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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 | 그 섬에선 시간도 쉬어간다

파도와 바람도 반가운 대한민국 최남단에 서다

남해 제주 마라도

  • 글 ·사진 양영훈

파도와 바람도 반가운 대한민국 최남단에 서다

파도와 바람도 반가운 대한민국 최남단에 서다

띠가 군락을 이룬 마라도 풍경.

파도와 바람도 반가운 대한민국 최남단에 서다

학생과 선생님이 각각 3명뿐인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

북위 33도 6분 33초, 동경 126도 11분 3초. 국토 최남단 섬 마라도의 위도다. 제주도 서남부 해안의 어느 오름 정상에서도 바라다 보이는 마라도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가랑잎 같다. 그러나 배를 타고 좀 더 다가가면 널빤지처럼 보이고, 배가 섬에 닿을 즈음엔 거대한 항공모함 형상이다. 가랑잎이든, 항공모함이든 태평양과 동지나해에서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 앞에 위태로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거칠 것 없는 마라도의 바다는 늘 파도가 높다.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날에도 바다는 잠시도 가만있질 못한 채 꿈틀거리고, 심지어 육지까지의 뱃길이 며칠씩 끊기기 일쑤다. 그래서 제주도 토박이는 가파도와 마라도 사람에게 진 빚은 “가파도(갚아도) 좋고 마라도(말아도) 좋다”는 우스갯소리를 곧잘 한다.

마라도는 섬 전체가 마라도해양도립공원이자 마라도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423호)이다. 전체 면적은 0.3㎢(약 10만 평)에 불과하다. 해안선 길이를 다 합해도 4.2km밖에 되지 않고 동서 너비는 500m, 남북 길이는 1200m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영락없이 고구마처럼 생겼다. 그러나 뱃전에서는 섬의 형상을 한눈에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저 도도록한 풀밭 위에 등대 하나만 우뚝 서 있을 뿐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나마도 아예 자취를 감춰버리고, 시꺼먼 절벽만 눈앞에 우뚝하다.

배는 파도와 바람 상태에 따라 동북쪽의 살레덕선착장이나 서북쪽의 자리덕선착장에 닿는다. 예전에는 동남쪽의 장시덕과 서남쪽의 신작로 선착장도 이용했다. 어느 쪽에 내리든 동선(動線)은 시계 방향으로 이어져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섬 전체를 한 바퀴 둘러보는 데는 잰걸음으로 1시간, 소걸음으로 느긋하게 걸어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그러므로 굳이 동선을 따질 필요도 없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배 시간만 제대로 맞추면 된다.

살레덕선착장을 통해 마라도에 발을 내딛었다면 발길은 자연스레 등대가 있는 언덕으로 향한다. 아득한 해안절벽 위의 부드러운 풀밭길을 10분 남짓 걸으면 등대에 당도할 수 있다. 해발 39m로 마라도에서 가장 높은 해안절벽 위에 마라도의 상징인 마라도등대(064-792-8507)가 서 있다. 1915년 처음 불을 밝힌 마라도등대는 섬 자체보다 더 유명하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해도(海圖)에 제주도는 없어도 마라도등대는 반드시 표기돼 있다고 한다. 38km 밖 해상까지 뻗어나가는 이 등대의 불빛이 제주도 남쪽 바다의 항로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마라도등대는 섬 풍경을 훨씬 더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조형물 구실도 한다. 이토록 작고 밋밋한 섬에 등대조차 없었다면, 섬 풍경은 아주 단순하고 삭막했을 것이다.



파도와 바람도 반가운 대한민국 최남단에 서다

마라도 풀밭에서 캠핑하는 모습.

우뚝한 등대와 거대한 옹기를 엎어놓은 듯한 성당 옆을 지나치면 ‘大韓民國最南端(대한민국최남단)’이라고 새겨진 비(碑)가 보인다. 마라도에 상륙한 관광객은 거의 어김없이 이 비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사실 마라도의 가장 큰 의미와 가치도 대한민국 최남단이라는 상징성에 있다. 그러므로 최남단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것이 일종의 통과의례가 됐다.

최남단비 부근의 갯바위에는 마라도 주민이 신성하게 여기는 장군바위가 있다. 천신이 지신을 만나려고 내려오는 길목이라 해서 예전에는 매년 해신제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마라도의 본향당은 섬의 맨 북쪽에 자리한 아기업개당이다. 주민들을 대신해 억울하게 죽었다는 아기업개(보모)의 넋이 서린 곳으로, ‘처녀당’ 또는 ‘할망당’이라고도 불린다.

줄곧 남쪽으로만 뻗어가던 길은 최남단비를 지나면서부터 다시 북쪽으로 휘어진다. 동화 속 집처럼 생긴 초콜릿박물관도 있고, 아담한 카페도 있다. 상주인구가 100명도 안 되는 섬치고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건물이 많다. 민박집과 횟집뿐 아니라, 면 소재지 마을에나 있을 법한 교회, 절, 성당, 전화중계소, 경찰초소, 복지회관, 학교, 편의점, 자장면 집도 눈에 띈다.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대부분의 민가는 민박집이나 횟집으로 변모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건물 대부분이 서남쪽 해안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그곳만 벗어나면 부드러운 초원과 상쾌한 바다가 시야에 가득 찬다.

마을을 빠져나오는 지점에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가 있다. 2011년 현재 선생님 3명, 학생 3명이 있다고 한다. 학교 규모는 아주 작지만, 해안절벽 가까이의 풀밭에 세워진 학교 건물이 퍽 아담하고 멋스럽다. 특이한 형태의 울타리와 교문도 눈길을 끈다. 제주도 특유의 현무암 돌담이 울타리를 이루고, 3개의 구멍이 뚫린 돌기둥에 나무막대를 걸쳐놓은 정낭이 교문이다.

학교 뒤쪽의 풀밭을 가로질러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면 자리덕선착장이다. 선착장 주변의 해안절벽에는 커다란 해식동굴이 곳곳에 형성돼 있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동굴 규모가 자못 웅장하다. 선착장을 막 빠져나오는 배 위에서 섬 쪽을 바라보면, 마치 커다란 고래 입에서 간신히 탈출한 듯한 느낌이 든다. 마음속에서 안도감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마라도는 시야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제 본래의 모습을 하나둘 감춘다. 마침내 섬은 온데간데없고 창망한 바다에는 작은 가랑잎 하나만 두둥실 떠 있다.

파도와 바람도 반가운 대한민국 최남단에 서다

1 마라도 북쪽 해안에 자리한 애기업개당. 2 독특한 형태의 마라도 성당과 마라도의 상징인 등대. 3 마라도 별미로 자리 잡은 해물자장면.

여/행/정/보

●숙박

마라도펜션(064-792-7272), 제일민박(064-792-8512), 별장민박(064-792-3322), 최남단민박(064-794-5507) 등의 민박집이 있다.

●맛집

대부분의 민박집이 식당을 겸해 숙식을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 주로 생선회, 매운탕, 회덮밥, 생선조림을 내놓는다. 마라도를 찾은 관광객 둘 중 한 명은 자장면을 먹는다. 맨 처음 영업을 시작했다는 마라도짜장면집(064-792-8506)을 비롯한 자장면 전문점이 7곳이나 성업 중이다. 미역과 해물이 많이 들어간 해물자장면과 해물짬뽕이 먹을 만하다.

교/통/정/보

●모슬포↔마라도

모슬포항에서 삼영해운(064-794-3500)의 21삼영호와 모슬포1호가 하루 7회(10:00~16:00 매시 정각) 출항한다. 그리고 30분 뒤 마라도에서 출항한다. 이용객이 몰리는 주말과 휴일에는 왕복으로 예약하는 것이 좋다. 송악산 아래 산이수동선착장에서도 마라도행 유람선이 출항한다.

●섬 내 교통

자동차는 없다. 전동 카트를 빌려 탈 수 있지만, 섬이 워낙 작아 걸어 다니는 편이 오히려 낫다.



주간동아 2011.06.20 792호 (p62~65)

글 ·사진 양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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