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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 | 그 섬에선 시간도 쉬어간다

‘학익진’으로 왜군 섬멸 영원불멸 ‘이순신의 바다’

남해 통영 한산도

  • 글 ·사진 양영훈

‘학익진’으로 왜군 섬멸 영원불멸 ‘이순신의 바다’

‘학익진’으로 왜군 섬멸 영원불멸 ‘이순신의 바다’

1 두억리 앞 바다에 서 있는 거북등대. 2 한산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한산대첩기념비.

전남 여수의 오동도에서 경남 통영의 한산도에 이르는 뱃길을 흔히 ‘한려수도(閑麗水道)’라 일컫는다. ‘300리 한려수도’라고도 하는 이 뱃길 주변에는 200여 개나 되는 섬이 올망졸망 떠 있다. 우리나라 제일의 청정해역인 한려수도에는 빼어난 절경도 많아서 관광객의 발길이 1년 내내 끊이질 않는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려수도 바다는 곧 ‘이순신의 바다’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 휘하의 조선 수군이 왜군에 맞서 통쾌한 승리를 거둔 전적지가 한려수도에 산재해 있다. 특히 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했던 한산도에는 지금도 당시의 자취와 사연을 담은 지명이 여럿 남아 있다.

한산도를 거론할 때마다 삼도수군통제영이 들어서기 1년 전인 1592년(선조 25) 7월 8일에 있었던 한산대첩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휘하의 조선 수군이 치른 해전 가운데 가장 큰 역사적 의의를 지닌 해전이기 때문이다. 행주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꼽힐 뿐 아니라, 개전(開戰) 초 왜의 수군에게 빼앗긴 남해 제해권(制海權)을 조선 수군이 다시 장악한 전투이기도 하다.

1592년 7월 8일 아침, 5척의 날쌘 판옥선으로 수십여 척의 왜군 병선을 공격하던 조선 수군은 전의를 잃고 달아나는 척하며 한산도 앞바다로 왜군을 유인했다. 예상했던 대로 왜군 병선은 기세 좋게 한산도 앞바다까지 쫓아왔다. 그러자 줄곧 도망치기만 하던 조선 수군이 북소리를 신호로 급히 뒤돌아 좌우로 갈라지면서 적선을 에워쌌다. 이른바 ‘학익진(鶴翼陣)’을 펼친 것이다.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으로 진을 치고 적을 공격하는 학익진은 고도의 항해 기술과 많은 훈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쓰기 어려운 진법(陳法)이다. 갑작스러운 학익진과 거북선의 위용에 당황한 왜군 병선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대패했다. 겨우 목숨만 부지한 왜장 와키자카는 14척의 병선을 이끌고 도망치기에 급급했으며, 적선 73척 가운데 59척은 불타거나 조선 수군의 손에 들어왔다. 또한 400여 명의 왜군은 한산도로 도주했다가 뒷날 겨우 탈출하기도 했다. 반면 아군은 몇 명의 사상자만 냈을 뿐, 단 한 척의 병선도 손실을 입지 않았다.

현재 제승당이 자리한 한산면 두억리는 한산대첩 당시 바다에 떨어진 왜군의 목이 억 개나 됐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라고 한다. 두억리 포구인 문어포(問語浦)는 황급히 도주하던 왜군들이 길을 물었던 포구라는 뜻의 지명이다. 그리고 제승당 뒤편의 개미목은 도주로가 끊긴 왜군이 개미처럼 달라붙었던 곳이고, 한산도 북쪽 바다에 떠 있는 해갑도(解甲島)는 충무공이 갑옷을 벗고 잠시 쉬었던 곳이라고 한다.



아무튼 한산도 해전에서 왜군의 주력부대가 괴멸함으로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수륙병진전략(水陸竝進戰略)은 좌절됐다. 반면, 육지에서의 거듭된 패배로 사기가 크게 저하돼 있던 아군에게는 큰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다. 선조는 한산대첩의 공훈을 인정해 충무공을 제1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다. 충무공은 전라 좌수영(여수)에 있던 삼도수군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겼다. 지금의 제승당 일대(사적 제113호)가 1593년 7월에서 1597년 2월까지 통제영이 자리하던 곳이다. 현재 제승당, 수루, 한산정, 충무사 등의 건물이 복원돼 있다.

‘학익진’으로 왜군 섬멸 영원불멸 ‘이순신의 바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하는 ‘한산도가’ 무대인 수루.

통영항에서 배에 몸을 싣고 호수처럼 맑고 잔잔한 바다에 봉긋봉긋 솟은 섬들 사이를 20분쯤 가면 한산도의 제승당선착장에 당도한다. 거기서 동백나무와 우람한 소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산책로를 따라 1km쯤 걸으면 제승당에 도착한다. 오늘날 제승당은 한산도의 통제영 유적지 전체를 지칭하는 이름이 됐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제승당은 충무공이 휘하의 장수들과 함께 전략회의를 하던 건물로, 처음에는 운주당(運籌堂)으로 불렸다고 한다. 제승당 옆 수루는 충무공이 수시로 올라 왜군의 동태를 살폈다는 망루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로 시작하는 ‘한산도가’의 배경이 된 바로 그 수루다. 제승당 뒤편으로 돌아가면 충무공이 군사들과 함께 활쏘기를 연마했다는 한산정에 이른다. 활을 쏘는 한산정과 화살이 꽂히는 과녁이 만입(灣入)한 바다를 사이에 두고 145m나 떨어져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제승당과 주변 건물들은 모두 1970년대에 충무공 유적지 성역화사업의 일환으로 성급하게 복원된 콘크리트건물이다. 그래서 전통 건물 특유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예스러운 멋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건물들보다 오히려 제승당 초입에 있는 우물이 더 예스럽다. 여전히 맑은 샘물이 솟아나는 이 우물은 충무공이 제승당에 머물렀을 당시에도 사용됐던 것이라고 한다.

한산도를 찾은 관광객은 대부분 제승당만 둘러보고 다시 배에 오른다. 이는 제승당이 워낙 유명한 유적지인 탓도 있지만, 한산도에는 빼어난 절경이나 느긋하게 쉬어갈 만한 해수욕장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수욕을 즐기려면 면 소재지인 하소리의 진두선착장에서 도선을 타고 추봉도의 봉암몽돌해수욕장으로 건너가야 한다. 길이가 1km쯤 되는 이 해수욕장에는 몽돌과 색채석(色彩石)이 깔려 있는데, 수석 애호가들은 이곳에서 나오는 ‘봉암수석’을 최고로 친다고 한다. 추봉도는 세종 1년(1419년)에 이종무 장군이 일본 쓰시마를 정벌할 당시 병선 227척과 군사 1만7000명을 집결시켰다가 출발했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한산도의 한복판에는 전망 좋은 망산(293m)이 우뚝하다. 말 그대로 ‘망을 보던 산’답게 사방으로 시야가 훤하다. 제승당선착장에서 망산 정상까지 3.9km를 오르는 데는 1시간 30분가량 걸린다. 망산에 올라선 뒤에는 3.1km 거리의 야소마을이나 2km쯤 떨어진 진두마을로 하산하면 된다. 한산면 소재지인 진두마을이 식당이나 숙소, 교통편을 이용하기에 더 편하다.

‘학익진’으로 왜군 섬멸 영원불멸 ‘이순신의 바다’

1 한산도의 통제영 유적지에 복원돼 있는 제승당과 수루. 2 한산도와 다리로 연결된 추봉도의 봉암몽돌해수욕장. 3 바다 저편에 위치한 제승당 한산정의 과녁.

여/행/정/보

●숙박

한산도에는 바들향펜션(055-643-8891), 한산펜션(055-641-7811), 별장민박(055-648-5122), 늘푸른민박(055-643-6788), 한산황복명가(055-649-3089)가 있고, 추봉도의 봉암몽돌해수욕장 입구에는 추봉도바다펜션(055-642-8678), 추봉펜션(055-648-1212) 등이 있다.

●맛집

추봉대교 부근의 면 소재지 마을에만 우리들식당(전복죽, 055-648-5511), 보리수식당 (생선회, 055-642-8262), 한산식당(생선회, 055-641-1512), 가고파식당(055-641-8388)이 있다. 맛과 메뉴, 가격은 비슷한 편이다.

교/통/정/보

●통영↔한산도

통영여객선터미널(055-642-0116)에서 유성해운(055-645-3329, www.gohansan.com)의 시파라다이스호와 뉴파라다이스호가 오전 7시에서 오후 6시까지 매시 정각에 출항하며, 한산도까지 약 30분 걸린다. 통영 도남동의 유람선터미널(055-646-2307)에서도 제승당을 비롯한 통영 일대의 명소를 둘러보는 관광유람선이 수시로 출항한다.

●섬 내 교통

택시는 없고, 부산교통 통영영업소(055-645-2080)와 통영교통(055-643-2070) 소속 버스가 배 시간에 맞춰 운행한다.



주간동아 2011.06.20 792호 (p46~49)

글 ·사진 양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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