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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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그리스 길거리 음식의 풍미

향신료가 선사하는 우아한 세계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7-04-17 17: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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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외국에 가도 도무지 길거리 음식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현지 재료와 손맛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을 것 같은 기대, 지금 맛보지 않으면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뒤엉켜 발걸음이 저절로 멈춘다.

    더욱이 기대도 안 한 싼값에, 상상도 못 한 맛이나 향, 식감을 느꼈을 때는 그 자체가 추억의 한 장면이 된다. 하지만 한국에선 길거리 음식을 손에 들고 봄꽃 흐드러지게 핀 거리를 누비는 광경이 이제  옛일이 됐다. 미세먼지 탓에 길거리 음식 탐방은 고사하고 산책도 꺼리는 상황이다.



    서울 경리단길에 가면 그리스의 길거리 음식을 파는 식당 ‘수바(SOUVA)’가 있다. 우리가 보고픈 지중해의 파란 하늘은 없지만 그리스의 풍미를 잔뜩 품은 다양한 맛을 만날 수 있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으로 피타빵에 고기나 채소 등을 얹어 먹는 기로스를 들 수 있다. 그리스뿐 아니라 미국, 호주에서도 인기 있는 길거리 음식이다. 양고기나 돼지고기에 올리브 오일과 후추, 마늘, 양파 등의 향신료를 덧입혀 그릴에 구워 익힌다. 양파는 얇게 썰어 달콤한 맛과 향이 우러나올 때까지 약한 불에 캐러멜이 될 정도로 오래 볶는다.

    소금 간을 한 감자튀김과 양파 볶음, 한 입 크기로 썬 양고기를 피타빵에 올리고 머스터드 아이올리 소스를 듬뿍 뿌려 돌돌 만 다음 파슬리 줄기를 얹으면 완성이다. 체면 차릴 것 없이 크게 한 입 베어 먹어야 한다.



    손가락 사이로 소스와 양파즙이 뚝뚝 떨어지고 입안에서는 머스터드의 톡 쏘는 맛, 양파의 단맛, 양고기의 구수함이 조화를 이룬다. 길거리 음식이라지만 그 우아한 풍미에 놀랄 뿐이다.

    그리스의 풍미는 갖은 향신료를 활용해 만드는 딥에서 시작한다. 딥을 맛보려면 피타빵이 필수다. 피타빵은 피자 도우처럼 얇고 쫄깃하며 탄력 있는 빵이다. 심심하고 구수해 다른 음식의 맛을 돋보이게 한다. 가장 잘 알려진 딥은 차지키다. 신선한 요구르트에 허브, 식초, 마늘, 오이, 올리브 오일을 섞어 만든다.



    요구르트의 신맛이 가볍고 산뜻해 입맛을 돋운다. 하리사(고추페이스트의 일종) 후무스는 꽤 매콤하다. 고소한 병아리콩을 삶고 갈아 페이스트로 만든 뒤 매운 재료와 오일, 향신료를 듬뿍 넣어 완성한다.

    알싸한 맛이 특이하고 고기 요리에 얹어 먹어도 잘 어울린다. 그리스 대표 치즈인 페타와 리코타를 섞어 만드는 딥은 피타빵뿐 아니라 어느 빵에 발라도 잘 어울리는 스프레드가 된다.

    그리스 음식에서 샐러드를 빼놓을 수 없다. 사이프러스 샐러드는 불거(bulgur·밀을 살짝 익혀 빻은 것), 렌틸콩, 아몬드 슬라이스, 케이퍼 절임, 석류 알갱이, 굵게 다진 적양파, 고수를 섞은 뒤 소스로 요구르트를 끼얹어 만든다. 소금 간을 은은하게 해 개성이 강한 여러 재료의 맛과 향을 살리는 것이 비결이다.

    고수 특유의 진한 향은 케이퍼의 새콤하고 짭짤한 맛과 잘 어울린다. 요구르트의 시큼함, 석류의 새콤함은 적양파의 달고 매운맛에 녹아든다. 탱글탱글 잘 삶은 곡류는 제각각 씹는 맛이 살아나 입안에서 와글와글 즐겁다.

    그리스는 유럽에 속하지만 이오니아 해를 사이에 둔 이탈리아 음식의 풍미와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에게 해를 마주하고 역사적으로 얽히고설킨 터키의 음식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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