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2

2010.11.15

입법 로비-후원금 불분명 ‘오세훈법’ 말도 마라!

소액 후원금 악용 혐의 전직 국회의원 3인방 “수많은 사람 만나 소신 있는 의정활동 어려워”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0-11-15 10:3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연일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이하 청목회) 입법 로비를 다룬 기사가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있다. 청목회는 청원경찰법 개정과 관련해 국회의원 다수에게 입법 로비를 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사건으로 덩달아 회자되는 ‘3인방’이 있다. 바로 문석호 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김병호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고경화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다.

    “억울하게 불명예로 남은 일”

    “억울하게 불명예로 남은 일이다.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이들의 이름이 새삼 언론에 오르내리는 이유가 뭘까. 세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로 정치자금법 관련 검찰 수사의 도마에 올랐다. 하나같이 청목회처럼 소액후원금 제도를 악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들은 취재 요청에 “유쾌할 것 없는 과거지사니 이름을 거론하지 말라”면서도 해명에는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현행 소액후원금 제도의 미비점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우선 가장 빈번히 언급되는 문석호 전 의원. 문 전 의원은 2005년 에쓰오일로부터 부당한 후원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에쓰오일 공장 설립과 관련해 1인당 10만 원씩 5560만 원을 수수했다는 내용이다. 2심까지 이어진 무죄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자신의 보좌관 겸 후원회 회계책임자를 통해 후원회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었기에 본인이 직접 후원금을 수수한 것과 같다”며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를 인정했다. 그는 소액후원금제도의 논란에 다시금 불을 지핀 청목회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까.



    “에쓰오일 사건과 청목회 사건은 성격이 다르다. 청목회는 단체 기금을 여러 사람의 이름으로 쪼개서 넣은 반면 에쓰오일 직원들은 개인 돈으로 후원했다. 회사는 단지 ‘10만 원 후원하면 11만 원을 돌려받는다. 문석호 의원은 우리 공장 설립 추진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라고 독려했을 뿐이다.”

    소액후원금 제도는 2004년 정치자금법을 개정하면서 도입됐다. 뭉칫돈으로 들어오던 단체나 기업의 검은돈을 막으려는 취지에서였다. 문 전 의원은 이런 소액후원금 제도에 대한 접근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소액 후원금에는 의정활동에 대한 기대나 평가가 담겨 있는데, 사후에 이를 문제 삼으면 결과책임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어지는 그의 설명.

    “후원하는 사람 중 절반 정도는 개인적 친분으로 한다. 나머지 절반은 해당 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한 관심으로 후원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의정활동을 했다며 후원금을 문제 삼는 것은 형식 논리적인 접근이라고 본다. 특히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는, 포퓰리즘으로 흐를 개연성도 높다.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소액 후원금은 동기나 목적을 묻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대법원은 문 전 의원이 에쓰오일의 후원 사실을 알았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후원회 사무실이 의원회관으로 등록돼 있고, 회계책임자가 보좌관이라는 점이 판단 근거였다. 이와 관련해 문 전 의원은 “경제적인 이유로 사무실을 겸했고, 대부분 후원회가 그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라며 불만을 내비쳤다.

    “후원금은 별도의 후원회를 통해 받도록 돼 있다. 후원회의 역할은 영수증을 발급하고, 들어오는 후원금의 불법성을 판단하는 정도다. 역할이 크지 않아 대부분 별도의 사무실을 운영하지 않는다. 보좌관이 회계책임자로 올라간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김병호 전 의원과 고경화 전 의원은 2007년 4월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벌인 입법 로비에 연루됐다. 당시 의협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 개정을 위해 청목회와 같은 방법으로 후원금 제도를 악용했다. 두 사람에 대한 판결은 엇갈렸다. 고 전 의원은 의협과 특별한 교류가 없고 후원금 출처를 몰랐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김 전 의원은 후원금 전달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 따라 유죄판결을 받았다.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전 의원은 소액후원금 제도와 관련해 “과거 ‘후원의 날’보다는 진일보했지만 허점이 많다”라고 평가했다.

    “2004년 법 개정 전에는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후원의 날’을 열어 후원금을 받았다. 금액 제한은 없었지만, 행사 준비가 은근히 귀찮았다. 경비도 많이 들고, 지역구 사람들이 올라오는데 선거법에서 교통비와 식사비 제공을 금지해 불편한 점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의 제도는 상당 부분 개선된 것이다.”

    김 전 의원은 ‘오세훈법’의 공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대가성 로비’로 보는 시각은 지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의정활동에서 수많은 이해단체를 만나는데, ‘로비’와 ‘비(非)로비’를 가르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입법 로비 실상 질문엔 모두 입 닫아

    “상임위 관련 단체들은 원하는 방향의 입법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인다. 유인물도 보내고 전화도 하고 사무실에 찾아오기도 한다. 부탁, 청탁, 로비의 기준이 모호하다. 또 이들이 잘 봐달라며 후원금을 주더라도 일일이 확인하기 힘들다. 의협 사건 때도 몰랐는데 지역구인 부산 후원회에 연락했더니 들어온 게 있다고 하더라. 이런 식으로 조사하면 해명할 도리가 없는 거다.”

    고 전 의원은 “현재처럼 법 적용을 하면 소신 있는 의정활동이 불가능하다”며 “현재 후원금 제도를 없애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게 정치인데, 관련 발언과 의정활동이 추후 검열 대상이 된다고 가정하면 정치가 불가능하다는 것.

    “지금 법을 그대로 두면 의원이 언제든 범법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의심스러운 돈을 돌려준다 해도 한계가 있다. 이름과 주소만 기입하는 시스템인데, 사실관계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일이다. 그러다 후원회에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 의원에게 불똥이 튀고, 해당 의원은 뇌물을 받은 것처럼 비친다. 내부 시스템을 잘 모르는 국민들에게 범법자 이미지로 낙인찍히면 이미지 회복이 어렵다. 본인은 기소되기 전에 언론에서 난리가 났었는데, 무죄판결 사실은 알려지지 않아 억울했다.”

    이래저래 돈 들 일 많은 의원들에게 후원금은 중요한 수입원이다. 후원 금액은 보통 인맥관계에 따라 갈리지만,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면 액수가 훌쩍 커지기도 한다. 후원을 청하는 엽서나 메일 보내기, 때마다 감사편지 보내기, 의원이 직접 발로 뛰기 등의 방법이 있다. 후원금 모집이나 입법 로비의 실상에 대해 질문하자 세 의원은 하나같이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들 중 한 의원은 “국회의원과 그가 속한 상임위 관련 이익단체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다. 이익단체들은 원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이뤄지도록 의원들에게 관련 소스를 제공하는 등 로비를 벌인다. 주변 지인을 통해 로비를 해오는 경우가 많다”고 밝힌 뒤 더 이상의 말은 아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