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3

2011.09.05

‘연금’이라는 효자 당신은 키우고 계십니까?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1-09-05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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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금’이라는 효자 당신은 키우고 계십니까?
    경기 수원시 한 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일하다 2007년 정년퇴직한 K씨는 아내도 교사 출신이다. 두 사람은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부부가 받는 교원연금이 월 600만 원에 달해 은퇴생활을 그야말로 풍요롭게 보내기 때문이다. K씨는 철이 바뀔 때마다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온다.

    그는 며느리에게도 인기 최고다. 이번 추석에도 두 며느리가 집에 오면 ‘용돈’을 듬뿍 안겨 보낼 생각이다. 그래도 돈이 남아돈다. 그럴 때면 동네 아파트 노인정에 들러 탕수육, 짜장면을 쏜다. K씨는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어야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 같다”면서 “연금이 최고 효자”라고 말한다.

    여교사가 배우자감 1순위다. 결혼정보업체 선우가 만남 수락 비율을 분석했더니 여교사가 62.2%로 압도적 1위였다. 서울교대를 졸업한 3년 차 교사 김현수(26) 씨는 주말마다 맞선, 소개팅에 시달린다. 선우 관계자는 “여교사가 배우자감으로 인기인 이유는 연금과도 관련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임의 가입 신청자 증가

    대한민국은 연금에 목마르다. 미래가 불안한 탓이다. 복지 논쟁이 거센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패러다임도 바뀌었다. 연금에 무관심하던 20~30대가 연금을 공부한다. 양위동(37) 씨도 그런 경우다. 자영업을 하는 양씨 아내(34)는 지난해 12월 국민연금에 가입했다.



    양씨 아내처럼 국민연금 가입 의무가 없는 자영업자나 가정주부의 국민연금 임의 가입 신청이 증가하는 추세다. 2009년 하루 평균 238건이었으나, 2011년엔 하루 평균 677건씩 늘었다. 2011년 상반기에만 국민연금 임의 가입 신청자가 50만 명 증가한 것. 국민연금은 오래 살수록 이익이다. 게다가 수령액에 물가인상률을 반영한다. 단, 조기 사망하면 손해다.

    양씨 부부처럼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이가 늘고 있다. 복권도 연금식이 인기다. 부동산담보로 연금을 받는 주택연금 가입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펀드도 목돈을 맡긴 후 월급처럼 매달 돈을 받는 월지급식이 화제다.

    월지급식 펀드는 매달 일정 금액을 넣어 목돈을 키우는 펀드와 정반대로 설계했다. 목돈을 넣은 뒤 ‘월급’을 받는 형태다. 투자 성과에 따라 원금이 고갈하는 시점이 미뤄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한국에서 월지급식 펀드가 화제인 것은 베이비부머(1955~63년생)가 은퇴하기 시작해서다. 일본도 단카이 세대의 맏형(1947년생)이 60세를 맞은 2007년에 월지급식 펀드투자 규모가 폭증했다.

    노후생활자금 5억 원을 마련해 장롱에 넣어두고 월 200만 원씩 곶감 빼먹듯 쓰면 14년 만에 동난다(매년 물가상승률 5% 가정). 5억 원을 운용해 연 8% 수익을 내면 30년을 쓸 수 있다. 월지급식 펀드는 이런 원리를 활용했는데, 현실적으로 30년간 매년 8% 수익을 내는 것은 어렵다. 투자엔 위험이 따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없어서 못 파는 ‘연금복권 520’

    ‘연금’이라는 효자 당신은 키우고 계십니까?
    연금의 매력은 매달 투자금액이 적다는 점이다. 부동산을 구입해 세를 받으려면 수억 원이 필요하지만, 연금은 매달 소액 투자로 말년에 생활비를 받는다. 양씨는 8월 연금저축펀드에 가입했다. 투자 기간에는 세금을 내지 않고, 연금을 받을 때 소득세를 내는 상품이다. 연 400만 원 한도로 소득공제 혜택도 받는다.

    양씨처럼 개인연금에 가입하는 사람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을 제외한 사적연금 시장이 지난해 처음으로 200조 원을 넘은 데 이어, 올해는 25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연금보험, 연금저축, 변액연금 시장만 200조 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시장도 지난해 29조5000억 원에서 올해 50조 원 안팎으로 늘어나리라 전망한다.

    한국 가계자산의 80%가 부동산이다. 부부가 만 60세가 넘고, 9억 원 이하의 주택을 보유했다면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다. 주택연금 가입 건수는 제도를 도입한 2007년 515건에서 2010년 2016건으로 늘었다. 가입 신청자의 평균연령은 73세. 주택연금 역시 오래 살수록 이익인 상품이다. 가입자와 배우자가 사망하면 주택을 매각해 지급한 연금을 회수하고 남은 돈을 상속인에게 준다. 연금으로 지급한 액수보다 집값이 낮을 때는 상속인에게 부족분을 청구하지 않는다.

    양씨는 부모에게 주택연금에 가입하라고 권했다. 부모는 “괜찮다”며 거절했다. 그가 부모에게 가입을 독촉하는 이유가 흥미롭다.

    “부모 가운데 한 분이 100세까지 사시면 저도 70대 중반이에요. 그때 집을 상속받아 뭐에 쓰겠습니까. 넉넉하게 여생을 즐기게끔 해드리는 게 효도 아닌가요. 주택연금에 가입할 거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입하는 게 이득이기도 하고요. 부모님 용돈 드릴 돈으로 저는 개인연금을 하나 더 들면 되죠.”

    공적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저소득층은 9만1000원의 기초노령연금으로 살아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금복권을 파는 가게가 끼니때 밥집처럼 북적인다. 매달 500만 원씩 연금식으로 당첨금을 지급하는 ‘연금복권 520’은 없어서 못 판다. 복권 주요 구매자인 저소득층뿐 아니라, 중산층도 이 복권에 매력을 느낀다.

    연금은 인간이 고안해낸 금융상품 가운데 현금 흐름이 가장 뛰어나다. 한국보다 먼저 ‘늙은’ 일본에선 부동산 보유자가 고전했다.

    그렇다고 아무 상품에나 무턱대고 가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추석 연휴에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연금을 공부해보는 것은 어떨까. 부모와 자식이 미리 주택연금 가입 여부를 논의해보는 것은 어떨까.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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