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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다양한 소통 방식 제정 상봉 대가는 당사자에 맡기자”

긴급제언 - 남북 이산가족 상봉 해법

  •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kyle@donga.com

“다양한 소통 방식 제정 상봉 대가는 당사자에 맡기자”

“다양한 소통 방식 제정 상봉 대가는 당사자에 맡기자”

북한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에서 11월 5일 마지막 상봉 행사를 마친 남북 이산가족이 언제 또 볼지 기약할 수 없는 이별에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흐느끼고 있다.

11월 5일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 행사가 끝났다. 올해도 북측 가족과의 만남을 학수고대하던 남측 가족 중 6명이 상봉 직전 금강산행을 포기했다. 남측 이애경(94) 할머니는 북에 있는 남동생을 만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병인 당뇨와 고혈압 등이 악화돼 탈진 상태에 빠져 상봉을 이틀 앞두고 꿈을 접어야 했다. 아들 손흥영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무리해서라도 모시고 가려 했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고대한(85) 할아버지는 북측의 아내와 여동생, 딸 등을 만날 희망을 품었지만 이들이 모두 사망하고 조카 2명만 만날 수 있다는 소식에 상심한 나머지 상봉을 포기했다.

찔끔 상봉, 긴 침묵 10년째 되풀이

결국 당초 100명이던 남측 상봉자가 94명으로 줄고 북측 상봉자도 100명에서 97명으로 준 채 1, 2차 상봉이 진행됐다. 2000년 이산가족 상봉 초기 상봉자로 선정되는 것이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어려웠는데, 10년이 지난 현재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선정되고도 건강이 허락하지 않거나, 만날 날만 기다리다 세상을 뜬 사람이 속출해 신청자의 상봉 성사 비율은 더욱 낮아졌다.

그나마 여건이 허락돼 상봉을 한 가족들의 비극도 계속되고 있다. 60년을 떨어져 산 가족이 3일의 일정 중 단 하룻밤도 편히 같이 지내지 못하고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간절히 기다렸던, 짧고 강렬한 만남에 따른 충격과 살아서는 다시 만날 수 없다는 허망이 다수의 노령 상봉자에게 큰 스트레스를 줘 정신질환을 일으키거나 심한 경우 죽음을 불러온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남북으로 갈라진 가족들은 얼굴이라도 한 번 보기를 고대하다 희망을 접은 채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데, 남북한 정부는 여전히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카드를 놓고 정치적 실랑이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기본적인 인권조차 생각하지 않는 북한 당국에 분노가 솟구침은 말할 것도 없고, 남한 정부에도 ‘이산가족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통일이냐’고 묻고 싶다.



지금이야말로 획기적인 방안이 필요한 때인데, 남북한 정부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타령을 하며 이산가족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이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라고 입만 열면 외치는 남한 정부는 올해 10월 적십자회담에서도 “일단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라”며 북한을 일거에 굴복시키겠다는 자세를 굽히지 않았다. 북한 또한 “매년 3, 4회 상봉을 개최해줄 테니 연간 쌀 50만t, 비료 30만t을 내놓으라”며 황당하고 뻔뻔스러운 흥정을 시작했다.

정부가 실패하면 시장밖에 대안이 없다. 이산가족 문제도, 당국이 나서서 전체 이산가족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겠다는 ‘국가주의적’ 방식에서 벗어나 민간과 개인을 내세워 ‘시장주의적’ 방식으로 푸는 지혜가 필요하다. 남한 정부가 1000만 이산가족의 문제를 단번에 풀어 대통령의 정치적 성과로 홍보하려는 얕은 계산을 포기하고, 북한 당국도 이산가족을 팔아서 대가를 챙기고 이것으로 지배 엘리트들의 배를 불려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품위 없는 욕망을 버린다면 해결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남북한 정부가 이산가족 1가구 생사 확인과 서신 왕래, 대북 송금, 수시 상봉과 고향 방문 등 다양한 소통의 방식을 정하고 건마다 적절한 대가에 대해 합의하면 된다. 대가는 쌀 같은 식량일 수도 있고 공산품일 수도 있다. 무기 구입에 사용할 우려가 있는 달러만 아니라면 뭐든 상관없다. 그리고 소통의 방식을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를 마련하면 된다.

이 제도에 따라 우선 형편이 되는 남측 이산가족부터 북측에 대가를 지급하고 그쪽 가족과 소통한다.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정부가 남북협력기금 등을 활용해 매칭펀드 형식으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할 수도 있다. 이 방식을 통해 북한 정부는 한꺼번에는 아니지만 건별로 조금씩이라도 경제적 대가를 얻고, 우리 정부도 이산가족 상봉의 대가로 대북 퍼주기를 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만 고집한다면, 돈 없는 남측 이산가족은 어떻게 하느냐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이때 시민단체와 국민의 성금이 필요하다. 최근 활발한 자선과 기부 문화를 키워가고 있는 남측 시민사회는 그 대가를 모아낼 의지와 능력이 충분하다. 5000만 국민 중 능력이 되는 이들이 ‘이산가족 상봉 지원 펀드’에 매달 얼마씩 기부하는 방식도 있다.

북한도 이 방법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형식적인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대화의 대가로 연간 쌀 50만t, 비료 30만t 등을 퍼줬던 것과 비교하면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그럭저럭 통치자금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로로 북한에 가는 쌀은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정치적 대가이고, 외견상 정부 지원이 아니라 민간 수익자의 비용이기 때문에 남측의 분배투명성 요구를 피해갈 수 있다.

동·서독에서도 이런 방식 활용 효과

이산가족들도 찬성할 것이다. 북에 가족을 둔 이들과 그 자녀들은 이미 중국 등에서 활동하는 대북 브로커에게 상당히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돈을 전하거나 편지를 보내고 있다. 남북한 정부가 새로운 소통 제도를 도입하면, 시장은 이미 형성됐으나 마땅한 제도가 없는 틈을 타 부당이득을 챙겨온 브로커들이 설 자리를 잃는다. 그리고 그들이 떼어가는 돈이 온전히 북측 가족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통일이 되기 전 서독 정부와 민간은 바로 이런 방식을 활용해 1963년부터 1989년까지 모두 3만3755명의 동독 정치범을 서독으로 데리고 왔고 그 대가로 약 35억 마르크 상당의 물품을 동독에 제공했다. 대부분의 돈을 서독 정부가 댔지만 형식적으로는 교회 등 민간이 나섰다. 서독의 자유 언론도 이 비밀스러운 거래를 알고도 모른 척해줬다. 특종보다는 인도적 문제의 해결과 통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1년에 남북협력기금에서 38억 원을 할당해 남북 간 공동체를 디자인하는 ‘남북공동체 기반조성 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통일 대비를 위해 정책 연구에 15억7000만 원, 홍보사업에 21억3000만 원을 쓰기로 했다. 사업이 잘되면 역사는 이명박 정부를 ‘통일을 준비한 정부’였다고 기록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스마트한 정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통일만 외치다 스스로 내세운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도 달성하지 못한 정부’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주간동아 2010.11.15 762호 (p38~39)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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