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둥이” 정오 뉴스 통해 생방송
텔레비전 채널 프랑스2 ‘정오 뉴스’에 특별 게스트로 초대된 장 폴 겔랑은 1983년 출시돼 전설의 향수가 된 삼사라(Samsara)의 제작과정에 관해 인터뷰하던 중 “그때는 정말 깜둥이들처럼 일만 했다. 흑인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인터뷰는 정상적으로 진행됐으나 전국에 방영된 뒤 엄청난 후폭풍이 일어났다. 흑인보호단체(CRAN)는 장 폴 겔랑을 고소했다. 겔랑사의 모기업인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 그룹이 “프랑스2 뉴스에서 장 폴 겔랑이 한 발언은 고의가 아니었음을 장 폴 겔랑과 LVMH의 이름으로 밝힌다”며 상황 수습에 나섰지만, 국민들은 그의 직접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장 폴 겔랑은 프랑스2의 공식 사이트에 대변인이 작성한 사과문을 올렸다.
“어제 했던 흑인 관련 발언은 경솔했다. 한마디 말로 누군가 상처를 받았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더불어 2002년 공식 퇴임 후 겔랑의 상업적인 부분과 관련한 직무는 맡고 있지 않다. 명예직 자문위원으로 활동할 뿐 겔랑 또는 LVMH의 월급을 받는 직원이 아니기에 제 개인의 잘못을 브랜드나 그룹과 연관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과문이라고는 하지만 무성의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다. 더욱이 장 폴 겔랑은 젊은 시절 “깜둥이처럼 일했다”고 했지만 200억 원의 자산을 보유한, 프랑스에서 29번째 부자다.
이러한 그의 태도가 오히려 화를 돋워 이틀 뒤 흑인보호단체는 파리 겔랑 샹젤리제 점 앞에 집결했다. 이들은 ‘깜둥이가 진짜 일하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겠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손님이 많은 오후 2~7시 매장 입구를 봉쇄하며 시위를 계속했다. 결국 겔랑 샹젤리제점은 한낮에 문을 닫아야 했다.
분노한 사람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TF1 방송사 유명 뉴스진행자 아리 로젤마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인으로서, 사람으로서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할 그의 무책임한 발언은 충격이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흑인 뉴스진행자인 그는 “요즘처럼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생방송 중 그런 말을 아무 양심의 가책 없이 내뱉은 진짜 이유가 알고 싶다”며 시위 중인 흑인단체를 지원하고 나섰다. 흑인 앵커 오드레 풀바르도 장 폴 겔랑에게 보내는 편지를 각 언론사에 공개하며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당신은 아직도 아랍인은 도둑이고, 동양인은 헐값의 노동자며, 흑인은 헐벗은 미개인이라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당신의 흑인 비하 발언은 우리에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남아 있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고정관념에 대한 분노를 일깨워주었습니다. 대리인이 급히 쓴 두 줄의 형식적인 사과글은 진심이 담긴 해명을 기다리던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줬을 뿐입니다. 지난 50여 년간 겔랑 향수를 만들고 세계로 수출하려고 깜둥이 취급을 받으며 일한 흑인 노동자들이 불쌍합니다. 저는 깜둥이고 깜둥이로 당당하게 살 것입니다.”
그의 편지는 사태를 바라보던 많은 프랑스인의 마음을 움직였고, 방송이 나간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시위는 계속됐다. 흑인보호단체는 10월 30일부터 ‘겔랑 구매 반대운동’을 벌이며 파리의 겔랑 지점들을 점령했다. 일부 지점은 무기휴업 간판을 걸고 문을 닫았다. 시위대 대변인 미카엘 무티 잠바는 “장 폴 겔랑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지 않을 것이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인터뷰 진행자 방송까지 불똥

파리 겔랑 샹젤리제점 역시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
장 폴 겔랑의 한마디에 타격을 입은 것은 진행자뿐 아니라 방송사인 프랑스2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방송위원회(CSA)는 이날 방송과 관련해 프랑스2에 ‘미숙한 방송’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프랑스2 관계자는 “방송 후 최대한 빨리 진행자와 겔랑 측의 사과문을 공식 사이트에 게재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생방송 중 실수에 미처 대응하지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그깟 사과문으로 상황이 수습되길 바라는 안일한 방송사”라는 생각을 바꾸지 않고 있다.
인종차별 발언을 그대로 내보낸 프랑스2는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ID lol43
천연재료로 사람을 향기롭게 만든다더니… 겔랑은 흑인에겐 향수도 안 팔 사람- ID voilala
오늘 라파예트 백화점 갔다가 시위대를 보고 겔랑 제품 보이콧 서명운동에 동참, 서명하고 왔습니다. 인종차별 냄새 나는 겔랑 향수, 그만 삽시다 - ID flaconi07
수천 개의 게시물이 프랑스2 사이트에 올라왔다. 프랑스2와 엘리즈 뤼세는 방송위원회의 심의에 따른 처벌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한순간 던진 말 한마디로 스캔들을 몰고 온 겔랑. 세계가 인정하는 향의 장인답게 마음까지 아름다운 향수를 만들기 바란다.
주간동아 762호 (p5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