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2

2010.11.15

“신자유주의 믿지 마라, 발등 찍힌다”

장하준 교수 “자유시장? 그런 것 없어…비판의 눈 키워야 안 당해”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0-11-15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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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유주의 믿지 마라, 발등 찍힌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10월 28일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국내 번역 출판을 기념해 연 간담회에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언제부턴가 언론이 정부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싶을 때는 그의 책과 말을 인용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장하준(47) 교수 얘기다. 왼쪽에 있는 마르크스, 레닌부터 가장 오른쪽에 있는 하이에크까지 두루 섭렵한 장 교수지만, 세간에는 그를 좌파 경제학자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정작 그는 한국의 우파, 좌파 모두에게서 공격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파는 신자유주의와 날을 세우는 그를 좌파로 낙인찍는다. 반면 좌파는 관치경영을 인정하고 재벌을 옹호하는 그를 우파로 몰아붙인다. 이를 뒤집어보면 우파, 좌파 모두 그들의 입맛에 맞는 부문만 골라서 그를 이해하는 척할 뿐이라는 얘기가 된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도대체 정체가 뭐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우리 논의 중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부분만 골라 ‘보수’다 ‘극좌’다 하는 딱지를 붙여 비판하는 분도 적지 않게 겪었다.”(‘쾌도난마 한국경제’)

    경제학이 죽었다? 신자유주의 종말일 뿐!

    사실 그가 ‘내 편’인지 ‘네 편’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다리 걷어차기’(2004)를 시작으로 ‘쾌도난마 한국경제’(2005), ‘국가의 역할’(2006), ‘나쁜 사마리아인들’(2007) 그리고 최근 출간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2010)까지 그가 줄기차게 설파한 주장의 알맹이를 파악하는 것이다. 다양한 그의 주장 중 백미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주류 경제학계에서 통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론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10월 28일 그는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출판기념회에서 “신자유주의를 30년 해서 안 됐으면 그만둬야 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경제학자들은 2008년 위기를 불러올 환경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중략) 금융 규제 철폐와 무제한적 단기 이윤추구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해준 것이 바로 그들이다. 더 넓게 생각하면 그들은 경제성장의 둔화, 고용 불안과 불평등 악화, 그리고 지난 30년간 전 세계를 괴롭혀온 잦은 금융위기를 불러온 정책을 정당화하는 이론을 주장해왔다.”(‘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초지일관 ‘공정하지 못한’ 신자유주의를 비판했음에도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경제학자는 많지 않았다. 애써 무시하거나, 심하게는 가짜 예언자로 내몰며 주요 경제학 교과서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는 상황을 반전시켰다. 경제 주체와 시장의 합리성에만 의지해 낙관적인 미래를 예상했던 주류 경제학자들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은 죽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장 교수는 경제학이나 자본주의가 죽은 것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는 “수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이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다만 지난 30여 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가의 간섭이 배제된 자유시장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공적인 경제는 이코노미스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는 무조건적인 신자유주의 따라잡기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금융산업 육성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2월 두바이 국제금융센터 회장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엘든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두바이를 벤치마킹해 금융허브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후 온갖 반대를 무릅쓰며 자본시장법을 통과시켰고,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을 개정해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했다.

    “민주사회 시민 되기 가장 어려워”

    “신자유주의 믿지 마라, 발등 찍힌다”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서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면 금융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고, 한국투자공사는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기 직전까지 뭉칫돈을 뿌려가며 해외투자에 열을 올렸다. 금융산업 육성은 대세였고 그 흐름을 누구도 제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장 교수는 “한국도 동북아 금융허브를 한다며 아일랜드, 아이슬란드를 모델로 삼겠다고 했는데 그 나라들은 지금 다 망했다”고 일갈했다.

    “2008년 산업은행이 망하기 직전의 리먼 브라더스를 매입하려고 했는데, 협상이 잘 안 돼서 그렇지 샀으면 나라가 망할 뻔했다. 막연히 ‘탈산업화, 금융허브, 자유무역이 좋은 거니까 해야지’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양면을 보고 뒤집어 봐야 한다.”

    신자유주의에 대해선 매섭게 비판하지만, 그는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국가 주도의 경제 정책과 재벌에 대해선 비교적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인력과 자본을 대기업에 집중해 파이를 키운 뒤 그 성과를 분배해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그렇지만 이런 경제 전략에 대한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사사건건 으르렁대던 신자유주의자와 좌파 경제학자들도 ‘재벌 공격’에는 한목소리를 낸다.

    최근 한화, 태광, C·그룹 등 재벌들의 비자금 수사에서 보듯 재벌의 폐해가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경제성장이 마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달성됐다는 죄책감 아닌 죄책감을 지녀야 했다. 이에 대해 장 교수는 개발도상국의 성장 전략에서 재벌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명쾌한 해석을 내렸다. 이런 논리는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국가의 시장 개입이 필수적이며 신자유주의와 결부한 소액주주 운동은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는 그의 지론과 연결된다.

    “김대중 정부, 특히 노무현 정부에서의 재벌 규제는 기본적으로 주식시장을 통해서 하는 것이었다. (중략) 주주자본주의 논리를 들여와서 박정희가 말한, 기업은 나라를 위해 있는 것이라는 기업보국 논리를 공격한 것이다. (중략) 사회적으로 합의를 도출해서, 정확하게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다시 밑그림을 그려야 할 게 아니냐? 우리나라에서 재벌 역할은 무엇이고, 지은 죄와 잘하는 건 무엇인지, 지금 상황에서 재벌을 어떤 식으로 써야 일반 국민에게 가장 좋은지를 고민해야 한다.”(2009년 1월 14일 ‘서울신문’ 인터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금융위기, 부자감세, 복지 등 경제적 이슈가 거론될 때마다 대중은 그에게 해답을 요구한다. 그는 “민주사회의 시민이 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말로 물고기(해답)가 아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제시한다. ‘경제학이 결코 어렵지 않다’ ‘위정자가 해로운 경제 정책을 추진하려 할 때 일반 시민이 나서서 제동을 걸 수 있는 판단력을 기르자’는 것이 장 교수가 줄곧 부르짖어온 주장의 정수(精髓)다.

    “민주 시민이 되려면 알아야 하는 것이 많다. 핵폐기물에서부터 지구온난화, 복지제도 등 다른 분야 전문가들도 모르는 얘기가 많다. 경제학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모든 것을 비판적이고 다면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독자들이 배웠으면 한다. 철통같던 사실도 자세히 보면 모래성일 수 있다. 뭐든 비판적으로 보자, 그냥 믿지 말자는 것이 가장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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