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3

2017.04.12

와인 for you

열정, 헌신, 세심…와이너리를 닮은 맛

미국 죠셉 펠프스 인시그니아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7-04-12 14:14: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와이너리를 방문하다 보면 와이너리 분위기와 와인 스타일이 서로 닮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와이너리의 와인은 섬세하고 담백하다. 웅장하고 화려한 와이너리의 와인은 향이 풍부하고 힘찬 편이다.

    최근 다녀온 미국 나파 밸리(Napa Valley)의 죠셉 펠프스(Joseph Phelps,  표기법은 조지프 펠프스) 와이너리가 준 첫인상은 정교함이었다. 통나무로 지은 와이너리 외부는 수수했지만 내부는 포근하면서 고급스러웠다. ‘죠셉 펠프스’의 명품 와인 인시그니아(Insignia)가 주는 느낌 그대로였다.

    죠셉 펠프스는 콜로라도 출신 건설업자였다. 1960년대 중반 그의 사업은 캘리포니아까지 진출해 댐, 다리 등을 건설할 정도로 성공했다. 와인 애호가였던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일하면서 와인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고, 나파 밸리 포도를 콜로라도로 공수해 직접 와인을 만들기도 했다. 73년 결국 그는 나파 밸리에 600에이커(약 242만m2)의 땅을 구매해 포도밭을 일구고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와인메이커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실험과 도전을 좋아했던 펠프스는 포도밭에 여러 품종을 심었다. 그러다 참신한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는데, 품종을 정하지 않고 매년 수확한 포도 가운데 제일 좋은 것만 모아 와이너리의 대표 와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와인 이름도 영어로 ‘휘장’을 뜻하는 인시그니아라고 지었다.

    인시그니아 첫 번째 빈티지인 1974년산에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이 많이 들어갔다. 75년산에는 메를로(Merlot)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76년부터는 거의 매년 블렌드의 50% 이상이 카베르네 소비뇽이었다. 카베르네 소비뇽이 나파 밸리의 환경과 워낙 잘 맞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시그니아의 주 품종으로 자리 잡은 것.



     하지만 펠프스는 카베르네 소비뇽도 한 군데 밭에서 수확한 것만 쓰지 않았다. 밭의 위치에 따라 매해 포도 품질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나파 밸리 곳곳에 포도밭을 다섯 개나 추가로 조성했다. 그 덕분에 인시그니아는 매년 나파 밸리가 생산한 최고 포도로 만들 수 있었다.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로부터 세 번(1991, 1997, 2002년산)이나 100점 만점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2013년산은 인시그니아의 40번째 빈티지다. 와인을 코에 가까이 대면 검붉은 열매가 꽉 차 있는 듯 농축된 향미가 잔에서 뿜어져 나온다. 은은한 다크초콜릿향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분필가루처럼 고운 타닌은 탄탄한 질감을 자랑한다. 과일향, 보디감, 산도, 타닌 등 모든 요소의 균형이 완벽해 한 모금 머금으면 마치 정교한 건축물 안에서 웅장한 교향곡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든다.

    펠프스는 1973년 구매한 600에이커의 땅 가운데 470에이커(약 190만m2)를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정부에 기증했다. 그는 농번기 일손을 돕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임시 숙소를 지었고, 병원과 대학에도 기부를 아끼지 않았다.

     “좋은 와인은 열정, 헌신, 세심함으로 만들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작고한 아버지를 기억하며 아들 빌 펠프스가 한 말이다. 명품 와인은 기술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시그니아가 아름다운 이유는 와인에 대한 열정과 헌신, 자연과 사람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