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6

2017.05.03

김민경의 미식세계

말랑하고 구수한 고기의 신세계

육우 드라이에이징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7-05-02 14:3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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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식으로 쇠고기를 구워 먹으려면 돈이 꽤 든다. 대형마트, 백화점, 동네 정육점 등에서 사다 집에서 구워 먹는 편이 비교적 저렴한데, 같은 곳에서 구매하더라도 고기 맛이 그때그때 다르다. 환경과 종자가 같은 소일지라도 개체별로 여러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으니 맛을 추측하는 일이 쉽지 않다. 결이 곱고 촘촘한 지방, 즉 마블링으로 무장한 한우는 비싼 대신 맛의 편차가 적은 편이다. 수입 쇠고기는 나라별로 특징이 있겠지만 한우의 기름진 맛에 익숙해진 우리 입에는 육질이 단단하고 싱겁게 느껴질 수 있다. 내 취향에 맞는 균일한 맛의 고기를 꾸준히 즐길 방법은 없을까.

    한우와 수입육 사이에는 육우가 있다. 육우는 우리나라에서 키운 수입 종(홀스타인)  가운데 고기를 목적으로 키우는 수소를 일컫는다. 같은 종의 암소는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다. 육우는 한우에 비해 지방이 적고 단백질은 풍부하다. 달리 말하면 살살 녹는 부드러운 맛이 적고 육질이 단단한 대신, 고소한 맛은 좋다는 뜻이다. 이런 육우의 특징을 풍미와 맛으로 전환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숙성이다.

    숙성에는 건식과 습식이 있다. 두 가지 모두 고기를 부드럽게 할 수 있지만 독특한 풍미를 선사하는 것은 건식 숙성, 즉 드라이에이징이다.

    드라이에이징은 일정 온도와 습도의 공기 중에 고기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방법이다. 이때 지방에서 효소가 생기고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고기가 부드러워지며 생고기와 달리 농후한 풍미를 갖게 된다. 최근에는 드라이에이징 고기를 맛볼 수 있는 식당과 정육점이 꽤 있지만 한우는 생고기보다 몇 배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

    마블링 생성을 위주로 키운 한우는 지방이 많기 때문에 드라이에이징을 거치면 곰팡이가 많이 생긴다. 곰팡이가 핀 부분은 모두 도려내야 하는데 생고기 대비 40~50%의 손실이 생긴다. 맛도 좋아지지만 당연히 값도 비싸진다. 수입육은 유통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숙성이 이뤄진다. 진공포장된 상태에서 일정 온도와 습도에서 보관되므로 일종의 습식 숙성이라 할 수 있다.



    육우는 국내에서 키워 유통되므로 도축, 발골, 분할 직후 신선한 고기를 숙성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지방이 적어 곰팡이가 덜 피니 육량의 손실도 줄고 숙성기간도 2주 정도로 짧다. 그만큼 저렴한 가격에 드라이에이징 고기를 맛볼 수 있다. 육우 특유의 기름기가 적은 고기가 말랑하고 부드럽다. 향은 우유와 치즈처럼 구수하다.

    오랫동안 드라이에이징 육우를 생산하고 있는 ‘아이홈미트’의 임치호 씨에 따르면 육우 숙성은 덩어리째로 온도 1~3도, 습도 70~80%, 기간은 보름 전후가 알맞단다. 숙성시킨 고기는 구워 먹어야 풍미가 제대로 퍼지기 때문에 2~2.5cm 두께로 썰어 바로 진공포장해 그 이상의 숙성을 막는다.

    집에서 먹을 때는 고기 앞뒤로 소금, 후춧가루, 올리브 오일을 발라 상온에 20~30분간 둔다. 드라이 허브가 있다면 함께 마리네이드를 한다.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고기를 올린다. 표면에 육즙이 올라오면 뒤집고 다시 육즙이 배어나면 불에서 내려 5분 정도 잠시 둔다. 이때 고기가 식지 않게 쿠킹포일에 싸두면 좋다. 이왕이면 티본 부위를 선택하자. 안심과 채끝의 완전히 다른 맛을 한번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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