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2

2010.11.15

뭉칫돈 받아 쪼개고 정책개발비 부풀려 타내고…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 관행과 불법 사이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0-11-15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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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뭉칫돈 받아 쪼개고 정책개발비 부풀려 타내고…
    “거참, 민감한 시기에 그런 걸 물어보시네.”

    11월 2일 오전 국회 본관 3층 의원식당 카페에서 만난 국회의원 A씨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이하 청목회) 입법 로비 수사를 계기로 국회의원의 후원금 모금 실태를 알고 싶다는 기자의 요구에 그는 자리부터 옮기자고 했다. 기자와 친분이 없었다면 인터뷰를 거절하고 싶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앞서 만난 국회의원 보좌관 B씨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는 협회나 단체가 소액 후원금을 내는 이유는 뻔한데, 굳이 검찰이 이 시점에서 수사하는 건 정치적 이유에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액 후원금을 내는 ‘뻔한 이유’에 대해 묻자 “아시면서”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답변을 했다.

    기자는 11월 5~10일 전·현직 국회의원과 보좌관, 후원회 사무국장, 시민단체 대표 등 11명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이들 대부분은 검찰의 청목회 수사를 개탄하다가도, 자신의 입법 로비 경험담을 요구하면 말꼬리를 흐렸다. “다른 의원의 사례인데…” “모 의원실의 경우…”라며 둘러말하면서도, 익명을 전제로 한 인터뷰임을 재차 확인했다. 그만큼 후원금 모금은 관행과 불법 사이에서 민감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각 상임위에 소속된 산하기관에서 매년 보내는 소액 후원금은 ‘보험성’입니다. 모르긴 해도 안 받는 의원이 없을 거예요.”



    인터뷰이들이 말하는 가장 흔한 후원금 모금 방식은 소속 상임위 산하기관이나 지역구에 있는 기업에서 보내오는 소액 후원금이었다. 굳이 ‘대가성’을 얘기하지 않아도 입법 과정이나 국정감사를 대비한 보험성 후원금이란 건 국회의원들도 잘 알고 있었다.

    “11월 8일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이 국회 출입기자에게 보낸 ‘청원경찰 후원금 사건 경위 요약’이라는 자료를 봐도 알 수 있다. 후원금 현황을 보면 지역구(경남 창원) 농협 직원 17명이 10만 원씩 후원했다. 세무사 42명도 10만 원씩 기부했다. 물론 권 의원은 세무사로부터 받은 420만 원은 돌려줬지만, 세무검증제도 도입을 위해 세무사에게 적절한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미리 보험을 든 것으로 본다.”

    소액 후원금은 직원 명의로 10만 원씩 쪼개 송금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가끔은 뭉칫돈을 들고 와 난감할 때도 있다고 의원들은 고백했다.

    현금 거래 사절…10만 원씩 나눠 입금

    “의원회관에서는 현금 거래를 일절 하지 않는다. 보는 눈이 얼마나 많은데…. 가끔 뭉칫돈을 들고 오는 경우는 은행으로 가져가 후원회 계좌로 10만 원씩 쪼개 입금시킨다. 보통 50명, 100명씩 직원 명의로 입금시킨다.”

    이러한 후원 방식은 2004년 당시 한나라당 오세훈 의원이 주도해 개정한 정치자금법(일명 오세훈법) 때문에 생겼다. 이 법은 법인과 단체의 후원금 기부를 금지하는 대신 개인의 소액 후원을 장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연간 10만 원 한도에서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기부자는 고스란히 돈을 돌려받을 수도 있다. 후원금 액수는 국회의원 1명당 최대 500만 원씩, 2000만 원까지 기부할 수 있으며 1회 30만 원, 연간 300만 원을 넘을 경우에는 신상을 공개토록 했다. 이 때문에 단체와 기업 등에서 이해관계가 얽힌 국회의원에게 ‘10만 원씩 쪼개기 후원’을 지시한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그렇다고 의원들이 어떤 후원금이든 받지는 않는다. 산하기관이나 대기업에선 국회 업무를 담당하는 연락관을 두는데, 보통은 이들이 후원금 거래를 담당한다. 한 중진 국회의원 보좌관 C씨의 설명이다.

    “이들(연락관)과는 오랜 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달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후원금을 전해준다. 그렇다고 모든 협회나 기관의 후원금을 받지는 않는다. 신설 협회나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협회의 후원금은 사양한다. 초선의원들이 뭣 모르고 덜컥 받았다가 탈이 나는 것도 이런 협회 돈을 받기 때문이다.”

    가끔은 입법 로비를 하러 왔다가 후원금 봉투를 놓고 가는 경우도 있다. 이때 ‘돌려주지 않으면 반드시 체한다’는 게 인터뷰이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약점 이용해 기업 ‘손목 비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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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거의 사라졌지만 국정감사 등을 이용해 ‘손목 비틀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약점을 고리로 특정 기업이나 단체의 후원금을 받는 것이다. 한 정부기관은 몇 년 전 국가사업을 발주했는데 특정 기업과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그 사업은 수익성이 거의 없어 어느 기업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결국 수의계약을 했는데, 한 의원이 이 문제를 지적했다. 이 의원실 보좌관은 정부기관에 질의서를 보내는 동시에 해당 기업에 ‘국감 때 문제 삼겠다’는 말을 흘렸다. 다음 날 해당 업체 간부가 의원실로 찾아와 거액의 후원금을 내면서 유야무야됐다고 한다. 국회 보좌관 D씨는 이렇게 말한다.

    “국감 준비과정에서 더러 이런 경우가 생깁니다. 제보를 바탕으로 법을 위반한 대기업에 질의서를 보내면, 그 기업의 대표나 간부가 국회 연락관과 함께 찾아오죠. ‘직원들의 소액 후원금을 몰아주겠다’며 후원금을 매개로 ‘딜’을 합니다. 이땐 의원이 알아서 판단합니다.”

    청목회 사건처럼 입법과정에서 후원금을 받으면 의원들도 은근히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국회의원 E씨는 입법과정에서 신속한 법령 개정을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한 협회로부터 후원금 1000만 원(10만 원씩 100명)을 받았다. 그러나 관련 법안이 법안심사소위에서 계류되자 이 협회는 E씨에게 따졌고, ‘언론사나 검찰에 제보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진땀을 뺐다. 결국 의원과 보좌관이 후원금을 돌려주고 몇 차례 식사를 대접한 뒤 없던 일로 했다.

    연간 90억 원 정책개발비는 특별 후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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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단체 대표 A씨가 제보한 입법지원비 입금 내역서. 국회사무처는 입법지원비로 478만 원을 입금했다. 국회 의원실 비서는 “명의만 빌렸다.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A씨가 “의원이 명의 도용을 하느냐”고 따지자 연락을 끊었다.

    국회의원들의 입법과 정책개발 활동 지원을 위해 연간 90억 원(1인당 3013만 원)가량을 지급하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는 의원들의 ‘특별 후원금’이 된 지 오래다. 의원실 주최 각종 세미나나 토론회, 공청회, 간담회 등에 든 비용에 대해 영수증을 갖춰 신청하면 1인당 2413만 원까지 지급한다. 600만 원은 영수증을 제출할 필요 없이 지급된다.

    문제는 국회의원이 비용을 부풀려 허위 영수증을 제출하거나 세미나 참가자 통장으로 입금을 시켰다가 돌려받는 식으로 특별 후원금을 챙기는 것이다. 보좌관 F씨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신재생에너지 발전 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면 패널 참가비와 책자 인쇄비, 식비 등의 비용을 일반적으로 관련 단체나 협회에서 댄다. 그 협회는 세미나 후 500만 원가량의 별도 후원금도 낸다. 우리는 세미나 자료를 1000부 찍었다고 (허위) 영수증을 만들어 제출해서 정책개발비를 받는다. 사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지만 지금까지는 문제 없었다.”

    한 시민단체 대표 G씨는 최근 478만 원을 위안부 할머니 돕기 성금으로 내놓았다. 이 돈은 G씨가 지난 17대 국회에서 한 의원의 법개정 작업을 도우면서 국회사무처에서 받은 입법지원비였다.

    “의원실 비서가 입법 연구를 수행한 근거를 제시하면 연구비를 지원해준다기에 통장과 주민등록 사본을 팩스로 보냈다. 일주일 뒤 478만 원이 입금됐는데, 그 비서가 다시 전화를 해 ‘돈을 송금해달라’고 했다. ‘명의만 빌렸을 뿐 의원의 돈’이라며 ‘원래 다 그렇게 한다’고 했다. ‘동의도 구하지 않고 명의를 빌려 범죄에 활용한 것 아니냐’며 ‘사실관계 경위서를 써서 보내주면 송금하겠다’고 했더니 연락이 없었다.”

    수차례 전화를 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그 의원은 6·2지방선거 때 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빈민 운동을 하다가 국회에 입성한 분이 그런 식으로 불법을 저지르는데 심한 배신감이 들었다. 세미나 발제자로 참여한 민간인에게는 참가비 20만 원 주면서 의원들은 거하게 타먹는 현실에 기가 찼다.”

    지역구 관리, 후원회 사무실 운영비가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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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 행위를 마다 않고 상당수 국회의원이 후원금 모금에 진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역구 관리와 후원회 사무실 운영비용 마련 때문이었다.

    “지역구에 있는 후원회 사무실에 보통 사무국장 1명과 여직원, 인턴 직원 2명이 있다. 이들의 인건비와 운영비로 월 1000만 원가량 든다. 보통은 지역 유지들이 사무실을 공짜로 쓰라고 한다. 우리도 무료로 사용한다. 만약 임대료까지 내면 월 10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선거가 없는 해, 국회의원 1인이 모금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은 1억5000만 원(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 선거가 없는 해에 1년 후원금 한도액을 다 채워도 직원 급여와 임대료를 내면 남는 게 없다는 하소연이다. 물론 국회의원의 지역구 활동 경비도 만만찮다.

    “우리 의원 지역구는 농촌 지역이다. 농한기가 되면 지역민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와 국회와 청와대를 관람한다. 우리 정서상 먼 길 오셨는데 그냥 보낼 수 있나. 그들도 유권자다. 식사 접대라도 하고 보내려면 그 돈도 만만찮다.”

    연말을 앞둔 요즘은 보좌관과 광역·기초의원, 후원회 사무국장이 가장 바쁜 때. 이들이 지역구에서 산악회를 조직하거나 기업이나 운수회사 등을 찾아다니며 소액 후원을 독려한다. 최근 지역민들과 등반대회를 가졌다는 영남지역 국회의원 H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로선 지역구의 소액 후원자가 많은 게 좋다. 자의든 타의든 소액 후원을 하면 ‘그래도 아는 사람’이라고 인식해 선거 때 표를 주는 경우가 많다. 국회의원은 산악회 회원들과 등산하면서 스킨십을 강화하고, 사무국장은 식사 자리에서 세액공제를 설명하며 소액 후원을 독려하기도 한다.”

    국회의원 I씨는 이맘때면 기업인에게 직접 전화를 돌린다고 했다.

    “의원이 최근 ‘큰 거 5개(500만 원×5명)는 내가 해오겠다’고 말했다. 보좌관이나 사무국장 고생시키지 않고 지인 5명으로부터 고액 후원금을 받아오겠다는 말이다. 그나마 의원이 중진이어서 우리는 편하지만, 다른 보좌관은 요즘 후원금 때문에 전화통을 끌어안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들은 대부분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검은돈이 상당수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특정 협회나 단체가 소액 후원금을 납부하면 솔직히 누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검찰은 청목회 리스트를 바탕으로 대가성을 주장하지만 의원으로선 억울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입법 로비를 관행으로 치부하고, 허위 영수증으로 혈세를 타내는 불법에 대해선 잘못 뽑은 국민이 가장 억울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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