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2

2010.11.15

한류가 寒流로 변해감에 대하여

민족주의와 지나친 상업주의로 ‘한류 위기’… 타 문화 인정과 존중 쌍방교류 필요

  • 김호경 문화칼럼니스트hannasunshine@gamil.com

    입력2010-11-15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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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류가 寒流로 변해감에 대하여

    2010 상하이 엑스포가 5월 1일 개막해 184일 만에 폐막했다. 대회 기간에 한국관을 찾은 관람객은 720여만 명. 사진은 한국관에 들어가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

    상하이 엑스포가 6개월의 대장정을 마쳤다. ‘더 나은 도시, 더 나은 삶’을 슬로건으로 내건 이 엑스포를 통해 중국은 상하이를 뉴욕, 파리, 도쿄와 함께 글로벌 국제도시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신공항과 지하철을 건설하는 등 42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누적 관람객이 1억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이 거대한 제전이 우리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 짚어보기로 하자.

    ‘69성전’ 연예인 팬클럽 사이트 테러

    상하이 엑스포에 마련된 한국관은 중국관, 일본관, 사우디관 등과 함께 가장 가보고 싶은 관 베스트5에 들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한국관은 ‘친절한 도시, 다채로운 생활(friendly city, colorful life)’이란 슬로건으로 탈춤, 판소리, 태권도, 패션쇼, 국악, 난타, 비보이와 한류스타들의 공연을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주제관은 유노윤호와 슈퍼주니어, f(x) 등 한류스타가 출연하는 ‘코러스 시티’였다. 실사와 애니메이션, 멀티미디어 쇼가 결합된 영상을 통해 한중 우정의 가상도시 ‘코러스 시티’를 배경으로 꿈을 이뤄주는 마법사와 중국 장애인 소녀의 우정을 다뤘다. 그러나 엑스포 ‘한국주간’(5월 27~30일)에 벌어진 사건은 이러한 조화가 동상이몽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다.

    발단은 한국주간 마지막 날 열린 슈퍼주니어의 공연. 한국 측 관계자들은 5000장의 표를 한국 팬과 중국 팬에게 골고루 배급하겠다고 공표했으나 실제 중국 팬들에게 지급된 표는 몇백 장에 그쳤다.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중국 각지에서 와 밤을 새웠지만 입장하지 못한 중국 팬들은 주최 측에 욕을 퍼부으며 난동을 부렸고, 이로도 모자라 중국 누리꾼들이 ‘69성전’이란 이름으로 6월 9일 저녁 한국 연예인 팬클럽 사이트에 대한 인터넷 테러를 감행했다. 문제는 이 사건이 단순히 티켓을 얻지 못한 팬들의 분노 때문이라기보다 그동안 쌓인 반한(反韓) 감정이 분출된 것이라는 데 있다. 재중국한인회 김희철 회장은 반한 감정의 뿌리가 역설적으로 한류 열풍에 있다고 말한다.

    “한류의 역풍 또는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한국이 부럽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한국이 얄밉다’고 생각해 혐한(嫌韓) 감정이 생겨났다. 이것이 쓰촨 성 대지진 때 한국인들의 악플(‘중국은 천벌을 받은 것’ 등) 때문에 폭발했고, ‘69성전’으로까지 이어졌다.”



    1997년 중국에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방영되면서 본격적으로 점화된 한류는 이제 13년째다. 중화권의 초기 한류 수용은 체제가 수용할 수 있는 한도에서 가장 적합한 외래문화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시장경제를 도입한 중국은 아무리 자국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려 해도 서구의 문화상품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한류는 서구 및 일본 대중문화가 지닌 장점과 한국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어우러져 중국 사회가 비교적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유교적 가족공동체에서 비롯된 따뜻한 정감, 공동체의 화합과 도덕성을 중요시하며 민주적 가치를 높이 사는 의식 등에서 문화적으로 친밀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2005년 드라마 ‘대장금’이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키자 한류에 대한 반작용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류에 잠식당하는 중국 방송 프로그램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한류에 저항한다’라는 ‘항(抗)한류’의 논리가 등장했고, 중국의 언론들은 한국 드라마와 한류스타를 깎아내리는 글을 앞다퉈 게재했다. 이것이 한·중 누리꾼 간에 사이버 공간에서의 충돌로 이어졌다.

    한류가 寒流로 변해감에 대하여

    대만의 한 음반 매장에 마련된 한국 가수들의 CD 코너.

    초기 반한 감정은 자국의 문화산업을 보호하려는 항한(抗韓) 수준에 머물렀으나 현재는 감정적인 차원으로까지 확대돼 한국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혐한(嫌韓), 원수처럼 대하는 구한(仇韓)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특히 인터넷상에서 한류에 대한 민족적 대항의식을 확산하는 중국 누리꾼들과 이에 감정적으로 맞대응하는 한국 누리꾼들이 인터넷 전쟁이라 할 만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의 G세대(글로벌 세대)와 중국의 바링허우(1980년대 이후 출생자) 등 양국 신세대의 공통점은 자국 문화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다. 부모 세대와 달리 경제적 풍요 속에서 애국주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이들 세대는 서구를 비롯한 외부인에 대한 열등감이 적고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성장해, 타국과 갈등이 생길 경우 즉시 인터넷을 통해 집단적인 힘을 규합하는 공격적인 민족주의 형태를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일부 한국 누리꾼의 이런 국수주의적 성향은 한류가 아시아류로 도약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아시아류로 뻗어야 지속 성장

    백범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이 총칼이 아닌 문화로서 세계에 기여하는 국가가 되기를 희망한다”며 ‘문화 국가론’을 설파했다. 그 바람대로 광복 이후 반세기 만에 한국은 아시아 문화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바야흐로 서울은 왕자웨이의 홍콩에 이어, 아시아에서 가장 힙(Hip)한 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성과는 김연아 선수의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처럼,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라기보다 아직까지도 개개인의 천재성과 노력의 결실일 뿐이다. 문화 향유층이 고르게 분포해 그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마이너 문화가 생성되고 거기서 지지를 받는 문화가 메이저로 떠오르는 선진국형 시스템은 아직 요원하다. 대신 현지화 과정과 문화적 맥락은 생략된 채 누가 빨리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느냐의 각축장으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높다. 과거의 홍콩이 그러했듯, 서구문화 유입 창구로서의 기능에만 만족한다면 언젠가 그 전철을 밟아 한류를 대체할 다른 문화가 아시아를 점령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류가 인기를 끈 이유는 아시아 사람들에게 공동체의 화합과 도덕성을 중시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어필했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적 근접성(Cultural Proximity)에서 비롯된 동아시아적 가치 체제가 서구의 세련된 양식으로 결합한 게 한류의 성공 비결이다. 한국 드라마에 나타난, 한발 앞선 산업화를 경험한 한국인의 생활 모습이 아시아인들에게 역할모델(Role Model)로 떠오르며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문화교류는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경쟁과 지배를 목적으로 삼기보다는 타 문화에 대한 인정과 존중, 배려를 바탕으로 발전해야 한다. 200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문화 다양성 협약’을 통해 문화를 통상협상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동안 한국은 한류를 상호 호혜적 문화교류 측면보다 일방적 수출과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 측면에서만 바라보았다. 한마디로 한류 담론의 문제점은 자민족 중심주의와 지나친 상업주의에 치중해 있다는 것이다. 한류를 상품 취급하며 높은 이윤 창출에만 관심을 보이는 한, 글로벌 한류로 진화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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