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5

2011.07.11

“바른말 해서 좌충우돌? 백번이라도 듣겠다”

한나라당 홍준표 신임 대표 “더 많은 쓴소리 … 내년 총선 시스템 공천 실천할 것”

  • 최우열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nsp@donga.com

    입력2011-07-11 0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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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말 해서 좌충우돌? 백번이라도 듣겠다”

    ● 1954년 경남 창녕 출생<br>● 영남고 졸업<br>● 고려대 법대 행정학과 졸업<br>● 제24회 사법시험 합격<br>●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슬롯머신 사건 수사)<br>● 15, 16, 17, 18대 국회의원<br>● 2008~2009년 한나라당 원내대표<br>● 2010년 한나라당 최고위원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발표 직전인 7월 7일 0시를 갓 넘긴 시간.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강원 평창의 스키점프 경기장에서 낭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 등 여야 지도부와 함께 자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홍 대표의 눈빛이 달라졌다. 민주당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인사말을 한 뒤부터였다. 보좌진이 홍 대표 주변을 바쁘게 뛰어다녔다.

    이 전 지사는 “평창에 올림픽을 유치하더라도 성공한 올림픽, 흑자 올림픽이 돼야 한다. 실패하면 안 된다. 그러자면 여당 홍 대표와 박 전 대표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분들의 큰 지지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모두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바라고 있을 때 이 전 지사는 유치 이후 얘기를 꺼낸 것이다. 강원도 민심을 자극하면서도 홍 대표를 비롯한 여당에 책임론을 덧씌우려는 다목적 포석이 담긴 말이었다.

    이후 그는 오전 10시로 예정된 한나라당 최고위원회를 취소했다. 그 대신 유치 발표 직후인 새벽 1시 김황식 국무총리와 당 지도부 모두가 참석하는 즉석 고위당정회의 일정을 잡았다. 이 자리에서 홍 대표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는 과거 정부에서는 실패했다. 이 정권에 들어와 정부와 한나라당이 역점 사업으로 추진한 결과 오늘 같은 국가적 경사를 맞았다”고 두 차례 강조했다. 그는 즉시 당 강원도 발전 특위를 설치해 강원도 지원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즉석 고위당정회의가 전적으로 이 전 지사를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홍 대표는 이미 몇 수를 뛰어넘는 복잡한 셈법을 하고 있었다.

    7·4전당대회에서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홍 대표는 당대 최고의 전략가로 평가받는다. 전당대회 직전인 6월 29일과 직후인 7월 5일 가진 홍 대표와의 인터뷰, 그리고 평소 그와 나눈 여러 차례의 대화를 통해 그의 철학 및 정책을 뜯어봤다. 그는 당선 직후 눈시울을 붉힌 채 빚쟁이에게 머리채를 잡혔던 어머니 얘기를 꺼냈다.

    가난과 배고픔에서 시작한 변방 의식



    “바른말 해서 좌충우돌? 백번이라도 듣겠다”

    한나라당 홍준표 신임 대표의 1995년 변호사 시절 모습.

    “여섯 살 즈음인가. 정부가 농어촌 고리채 신고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채무자가 신고하면 채권자가 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도록 했는데, 어머니가 신고하자 우리 마을에 고리채 하는 부자 아줌마가 어머니 머리채를 잡고 길거리에서 끌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어렸을 때 내가 당해봤기 때문에 대부업체, 고리채에 대한 반감이 큽니다.”

    홍 대표는 찢어지는 가난을 안고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울산 현대조선소에서 일당 800원짜리 비정규직으로 야간에 백사장 철근을 지키는 일을 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달비(부녀자의 머리카락) 장사를 하며 근근이 생활을 유지했다. 대구에서 초중고교를 다니는 동안 물로 배를 채우며 가난과 배고픔을 참아냈다. 검사 시절인 1993년엔 ‘슬롯머신 사건’으로 박철언 전 의원을 구속했다. 그는 인기 TV 드라마의 모델이 되면서 ‘모래시계 검사’로 불렸다. 잠시 주류가 되는 듯했지만 ‘변방’ 인생은 이어졌다. 그가 정권에 부담을 주는 수사를 계속하자 정권은 그를 ‘럭비공 검사’라며 밖으로 밀어냈다.

    ‘럭비공’ 꼬리표는 지금도 그를 따라다닌다. 요즘도 계속되는 “좌충우돌이다” “안정감이 없다”는 주변 평가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그는 “나를 반대하는 집단이 악의적으로 만든 말”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30대 초반 검사 시절에 검찰 수뇌부와 정권 핵심을 대상으로 수사하니 보수 언론에서 돈키호테라고 했습니다. 기득권층이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데 대해 ‘불안정하다’고 왜곡해온 것입니다. 원내대표를 하면서 내가 ‘비주류 생활을 청산하고 주류에 왔는가 했는데 돌아보니 여전히 비주류였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 말을 이용해) 친이(친이명박)계 핵심 의원 몇몇이 끊임없이 공격하고 사퇴하라고 떠들었죠. 그때 참 힘들었습니다. 그런 얘기는 나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주장일 뿐입니다.”

    홍 대표는 4·27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분당의 공천 책임을 묻자 많은 아쉬움을 표했다.

    “나는 처음에 강재섭 전 대표 공천에 반대해 조윤선 의원을 공천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친이계가 강 전 대표 공천을 막으려고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밀었죠. 그런데 그는 실패한 총리였습니다. 세종시 파문도 있었죠. 또한 병역 면제 과정에 의혹이 있었고 신정아 자서전 파동도 있었습니다. 분당에서 몰매를 맞기 시작하면 선거 안 된다고 봤죠. 결국 내 말대로 조 의원을 공천했으면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출마할 일이 없었고 선거에서도 이겼을 것입니다.”

    정 전 총리에 대한 거침없는 평가처럼 그의 논리와 비판은 항상 명쾌하다. 남이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을 스스럼없이 해버린다. 정곡을 찔러 상처받는 사람도 많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월 김태호 전 국무총리 후보자와 12월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를 지명하자 당에서 가장 먼저 “부적격자”라며 일갈한 이도 홍 대표다. 결국 그들은 모두 여론의 뭇매를 맞고 낙마했다. 이 때문에 그는 “사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정보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당 최고위원으로 있었던 지난 1년 동안 이런 통찰력과 추진력을 여지없이 발휘했다. 서민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다소 과감한 정책을 상당수 관철했다. 대·중소기업 납품단가 조정신청제도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할 때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금융기관 영업이익의 10%를 서민대출로 강제하는 정책도 추진했다. 당 정책위와 금융업계로부터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훼손하는 정책”이라고 맹비난을 받았지만 모두 관철했다. 앞으로 당대표로서 추진할 핵심 서민정책 중에는 민주당도 적극 지지하는 정책이 섞여 있다. 중소기업 고유 업종 지정제도가 그것이다.

    “대부업체 이자율 완화 문제와 중소기업 고유 업종 지정제도를 최우선으로 정리하겠습니다. 특히 과거에는 대기업이 중소기업 사업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제한했는데, 지금은 중소기업 고유 업종 지정제도가 없어졌습니다. 그렇다 보니 대기업이 두부 가공, 콩나물 재배까지 참여하고 있어요. 재래시장 활성화뿐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해서라도 대기업 진출을 제한해야 합니다.”

    홍 대표는 여당에서 이 대통령, 김윤옥 여사와 개인적인 친분이 가장 두텁다. 사석에선 이 대통령과는 ‘형님’ ‘동생’이라 부르고, 김 여사는 “준표야”라고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그를 정치적으로 가까이 두지 않았다. 정권 초 홍 대표가 마음에 뒀던 법무부 장관직도, 지난해 도전했던 당대표직도 선뜻 내주지 않았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대통령은 홍 대표가 워낙 자기 주장이 강하고 귀에 거슬리는 쓴소리를 많이 해 옆에 두기 부담스러워한다”고 입을 모은다. 홍 대표 스스로도 “나는 친이계가 아니다. ‘친이명박’일 뿐”이라며 대통령 계파임을 부인한다.

    “이 대통령은 ‘보드라운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을 데리고 일하기엔 거북할 것입니다. 나는 이 정부에 부채도 없고 받은 것도 없습니다.”

    “바른말 해서 좌충우돌? 백번이라도 듣겠다”

    7월 4일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신임 대표로 선출된 홍준표 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도코다이’ 부메랑과 공천 과제

    그래서 그는 현 정권에서 이 대통령과 가장 친한 사람이지만 계파가 없는 비주류로 남았다. 이런 면은 박 전 대표 쪽도 마찬가지다. 홍 대표는 공·사석에서 스스럼없이 박 전 대표를 비판한다. 사석에서 박 전 대표를 지칭하는 단어도 ‘공주님’이다. 한 친박(친박근혜)계 의원은 “홍 대표가 친이계가 아니라고 해도 ‘아군’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스스로를 ‘도코다이(단독, 계가 없는 비주류)’라고 하면서 자유롭게 각종 사안에 대해 비판해왔다. 그러나 이것이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모두 홍 대표를 부담스러워하는 ‘부메랑’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반면 이런 점 때문에 이번 전당대회에서 양 계파와 중립 성향의 당원 모두에게 지지를 받았다는 반론도 있다. 심지어 그는 대표가 되고 난 일성으로 계파 해체를 주장했다. “계파 활동하면 공천 안 준다”는 발언에 한나라당 일부에선 반발이 일기도 했다.

    “시스템에 의한 공천을 하자는 것입니다. 내가 얘기한 건 계파 활동만 ‘전념’하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뜻이죠. 전당대회 과정에서 누차 얘기했습니다.”

    홍 대표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는 내년 총선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다. 특히 친이, 친박의 경계를 허무는 화합공천을 통해 국민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이기는 공천’을 해 총선에서 승리하는 게 한나라당의 정권 재창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는 내년 총선 목표 의석수에 대해 “15대 총선 때 결과 정도면 대성공으로 본다”고 답했다. 15대 총선 당시 신한국당은 139석을 얻었으며, 현재 한나라당은 170석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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