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2

2010.11.15

으악, 부위별 시신 엽기 수입 사건

업자들 시신 들여와 해부 실습용으로 팔아 … 제약도 검역도 없어 사실상 무방비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0-11-15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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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악, 부위별 시신 엽기 수입 사건
    2010년 9월 인천지방검찰청(이하 인천지검)에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수신인은 인천지검 외사부장이지만, 발신인은 없었다. 편지에는 손글씨로 “해부용 시체가 수입되고 있다. 이게 불법인 것 같다”는 딱 두 문장만 적혀 있었다. 수많은 제보 편지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분노를 가득 담고 검찰로 날아온다. 하지만 발신인도, 정황 설명도 없는 편지의 99%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 이원규 외사부장은 박양호 검사를 불러 “확인만 한번 해보라”고 지시했다. 박 검사도 “설마 시체를 수입할까”라며 믿지 않았다.

    소환할 대상도 없는 막막한 수사였지만 실마리는 간단히 풀렸다. 시신은 밀수가 아니라 정식 통관 절차에 따라 수입되고 있었던 것. 인천지검이 관세청에 확인한 결과 2008년부터 커대버(Cadaver·해부학 실습용 시신)로 신고된 수입물품은 총 117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 온전한 시신이 아니라 머리, 무릎, 어깨, 허벅지 등 부분 시신이었다. 이처럼 시신은 부위별로 잘린 채 드라이아이스가 채워진 상자에 담겨 냉동상태로 수입됐는데 지식경제부 장관, 관세청장이 고시한 금지 물품에 포함되지 않은 까닭에 세관에서 그대로 통관됐다. 세관은 2009년 12월에 통관 보류시켰다.

    ‘커대버’ 세관에서도 그대로 통관

    시체를 국내로 들여온 업체는 인체조직은행 2곳과 의료기기 수입판매업체 1곳이다. 이들은 미국의 IIAM(the International Institute for the Advancement of Medicine), 사이언스 케어(Science Care)로부터 부분 시신을 수입했다. 미국 내 연구·치료용 인체조직 및 장기 공급업체인 IIAM, 사이언스 케어는 기증받은 시신을 비영리 목적으로 제공한다. 미국은 시신 기증 문화가 발달해 해부용 시신 공급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국내 업체들은 국내로 시신을 들여오는 운반비, 인건비 등만 받고 서울대, 연세대 등 의과대학에 시신을 넘겼다. 부분 시신 1점당 가격은 80만 원 선이다. 검찰은 인체조직은행 등이 부분 시신 자체의 값을 받지 않았기에 시신 매매 혐의는 묻지 않았다.

    그런데 수입판매업체 관계자 A씨 등은 검찰 조사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의과대학들이 교육과 연구 목적에 필요한 해부용 시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먼저 부탁해왔다는 것. 한 대학은 “한번 받아보니 해부용 시신으로 쓰기에 상태가 정말 좋다”며 단골이 됐다.



    의과대학들은 시신을 받아 해부실습 목적으로 사용했다. 서울대학은 수입된 시신의 머리를 모두 받아 이비인후과 학생들의 해부실습에 사용했다. 시체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이하 시체법) 제2조에 따르면 의과대학(치대·한의대 포함)의 해부학·병리학 또는 법의학을 전공한 교수·부교수·조교수 또는 전임강사가 직접 해부하거나, 의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지도하에 해부하게 하는 경우는 합법이다.

    시신이 수출입 금지물품이 아니라 해도 아무런 제약 없이 수입돼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검찰은 관련 법규를 샅샅이 뒤졌다. 검찰은 A씨 등이 검역을 받지 않은 채 시신을 수입해 관세법을 위반했음을 확인하고 불구속 기소했다. 관세법, 검역법 등에 따르면 이식용 신체조직이 아닌 해부용 시신을 수입하려면 사망진단서, 방부처리증명서를 첨부해 검역소에서 검역을 받아 사체검역확인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A씨 등은 “관련 법규를 몰랐다”는 이유로 부분 시신을 검역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방부처리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식 사망진단서도 첨부하지 않았다.

    방부처리를 하지 않은 이유는 포르말린 등으로 방부처리한 해부용 시신은 교육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방부처리를 하지 않은 해부용 시신은 살아 있는 사람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방부처리도 하지 않고 검역도 받지 않은 시신을 들여오면 전염병 유입 우려가 크다. 서울 모 대학 감염내과 교수는 “냉동처리만 해도 전염병 위험이 크지 않지만, 신종플루와 같은 특정 전염병에 감염돼 죽었거나 부패한 시체가 들어오면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으로 시신과 관련된 시체법, 인체조직안전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의 맹점을 발견한 성과를 거두었다. 박 검사는 “현행법은 시신을 수입하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시신을 수입할지, 말지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 수입자의 자격, 해부용 시신 용도 등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시신 수입자에 대한 제한 규정이 없으니 누구나 검역만 받으면 수입 가능하다. 게다가 이 시신을 해부하지 않고 보관만 할 경우 불법이 아니다. 개인이 시신을 수집하겠다고 머리, 팔, 다리를 수입해 집 안 곳곳에 전시해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범죄에 악용될 소지도 있다. 토막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범행을 은폐할 목적으로 부분 시신을 수입해 피해자 시신과 섞어버리면 수사에 혼선이 올 가능성이 크다.

    검찰의 권고에도 관련 기관에서는 아직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오래전부터 보건복지부에 해부용 시신 확보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수입 방법에 대해 문의해왔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과대학에서 연구용 시신이 얼마나 필요한지, 시체법에 연구용 시신 필요성을 어떻게 반영할지 등을 내부에서 검토 중이다”고 밝혔을 뿐이다.

    으악, 부위별 시신 엽기 수입 사건

    원광대는 해부실습실 건물 ‘제생의세관’ 앞에 위령비를 세우고, 원불교 영모묘원에 헌혼탑을 두어 시신을 기증한 고인들의 희생정신을 기린다.

    보건복지부가 “해결 방안을 고려 중이다”라고 말하며 뒷짐을 진 이상 의료계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해부실습은 의과대학생에게는 책으로 배운 수술법을 실습해보며 실전 감각과 노하우를 익힐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하지만 대부분 의과대학은 충분한 해부용 시신을 확보하지 못해 제대로 된 교육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실습을 진행한다. 심지어 영상으로 대체하는 학교도 있다. 지방대학은 사정이 더 열악하다. 한 대학 해부학교실 관계자는 “살아생전에 서울대학에 가지 못한 한 때문인지, 사후에라도 서울대학으로 가고 싶어 하신다”며 아쉬워했다.

    해부실습 위해 동남아 원정도

    시체법상 해부연구가 불가능한 개업의는 해부실습을 하려고 동남아, 중국 등지로 원정을 떠나기도 한다. 이런 수요에 맞춰 한 국내 의료기기 관련 업체는 서울 소재 의과대학병원 해부실습실을 빌려 해부실습교실을 개최하고자 했다. 한의사, 물리치료사, 대체의학 전공생, 피부미용 전공생, 심지어 일반인까지 20만 원만 내면 참가 자격을 주었다. 이 업체 관계자는 “모집인원이 충족되지 않아 개최하지 않았다”고 답했지만 연구라는 숭고한 목적으로 기증받은 시신을 상업적으로 쓸 수 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원광대학은 해부용 시신을 기증한 고인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추모제를 연다. 납골당을 두고 예를 갖춰 장례를 치르고, 분향소를 설치해 유가족이 언제든지 분향하도록 돕는다. 원광대 의대 교수들이 먼저 시신 기증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 모두가 시신 기증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1년에 기증받는 시신이 3~4구에서 30구 안팎으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시신 1구로 15명이 넘는 학생이 실습을 하는 실정이다. 정진원 원광대 의대학장의 말이다.

    “시신을 기증해주신 분들 덕분에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한국 의료기술도 발전합니다.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이 남아 있어 시신 기증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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