 수행할 수 없고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는 날이 오면 여러분에게 가장 먼저 알리겠다고 말해왔는데, 드디어 그날이 왔다”고 썼다. 후임으로는 최고운영책임자(COO) 팀 쿡을 추천했다.

혁신 그 자체였던 잡스

창업한 CEO의 사임. 흔히 있는 일이지만 잡스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가 곧 애플이기 때문이다. 매킨토시에서부터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세계 정보기술(IT)의 흐름을 바꿔놓을 만한 혁신이 모두 그 또는 그를 중심으로 한 팀에서 나왔다. 그 자체가 혁신 아이콘이었고, 애플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시가총액 1위)로 만들었다.

그런 그가 사임한다는 것은 IT 역사의 한 페이지가 끝났다는 것을 뜻한다. 혁신 아이콘이 뒤로 물러난 후 애플이 어떤 길을 걸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당장에는 애플의 승승장구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잡스가 이미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이어지는 상품 전략을 다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또한 애플의 클라우드컴퓨팅 전략인 ‘아이클라우드’와 디지털 거실로 대변되는 ‘애플TV’ 등의 로드맵도 마련해뒀다.



비록 CEO 자리에서 물러나지만, 잡스는 당분간 이사회 의장으로서 비전 제시자 구실을 이어나갈 전망이다. 그는 사임을 발표한 편지에서 “이사회가 허락한다면 이사회 의장 및 이사, 또 직원으로서 애플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적었다. 애플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이사회 권한이 강해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미래에셋 이순학 애널리스트는 “애플의 후속작이 될 아이폰5, 아이패드3, 아이클라우드는 이미 개발을 완료했을 것이다. 시장에서도 기대가 크고, 완성도 자체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잡스가 사임한 후에도 애플은 이 같은 제품 덕에 1년 이상은 현재 같은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도 새로운 CEO에 신뢰를 보여줬다. 잡스가 사임을 발표하자 애플 주가는 5.3% 급락했지만 이튿날부터 꾸준히 올랐다. 8월 26일에는 장중 한때 주당 400달러를 넘기도 했다. 차기 CEO인 쿡은 실리콘밸리 유수 기업들이 탐내는 인재로 알려졌다. 전 세계적으로 저가 부품 공급망을 만들고, 영업이익이 30%에 달하는 애플의 사업모델을 완성한 주인공이다. 잡스가 CEO직을 사임한 이유가 후임자인 쿡을 애플에 붙잡아두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8월 26일 미국 경제지 ‘포춘’은 “잡스가 이미 무기한 병가를 낸 상태라 현 시점에서 CEO직을 넘긴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면서 “사임 직전 이틀간 상당 시간 애플 본사에서 일한 사실로 봤을 때 그의 건강이 최근 급격히 나빠진 것도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포브스’도 “저렴한 부품 공급망을 만들어 고수익을 창출하는 애플의 사업모델을 완성한 쿡이 경쟁사로 갔다면 잡스가 사임했을 때보다 주가는 더 큰 폭으로 하락했을 것”이라면서 “잡스가 쿡의 발을 묶어놓았다”고 보도했다.

실제 쿡은 잡스가 췌장암으로 자리를 비울 때마다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쿡은 8월 25일 직원에게 e메일을 보내 “여러분이 애플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면서 “나는 애플의 독창적 가치를 소중히 여길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DNA며, 앞으로도 세계 최고 제품을 만들어 고객을 기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승계가 카리스마적 리더 가장 큰 약점

‘포스트 잡스 시대’ 애플이 사는 법

아이폰은 세계 IT 통신의 흐름을 바꾼 스티브 잡스의 대표 혁신 모델이다.

애플의 고민은 중장기 전략이다. 신규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아이디어, 실리콘밸리의 슈퍼급 인재를 하나로 모으는 리더십은 모두 잡스에게서 나왔다. 쿡이 회사 운영은 훌륭히 해내겠지만 애플이 지금껏 보여준 혁신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잡스는 “소비자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본 뒤 물건을 만들면 이미 때는 늦는다. 그때쯤 소비자는 또 다른 새로운 물건을 찾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는 소비자의 미래를 보는 사람이었다.

쿡도 그럴까. 이순학 애널리스트는 “쿡은 과거 마케팅 능력이나 사업적 기질은 보여줬지만, 그가 미래의 IT 트렌드를 읽어내는 통찰력까지 겸비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신동엽 교수는 “잡스는 주변 사람을 열광하게 하고 감정 몰입을 통해 자발적으로 일하게 만드는 ‘카리스마적 리더’의 전형이었다”면서 “카리스마적 리더가 옳은 방향으로 이끈다면 그 조직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카리스마적 리더의 가장 큰 약점은 ‘승계’다. 이들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들이 떠난 뒤 조직이 갑자기 무너지기 쉽다. 대표적으로 빌 게이츠가 떠난 마이크로소프트(MS)를 들 수 있다, MS는 모바일시대를 준비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한다. 월트디즈니도 창업자 월트 디즈니가 사망한 뒤 하락세를 면치 못했으며, 갖가지 적대적 인수 시도에 시달리기도 했다. 1984년 파라마운트 픽처스에서 마이클 아이즈너를 CEO로 영입한 뒤에야 ‘인어공주’ 등으로 가까스로 부활에 성공했다.

신 교수는 “잡스의 카리스마와 혁신 능력을 조직 속에 스며들게 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잡스에 의존한 조직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에 따라 애플 미래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에는 기회가 왔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당장 잡스의 사임이 부품 공급처이자 경쟁자인 국내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하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8월 25일 잡스 퇴임 소식에 삼성전자 주가는 장 초반 4% 가까이 급등했으며, 결국 2.40% 오른 채 장을 마감했다. LG전자도 1.27% 올랐다. 최근 증시 폭락 상황에서 오랜만의 반등이었다.

하지만 이미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헤게모니를 쥔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 기업은 포스트 잡스, 포스트 아이패드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다.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이어지는 라인업 이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기업에는 진정한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정보통신공학부 정태명 교수는 “‘포스트 잡스 시대’를 누가 이끌 것인지에 관심의 초점을 둬야 한다”면서 “사람을 키우는 데 집중해 3년 후쯤 치러질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드웨어 기반의 산업을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꾸고, 인재에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다.

잡스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람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연구개발(R·D)에 얼마나 돈을 쓰는지와 혁신은 상관관계가 없다”면서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애플 연구개발비는 IBM의 100분의 1도 안 됐다. 혁신은 돈이 아닌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말했다. 정 교수 역시 “잡스 같은 사람이 키운다고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노력조차 안 하면 3년 후쯤 있을 전쟁에서 큰 위기를 맞게 된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803호 (p126~127)

김현수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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