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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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랑 향수 말실수 “나, 어떡해!”

장 폴 겔랑 ‘흑인 비하’ 발언 일파만파 … 시위 확산에 일부 지점 무기 휴업

  • 파리=백연주 통신원 byj513@naver.co

    입력2010-11-15 1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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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8년 프랑스 파리 겔랑 가문은 향수, 코스메틱 전문 브랜드인 겔랑을 설립했다. 창립 180여 년이 흐른 오늘날 겔랑은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50년대 후반 가업을 이어오던 당시 75세의 자크 겔랑은 젊은 나이에도 향에 관한 천부적 재능을 갖고 있던 손자 장 폴 겔랑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이후 장 폴 겔랑은 겔랑 향수를 상업화했고, 곧 겔랑 향수는 최대 전성기를 맞았다. 올해 일흔셋인 장 폴 겔랑은 2002년 겔랑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신상품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그의 ‘흑인 비하 발언’이 프랑스를 달구고 있다.

    “깜둥이” 정오 뉴스 통해 생방송

    텔레비전 채널 프랑스2 ‘정오 뉴스’에 특별 게스트로 초대된 장 폴 겔랑은 1983년 출시돼 전설의 향수가 된 삼사라(Samsara)의 제작과정에 관해 인터뷰하던 중 “그때는 정말 깜둥이들처럼 일만 했다. 흑인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인터뷰는 정상적으로 진행됐으나 전국에 방영된 뒤 엄청난 후폭풍이 일어났다. 흑인보호단체(CRAN)는 장 폴 겔랑을 고소했다. 겔랑사의 모기업인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 그룹이 “프랑스2 뉴스에서 장 폴 겔랑이 한 발언은 고의가 아니었음을 장 폴 겔랑과 LVMH의 이름으로 밝힌다”며 상황 수습에 나섰지만, 국민들은 그의 직접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장 폴 겔랑은 프랑스2의 공식 사이트에 대변인이 작성한 사과문을 올렸다.

    “어제 했던 흑인 관련 발언은 경솔했다. 한마디 말로 누군가 상처를 받았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더불어 2002년 공식 퇴임 후 겔랑의 상업적인 부분과 관련한 직무는 맡고 있지 않다. 명예직 자문위원으로 활동할 뿐 겔랑 또는 LVMH의 월급을 받는 직원이 아니기에 제 개인의 잘못을 브랜드나 그룹과 연관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과문이라고는 하지만 무성의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다. 더욱이 장 폴 겔랑은 젊은 시절 “깜둥이처럼 일했다”고 했지만 200억 원의 자산을 보유한, 프랑스에서 29번째 부자다.

    이러한 그의 태도가 오히려 화를 돋워 이틀 뒤 흑인보호단체는 파리 겔랑 샹젤리제 점 앞에 집결했다. 이들은 ‘깜둥이가 진짜 일하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겠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손님이 많은 오후 2~7시 매장 입구를 봉쇄하며 시위를 계속했다. 결국 겔랑 샹젤리제점은 한낮에 문을 닫아야 했다.

    분노한 사람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TF1 방송사 유명 뉴스진행자 아리 로젤마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인으로서, 사람으로서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할 그의 무책임한 발언은 충격이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흑인 뉴스진행자인 그는 “요즘처럼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생방송 중 그런 말을 아무 양심의 가책 없이 내뱉은 진짜 이유가 알고 싶다”며 시위 중인 흑인단체를 지원하고 나섰다. 흑인 앵커 오드레 풀바르도 장 폴 겔랑에게 보내는 편지를 각 언론사에 공개하며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당신은 아직도 아랍인은 도둑이고, 동양인은 헐값의 노동자며, 흑인은 헐벗은 미개인이라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당신의 흑인 비하 발언은 우리에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남아 있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고정관념에 대한 분노를 일깨워주었습니다. 대리인이 급히 쓴 두 줄의 형식적인 사과글은 진심이 담긴 해명을 기다리던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줬을 뿐입니다. 지난 50여 년간 겔랑 향수를 만들고 세계로 수출하려고 깜둥이 취급을 받으며 일한 흑인 노동자들이 불쌍합니다. 저는 깜둥이고 깜둥이로 당당하게 살 것입니다.”

    그의 편지는 사태를 바라보던 많은 프랑스인의 마음을 움직였고, 방송이 나간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시위는 계속됐다. 흑인보호단체는 10월 30일부터 ‘겔랑 구매 반대운동’을 벌이며 파리의 겔랑 지점들을 점령했다. 일부 지점은 무기휴업 간판을 걸고 문을 닫았다. 시위대 대변인 미카엘 무티 잠바는 “장 폴 겔랑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지 않을 것이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인터뷰 진행자 방송까지 불똥

    겔랑 향수 말실수 “나, 어떡해!”

    파리 겔랑 샹젤리제점 역시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

    분노는 인터뷰를 진행했던 엘리즈 뤼세에게도 향했다. 그는 장 폴 겔랑의 ‘망발’에도 정확한 수정 없이 웃어넘겨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는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진심인 줄 알았다면 강하게 대응했을 것이다”며 변명했지만 프랑스인들은 “진행자가 게스트의 말을 자세히 안 듣는 게 말이 되느냐”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장 폴 겔랑의 한마디에 타격을 입은 것은 진행자뿐 아니라 방송사인 프랑스2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방송위원회(CSA)는 이날 방송과 관련해 프랑스2에 ‘미숙한 방송’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프랑스2 관계자는 “방송 후 최대한 빨리 진행자와 겔랑 측의 사과문을 공식 사이트에 게재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생방송 중 실수에 미처 대응하지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그깟 사과문으로 상황이 수습되길 바라는 안일한 방송사”라는 생각을 바꾸지 않고 있다.

    인종차별 발언을 그대로 내보낸 프랑스2는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ID lol43

    천연재료로 사람을 향기롭게 만든다더니… 겔랑은 흑인에겐 향수도 안 팔 사람- ID voilala

    오늘 라파예트 백화점 갔다가 시위대를 보고 겔랑 제품 보이콧 서명운동에 동참, 서명하고 왔습니다. 인종차별 냄새 나는 겔랑 향수, 그만 삽시다 - ID flaconi07

    수천 개의 게시물이 프랑스2 사이트에 올라왔다. 프랑스2와 엘리즈 뤼세는 방송위원회의 심의에 따른 처벌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한순간 던진 말 한마디로 스캔들을 몰고 온 겔랑. 세계가 인정하는 향의 장인답게 마음까지 아름다운 향수를 만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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