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6

2017.05.03

인터뷰| ‘광명동굴’의 기적 일군 양기대 광명시장

“혼자 아닌 함께였기에 가능했죠”

베드타운에서 관광도시로, ‘채무 제로’ 선언하기까지…이젠 KTX광명역 유라시아대륙철도 도전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7-04-28 18: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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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승용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경기 광명시 ‘광명동굴’은 요즘 ‘핫’한 국내 여행지다. 2015년 유료 개장한 이후 1년 9개월 동안 이곳을 다녀간 관광객은 240만 명. 최근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 대표 관광지 100선’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6년 전만 해도 광명동굴은 버려진 폐광(가학폐광산)에 불과했다. 1974년 개인 소유로 넘어갔지만 채굴 허가가 나지 않아 오랫동안 새우젓 저장고로 활용됐을 뿐이다. 그렇기에 광명동굴의 탄생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봐온 이들은 상전벽해와 같은 모습에 ‘기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동굴 개발을 진두지휘한 양기대(55·사진) 광명시장이 있다. 양 시장은 최근 광명동굴 성공기를 엮어 책 ‘폐광에서 기적을 캐다’(메디치)를 펴냈다. 

    창밖으로 화사한 철쭉화단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광명시청 본관 2층 시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양 시장은 광명동굴의 성공적 안착을 축하하는 기자에게 “동굴이 광명시 최고 효자”라며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광명동굴은 입장료 등 수입으로 지난 한 해에만 100억 원가량을 벌어들였다. 여기에 기초자치단체로서는 꽤 큰 규모의 법인세(약 215억 원)를 거둔 결과 광명시는 3월 마침내 ‘채무 제로(0)’를 선언했다.

    2010년 양 시장이 처음 취임했을 때 광명시 부채는 239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갚아 1981년 시 개청 이래 처음으로 채무가 없어졌다. 수도권의 전형적인 베드타운이던 광명시는 이제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알짜배기 기초자치단체가 됐다.  “혹자는 광명동굴을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고 말합니다(웃음). 처음 광명동굴을 개발하겠다고 했을 때 정말 많은 반대가 있었어요. 하지만 시청 공무원 모두가 하나 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덕에 완성도 높은 관광자원이 탄생했다고 자부합니다.”





    광명동굴로 일자리 600개 창출

    가학폐광산 개발은 역대 시장들도 선거 때마다 공약집에 한 번씩은 넣었을 만큼 광명시의 숙원사업이었다. 양 시장은 광명동굴의 첫 삽을 뜨게 된 배경에 대해 “기자 출신으로 남다른 직관력이 발동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양 시장은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8년 서울대를 졸업한 후 같은 해 동아일보에 입사해 정치부와 사회부 등을 두루 거치며 15년간 권력형 비리 사건 취재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한국기자협회가 매년 한 번씩 수여하는 한국기자상을 두 번이나 받았고, 이달의 기자상도 7회 수상하는 등 ‘특종 제조기’였다. 2004년 평소 품고 있던 꿈을 펼치고자 정치에 입문했으나 국회의원선거에서 두 번 낙선했다. 2010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16대 광명시장으로 선출됐다.

    “시장에 취임하고 한 달 뒤쯤 폐광을 방문했는데, 처음 본 순간부터 ‘이건 되겠다’ 싶더군요. 그해 12월 바로 광산 토지 매입비용을 편성하고 이듬해인 2011년 1월 광산 소유주로부터 사들였습니다. 당시 43억 원에 매입했는데, 광명동굴의 현 가치는 2000억 원에 달합니다. 경기도와 중앙정부에서 받은 지원금을 빼고, 광명시가 광명동굴 개발에 들인 돈은 지난해 말 기준 570억 원가량이에요. 이미 투자금을 다 회수했으니 앞으로 광명동굴이 광명시 세수에 꾸준히 보탬이 될 겁니다.”

    광명동굴을 한 번 가본 사람은 누구나 ‘기대 이상의 볼거리’에 놀라움을 표한다.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을 이용한 아트프로젝트 공간 ‘웜홀광장’과 ‘빛의 공간’, 동굴이라는 공간적 차별성을 문화예술 콘텐츠와 접목한 우리나라 유일의 ‘동굴 예술의전당’, 동굴 지하암반수로 조성한 ‘아쿠아월드’ ‘황금폭포’ ‘동굴 식물원’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넘쳐난다.

    연중 12, 13도인 광명동굴 안에는 길이 194m의 와인동굴도 있다. 여기에 판로가 별로 없는 국내 와인 170여 종을 보관하면서 방문객이 와인을 직접 맛보고 맘에 드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라스코전시관에서는 미디어아트와 프로모션, 콘퍼런스 등 복합예술이 펼쳐지고 있다.

    그 밖에도 동굴 입구에 세워진 ‘광명 평화의 소녀상’을 통해 광명동굴은 역사교육의 현장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올 한 해 방문객 200만 명 돌파를 목표로 삼고 있다. 양 시장은 그간의 공을 모두 실무 담당자들에게 돌린다. 지난해 광명시가 발간한 책 ‘광명동굴을 만든 사람들’에는 광명동굴 개발 과정과 함께 일선 공무원들의 광명동굴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담겨 있다.

    “광명동굴 관련 책을 두 권 낸 건 광명동굴을 국민에게 알리고자 하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시 공무원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때문입니다. 공무원 하면 흔히 철밥통, 탁상행정, 뒷짐행정 등의 단어를 떠올리지만 광명동굴 개발 과정에선 전혀 통하지 않는 얘기였죠. 휴일도 없이 일하며 아이디어를 낸 그들이 없었다면 광명동굴도, 지금의 광명시도 없다고 봅니다.”

    양 시장은 광명동굴의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또 한 번의 변화를 모색하려 한다. 광명동굴 운영 관련 민간 컨소시엄을 진행하는 것. 개발보다 중요한 것이 유지, 보존이기 때문이다. 양 시장은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직접 사업을 하는 건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에 광명동굴의 지속성을 위해 민간 주도의 투자와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여러 지자체에서 개발한 관광 사업들을 보면 처음에만 ‘반짝’ 하다 유야무야되고 결국 지역의 흉물, 애물단지로 전락한 경우가 적잖습니다. 그렇기에 민간기업의 참여는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광명동굴 운영개발권을 광명시와 민간이 공동소유하고 거기에서 창출된 수익도 같은 비율로 나누는 겁니다.”

    지자체가 민간 컨소시엄을 구성하려면 지자체 산하 도시공사가 필요한데, 광명시는 기존 도시공단을 도시공사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양 시장은 “5월 하순 시의회 조례만 통과하면 도시공사를 만들고 지분을 출자해 민간 참여의 컨소시엄을 구성할 수 있다. 대기업보다 관광·문화·예술 관련 경험이 있고 재정이 탄탄한 기업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명동굴이 ‘효자’로 평가받는 이유는 비단 수입 창출 때문만이 아니다. 광명시 내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 공이 크다. 동굴 시설 관리, 체험 프로그램 진행 등 동굴 운영에 지역주민을 채용해 일자리 630여 개가 창출됐고, 앞으로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양 시장의 또 다른 관심은 대기업과 로컬업체 간 ‘상생’이다. 광명시는 KTX광명역세권 안에 미국 창고형 할인매장 코스트코, 스웨덴 가구·생활용품 전문회사 이케아(IKEA) 한국 1호점, 국내 대규모 쇼핑몰 롯데프리미엄아울렛 등이 자리해 ‘쇼핑의 메카’로 각광받고 있다.



    쇼핑의 메카, 상생에서 답 얻다!  

    시장 취임 후 얼마 안 돼 코스트코가 신규 매장 토지를 물색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한 양 시장은 최고 의사결정자와 직접 만나 광명이 서울 구로구와 금천구 일대, 경기 의왕시와 시흥시, 부천시, 인천 주민 등 최대 700만 명을 거느린 중심 상권이라는 점을 역설해 유치할 수 있었다.

    이케아 입점도 양 시장이 기업인 후배로부터 이케아가 한국 1호점을 열려고 수도권에 대상 토지를 물색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데서부터 시작됐다. 그 길로 바로 이케아 유치 태스크포스(TF)를 꾸린 그는 경기 하남시, 서울 강동구와 접전 끝에 유치권을 따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광명시 가구거리, 패션거리, 전통시장 등 중소상인의 반발이 이어졌다. 광명시는 전통시장 환경 개선, 일자리 창출 등 지역 상인의 편익을 도모하고자 200억 원가량을 지원했다. 그 결과 양 시장은 가구거리협회, 패션거리협회, 슈퍼마켓연합회 등으로부터 감사패까지 받았다. 

    “대기업과 중소상인의 상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재선은 아마 꿈도 못 꿨을 겁니다. 많은 분이 제가 기울인 노력을 조금이나마 인정해주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에요. 앞으로도 상생의 기본 원칙을 반드시 지키도록 노력할 겁니다.”

    대형 쇼핑몰 입점은 KTX 활성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KTX광명역은 2004년 문을 연 뒤 오랫동안 ‘유령역’이란 오명에 시달렸다. 4068억 원을 들여 역사를 지었지만 지하철역, 고속버스터미널과 연계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아 이용객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2012년 코스트코 등이 자리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2004년 당시 4000명에 불과하던 하루 이용객 수가 지금은 2만5000~3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 여세를 몰아 양 시장은 KTX광명역을 시작으로 중국 고속철도 TCR(중국횡단철도), 러시아 고속철도 TSR(시베리아횡단철도) 등과 연계하는 ‘유라시아대륙철도’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물론 북한 철도가 개방돼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일부에선 “양 시장이 동굴로 재미를 보더니 이번에는 비현실적인 대륙철도에 목숨을 건다”며 비아냥대기도 한다.

    “물론 아직은 즐거운 상상일 뿐입니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만 하고 있다면 어떤 시작도 할 수 없어요. 광명동굴 성공에서도 이를 경험했고요. 광명시는 유라시아대륙으로 향하는 철도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광명역에서 출발한 고속열차는 7시간 안에 중국 베이징이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갈 수 있어요. 승객은 물론 철도 수송까지 함께한다면 효율적인 물류 루트가 만들어지는 거죠.”

    그 첫걸음으로 광명시는 지난해 3월 신의주에 인접한 중국 단둥시와 교류협력을 맺었다. 6월과 9월에는 북한 나진에 인접한 중국 훈춘시, 러시아 하산과 각각 경제우호교류 의향서를 체결했다. 단둥시, 훈춘시는 TCR와 연결되며 하산은 TSR를 잇는 교통요충지다. 양 시장은 “만약 남북한, 중국, 러시아가 협의해 북한 철도를 우선적으로 현대화·고속화하면 통일 전에라도 광명시의 꿈이 이뤄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국회의원, 도지사 출마 진지하게 고민할 터

    KTX광명역세권의 발전도 괄목할 만하다. 조만간 인구 3만 명의 미니신도시로 거듭날 이곳은 지난 4년간 부동산가격이 서울 서초구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올랐을 만큼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KTX광명역 주변으로 조성된 대단지 아파트에는 8월부터 2019년까지 총 1만968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그에 따라 최근까지 중학교 신설이 중요한 지역 현안이었는데, 최근 교육부로부터 광명역세권 중학교 신설을 승인받아 문제가 해결됐다. 또한 광명시는 역세권 인근을 중심으로 향후 국제디자인클러스터, 광명미디어아트밸리 등을 조성해 ‘쇼핑의 메카’에 이어 ‘한류의 메카’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다.

    양 시장은 최근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채무 조기 상환으로 절감한 이자 22억 원을 포함해 시 재정 일부를 청년 일자리 사업에 사용하겠다는 방침이다. 3월 첫선을 보인 ‘광명시 청년창업자금 지원사업’을 통해 개인당 최대 5000만 원을 지원하고, 공용 사무공간 등을 제공하는 것. 1차 모집에서는 총 25개 팀이 선발됐으며, 5월 중 20개 팀을 추가 선발할 예정이다. 5년 전부터는 6개월 단위로 청년 100~150명을 선발해 월 100만 원의 지원금을 주고 시청과 산하기관에서 인턴생활을 경험하게 하는 ‘청년 잡스타트’도 진행 중이다.  

    “‘청년수당’ 같은 생활자금지원 정책도 좋지만 젊은 사람에게는 고기 잡는 법을 직접 알려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창업 아이디어가 좋고 열심히 할 의지가 있는 청년이라면 시 차원에서 적극 후원할 계획입니다. 그동안 청년 잡스타트를 거쳐간 이가 600명가량 되는데, 그중 40~50%가 정규직 취업에 성공했어요.”

    지난 7년간 ‘광명시 발전’이 최대 화두였던 양 시장은 요즘 들어 부쩍 주변 사람들로부터 앞으로 행보와 관련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당초 정치에 꿈을 품고 기자직을 그만둔 만큼 광명시장 이후 행보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치적으로 더 큰 발전을 위해 경기도지사 출마를 권유하시는 분, 국회에 진출하라는 분, 그리고 광명시장 3선을 해야 한다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시정에 몰두하면서 여러 조언들을 경청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겠습니다. 차기 정부에도 바라는 바인데,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혼자가 아닌 ‘함께’, 그리고 ‘서로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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