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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유대인 정착촌이야

중동평화 가로막는 몸통으로 증오 유발 …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만 4만 명 거주

  •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정치학박사) kimsphoto@hanmail.net

바보야, 문제는 유대인 정착촌이야

바보야, 문제는 유대인 정착촌이야

2005년 8월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안전상의 이유’로 이스라엘 정착촌과 연결된 경찰서를 만들려고 하자, 팔레스타인은 그들의 땅을 빼앗을 거라며 두려워했다.



지금 중동 하늘은 먹구름으로 덮여 있다. 평화의 전망은 보이지 않고 언제라도 유혈충돌이 터질 듯한 험악한 분위기다. 중동분쟁의 뇌관은 다름 아닌 유대인 정착촌이다. 1993년 체결한 ‘오슬로 평화협정’(정식 이름은 ‘땅과 평화의 교환원칙’ 협정)은 중동평화의 큰 분수령으로 꼽힌다. 이 협정으로 이스라엘에는 ‘평화’가 주어졌으며, 팔레스타인에는 ‘땅’이 주어져 지금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세울 수 있었다.

이 평화협정을 체결할 무렵 유대인 정착민은 10만 명 정도였다. 그런데 17년 뒤인 2010년 현재 4배로 늘어났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자료에 따르면, 유대인 정착민은 39만 명에 이른다(서안지구에 19만 명, 동예루살렘에 18만 명, 이스라엘군이 1967년 이후 점령 중인 시리아 골란고원에 2만 명).

“정착촌 확장이냐, 중동평화냐”

오슬로 평화협정 뒤 유대인 정착민이 크게 늘어난 것은 이스라엘 강경우파가 앞장서 정착촌 확장정책을 펴온 결과다. 2009년 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대변인 파우지 바르훔을 만났더니 “이런 통계만 봐도 팔레스타인이 지난 10여 년 동안 이른바 평화협상을 하면서도 이스라엘에 속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혀를 찼다. 40만 유대인의 정착촌은 이스라엘 강경우파 정치인들의 튼튼한 표밭이다. 유대인 정착촌은 사실상 팔레스타인 영토에 파고든 이스라엘 식민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들 유대인 정착민에게 밀려나 고향을 등지고 농토를 잃은 절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마치 일제강점기 일본인 정착민들이 한반도와 만주의 원주민들을 밀어내고 땅을 차지했던 것과 같다.



지난 9월 말, 이스라엘 정부가 설정했던 유대인 정착촌 건설 유예기간인 10개월이 끝나자마자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곳곳에서 땅을 고르는 불도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10개월 종료시한 직전에 시멘트를 가득 실은 트럭들이 불도저와 함께 정착촌 확장 예정지로 떠날 채비를 이미 하고 있었다. 주변 팔레스타인 마을 사람들은 비난의 아우성 속에서 눈물을 쏟아냈지만, 유대인 정착민들은 들은 체도 안 하고 삽질과 망치질을 계속했다.

팔레스타인 강경파 정치조직인 하마스(Hamas)는 물론이고 팔레스타인 온건파인 파타(Fatah)의 지도자 마무드 아바스(자치정부 수반)도 “이스라엘은 유대인 정착촌 건설과 중동평화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네타야후 총리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정착촌 확장 문제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자 곤란해진 쪽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다. 2009년 1월 취임과 더불어 오바마와 힐러리는 “중동분쟁을 끝장내겠다”는 야심을 품고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사이의 중동평화 협상에 적극 개입했다. 오바마, 힐러리의 특명을 받은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이 중동특사 자격으로 워싱턴과 중동을 안방 드나들듯 바삐 오갔다. 2009년 11월 말 이스라엘의 골수 강경파인 네타야후 총리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정착촌을 짓는 것을 10개월 동안 유예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성과라면 성과였다. 이 선언은 “정착촌 건설은 중동평화의 걸림돌이니 건설을 중단하라”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네타야후 총리가 10개월 유예기간을 두긴 했지만, 그 사이 이렇다 할 평화협상의 진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에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적 억압과 봉쇄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따라서 정착촌 건설을 중단한 것이 “이렇게 우리 유대인도 중동평화를 위해 노력할 만큼은 한다”는 명분 쌓기와 숨 고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조차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유대인 정착촌 확장공사는 이미 시작됐고 중동은 다시금 긴장상태다. “중동평화 협상이 표류하는 게 아니라 아예 실종됐다”는 소리마저 나온다.

이렇듯 중동 유혈분쟁의 쟁점 가운데 하나가 유대인 정착촌 문제다. 1948년 독립을 선포하고 팔레스타인 원주민, 그리고 주변 아랍국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면서 이스라엘은 전 세계 유대인의 이민을 적극 받아들였다. 특히 1967년 ‘6일전쟁’의 승리로 이스라엘의 지배권이 팔레스타인은 물론 골란고원, 시나이 사막으로까지 넓어진 뒤 정착민에 대한 국가적 수요는 더욱 늘어났다. 해외 유대인의 영구 입국을 두 손 들어 환영했다. 이 가운데 많은 이가 가난한 동구 공산권과 러시아 이민자였다.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정착금을 받아든 이들은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정착촌 주변 팔레스타인 원주민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경작지를 넓혀나갔다. ‘하느님이 유대인에게 약속한 땅’을 되찾는다는 구실 아래 그렇게 했다.

국가로부터 받은 폭력 허가증

일반적으로 유대인 정착민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대와 사마리아의 옛 땅을 되찾는 개척자(pioneer)라 생각한다. 또 한 부류는 훨씬 많은 사람으로 이뤄졌는데, 오로지 이스라엘 정부가 대주는 보조금을 바라고 정착촌으로 옮겨간 사람들이다. 유대인 정착민은 대부분 종교적으로 극단적 성향을 지녔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매우 폭력적이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차를 모는 팔레스타인 운전자들은 느닷없이 날아드는 돌멩이와 총알에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도로 곳곳에서 일부 과격한 유대인 정착민이 차량을 향해 돌을 던지고 총을 쏴대기 때문이다.

중동 현지취재 때 겪은 일이다.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바로 북쪽도시 라말라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청사가 있는 정치 중심도시다. 그곳에서 북쪽으로 30km 떨어진 서안지구 중부도시 나블러스에서 거행되는 장례식 취재를 위해 택시를 전세 내려 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 운전기사는 “돈도 좋지만…” 하며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팔레스타인 운전기사의 걱정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었다. 가는 길 곳곳에 돌멩이가 나뒹굴었다. 라말라-나블러스를 잇는 간선도로 주변의 정착촌 주민들이 던진 것이었다. 나블러스 가까이 간 뒤에도 운전기사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포장도로를 벗어나 비좁은 먼짓길을 달렸다. 이스라엘군의 검문과 정착민들로부터의 공격을 피하려고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거쳐 빙 둘러갔다.

유대인 정착민은 이스라엘군의 보호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자체적으로도 무장을 했으니, 준군사집단(paramilitary)의 성격을 지녔다 하겠다. 이스라엘 거리에서는 총을 메고 다니는 유대인 정착민을 쉽게 볼 수 있다. 정착민들은 저마다 합법적으로 총을 지니고 있다. “팔레스타인 테러분자로부터 스스로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워서다. 이들은 이스라엘 군제(軍制) 속에 사실상 편입돼 있다. 예전부터 무장을 갖췄던 유대인 정착민들의 무장을 합법화해준 시점은 1973년. 이들은 이스라엘 지역방위법에 따라 우리나라로 치면 ‘향토예비군’에 편입돼 지역 방위를 맡아왔다. 그리고 1981년엔 ‘이스라엘 군사명령 898’에 따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할 수 있고, 영장 없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게 됐다. 2000년 9월 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티파다(intifada·봉기)’로 유혈사태가 번지자, 유대인 정착민들의 권한은 더욱 커졌다. 팔레스타인을 향해 언제라도 총을 쏠 수 있게 됐다.

팔레스타인 현지에서 돌아본 유대인 정착촌은 대부분 외부의 공격에 대항할 수 있도록 요새화돼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팔레스타인 마을들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붉은 타일을 붙인 현대식 주택들이 반듯반듯하게 지어져 있다면 틀림없이 정착촌이다. 총으로 무장한 정착민들은 주변 팔레스타인 마을 중심지를 순찰하면서, 그곳 농민들이 애써 키운 농작물을 불태우거나 주요 수입원인 올리브와 레몬 나무를 베어버리는 등 삶의 터전을 뿌리째 흔들기 일쑤다.

이렇듯 살벌한 상황을 60년 넘게 일상적으로 겪어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와 좌절감은 엄청나다.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 깡패들이 우리 선조들에게 한 횡포를 떠올린다면, 일상적으로 이런 고통과 억압을 겪어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유대인 정착민들에게 느낄 반감과 증오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정착촌 건설 위한 시간 벌기”

이스라엘 강경파 정치인들의 중동지배 전략은 ‘군사적 우위에 바탕한 현상유지’로 요약된다. 팔레스타인을 군사적으로 강제 점령한 기존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능한 한 시일을 끌어 팔레스타인 지역에 더 많은 유대인 정착촌을 세움으로써 이스라엘 영토를 넓혀간다는 것이다. 지금껏 중동평화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데는 유대인 정착촌과 관련한 이스라엘 강경파의 이러한 계산이 깔려 있다.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어 중동평화 협상을 좌초시키고 정착촌을 늘릴 시간을 벌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중동전문가 스테판 주니스 교수(샌프란시스코대학)는 “이스라엘이 중동평화 협상에서 팔레스타인 쪽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들을 제시해온 것은 정착촌 건설 확대를 위한 시간 벌기(buying time)”라 지적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도를 펴보면, 유대인 정착촌은 무수한 점처럼 서안지구 곳곳에 터를 잡고 있다. 40만 유대인 정착민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 요인이며 중동평화를 가로막은 암초 같은 존재로 꼽힌다. 특히 문제가 되는 곳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언젠가 들어설 독립국가의 수도로 꼽아온 동예루살렘 일대다. 이미 동예루살렘 일대는 유대인 정착촌으로 포위된 상태다. 북쪽은 피스가트 제브 정착촌과 네베 야아콘 정착촌, 동쪽은 마알레 아두민 정착촌과 미쇼르 아두민 정착촌, 남쪽은 베타르 정착촌과 구쉬 에치온 정착촌이 자리 잡았다. 이들 대규모 정착촌은 이미 동예루살렘에 들어선 크고 작은 정착촌과 함께 동예루살렘을 둘러싼 모습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꾸준히 금융지원(건설사에는 건설비 융자, 입주자에겐 낮은 이자율의 주택자금 대부)을 해주며 동예루살렘 너머 동쪽에 대규모 유대인 타운을 세운 까닭은 명확하다. 이들 정착촌은 “언젠가 들어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도는 동예루살렘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여겨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비웃고 곤혹스럽게 만드는 현실적인 암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동예루살렘을 아랍어로 ‘알 쿠즈’라 부른다. 언젠가는 세워질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도가 바로 알 쿠즈인 것이다. 그렇지만 절대다수의 유대인은 ‘예루살렘은 영원히 이스라엘의 중심도시로 남아야 한다’는 믿음을 지녔다. 따라서 지금처럼 도시 전체가 이스라엘의 통제 아래 놓여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동예루살렘을 포위하듯 동쪽으로 삥 둘러싼 대규모 유대인 정착촌을 바라볼 때마다 깊은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게 마련이다. 정착촌 건설은 21세기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주간동아 2010.11.15 762호 (p52~54)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정치학박사)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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