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9

2009.11.03

“나쁜 짓 하는 어른들 무섭고요, 학원 안 가는 날 행복하죠”

0313세대 어린이들의 “저도 할 말 있어요!”

  • 글·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사진·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입력2009-10-28 15: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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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 3세에서 13세까지,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가진 10명의 어린이가 한자리에 모였다. 나이도, 사는 곳도, 꿈도 제각각인 이 아이들은 그러나 “나쁜 짓을 하는 어른들이 무섭고 부끄럽다” “어른들이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공부하라고 스트레스를 주는 게 싫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2009년 대한민국. 이 시기, 이 공간에 사는 우리 아이들은 어떤 생각과 꿈을 갖고 있을까. 또 어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감춰둔 ‘그 한마디’는 뭘까. 어른들의 거울인 어린이들의 솔직 당당한 생각 속에서 가슴 뜨끔한 진실과 교훈을 느껴보자.
    “나쁜 짓 하는 어른들 무섭고요, 학원 안 가는 날 행복하죠”
    엄마가 이런 건 절대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요리할 때 불 가까이 오면 얼굴이 ‘아야’ 한댔어요. 뜨거운 게 얼굴에 묻으면 병원 가도 의사 선생님이 못 고쳐주신대요.”

    내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 싫어하는 말은? “어른들이 언니만 예쁘다고 하고, 나는 안 예쁘다고 하면 싫어요. 나도 예쁘다고 하면 제일 좋아요.”

    이예은·이하은 쌍둥이 자매 (3·경기 수원 팔달구)

    엄마가 이런 건 절대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밖에 나가 놀 때, 엄마 얼굴 안 보이는 데까지 멀리 가면 나쁜 아저씨가 잡아갈 수도 있대요. 무서워요.”

    내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 싫어하는 말은? “하은이보고 바비공주같이 예쁘다고 하면 좋아요. 그리고 어른들이 큰 소리로 말할 때는 아주 무서워요. 소리 지르지 마세요.”



    이럴 때 기분이 제일 좋아요. “친구들이랑 엄마가 나 좋아하고요, 엄마가 밤에 책 많이 읽어주시는 거요.”

    이럴 때 우리나라가 창피해요. “쓰레기를 버리면요, 지구가 화를 내요.”

    이런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아요. “약속도 안 지키면서 막 혼내는 어른이요.

    김세훈 (5·서울 강남구 일원동)

    이런 어른은 되기 싫어요. “거짓말로 ‘과자 사줄게’ 하면서 데려가는 아저씨!

    이럴 때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워요. “무궁화 꽃이 많이 피어서 엄청나게 예쁠 때요.”

    이럴 때 우리나라가 창피해요. “윗옷을 막 올리고요, 엉덩이를 보여주는 변태가 있을 때요. 변태는 너무 싫어요.”

    김세하 (6·서울 강남구 일원동)

    이럴 때 기분이 제일 좋았어요. “공부 잘한다고 엄마 아빠한테 칭찬받았을 때요.”

    어른들에게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은? “공부 잘해라.

    언제 가장 행복해요? “학원 안 가도 되는 날이요. 수학이랑 영어 배우는데 학원 가는 게 귀찮을 때도 있어요. 친구 혜정이, 민지랑 엄마놀이 할 때가 제일 좋아요. 또 사람들이 저보고 예쁘다고 말해주는 것도 좋아요. 저는 미스코리아가 꿈이거든요.”

    이나경 (8·경기 남양주 구룡초교 2학년)

    “나쁜 짓 하는 어른들 무섭고요, 학원 안 가는 날 행복하죠”

    ‘스이바라’는 자신이 직접 만든 캐릭터 이름. 캐릭터는 곧 자기 자신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가장 스트레스 받는 일은? “학원 갈 때 스트레스가 쌓여요. 어른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싫어서요. 집에서 그림이랑 만화를 그리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어른들에게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은? “일찍 자라는 말이요. 근데 학원 갔다 와서 학교 숙제 하고, 학원 숙제랑 학습지까지 하려면 12시가 넘을 때도 있어요. 콩쿠르 준비 때문에 가끔씩 피아노 연습도 해야 하고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아인슈타인이랑 김대중 대통령이요. 둘 다 평화주의자잖아요.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도 만들었고요.”

    이런 어른은 되기 싫어요. “길거리에다 막 쓰레기 버리고 담배 피우는 사람이요.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친구만 믿다 전 재산을 날리는 사람을 봤는데요, 어른이면 경제 지식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아무리 친구가 착해도 친구보다 자기 자신을 믿어야죠. 한심한 사람이 되기는 싫어요.”

    송승현 (9·경기 일산 호곡초교 3학년)

    우리나라가 가장 자랑스러웠던 일, 창피했던 일은? “베이징올림픽에서 야구 금메달 땄을 때 제일 자랑스러웠어요. 그리고 길거리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제일 창피해요. 외국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흉을 보겠어요?”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은? “동규라서 좋아.” “동규가 최고야.”

    이런 어른은 되기 싫어요. “담배 피우는 사람이요. 냄새 나고 건강에도 나빠요. 전 일찍 죽는 게 싫어서 콜라랑 프라이드치킨도 안 먹어요. 200살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어요.”

    이동규 (10·경기 남양주 구룡초교 4학년)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살 빼라.

    우리나라가 창피할 때는? “나영이 사건을 보면서 사회가 너무 타락했다고 느꼈어요. 또 요즘 초등학생들은 조금만 짜증나도 막 욕을 해요. 세상이 너무 나빠진 거죠?”

    이럴 때 제일 싫어요. “초등학생이라고, 어리다고 무시하는 거요. 그래서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가도 같은 교회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지금의 삶을 만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먹고살 취직 걱정을 해야 한다며 ‘초딩 생활을 즐기라’고 하더라고요.”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저는 작사가가 꿈이에요. 운율을 맞춰 랩을 몇 개 써보기도 했어요. ‘사랑하는 그녀, 더 높은 곳을 하이어(higher), 우리 함께한 원 이어(one year)…’ 어때요? 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많은 걸 배우고 싶어요.”

    권유미 (12·서울 홍제초교 6학년)

    최근 가장 기분 좋았던 일, 화났던 일은? “학원 월례고사에서 영어 성적이 상위 3위 안에 들었던 거요. 그렇지만 졸리고 아플 때 학원에 강제로 가라고 하면 스트레스가 막 쌓여요.”

    어른들에게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은? “어서 공부해.” “항상 자신감을 가져.” “네가 한 게 뭐가 있어?” “넌 할 수 있을 거야.”

    우리나라가 창피할 때는?

    “나영이한테 일어난 일처럼, 끔찍한 범죄가 줄지 않는 것이요. 가해자에 대한 사면권을 없애고 가혹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정치 후진국이라는 점도 부끄러워요.

    장래 희망과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저는 커서 검사나 사업가가 되고 싶어요. 만약 회사 회장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서 누리고 싶은 것 다 누리고 죽을 때는 남는 재산을 모두 국제 난민들에게 기부할 거예요.”

    어른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너무 공부만 시키지 말고 밖에서 뛰어놀게 해주세요.”

    전상우 (12·서울 경기초교 6학년)

    최근 가장 스트레스 받은 일은? “시험 끝나고 컴퓨터 게임을 너무 오래해서 엄마한테 혼난 거요. 온라인에서 제 아바타를 가지고 활동하는데 이 캐릭터는 ‘제2의 나’ 같은 존재예요. 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못할 때 속상해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스트레스를 준 사람들에 대한 복수를 꿈꿔요.”

    롤모델이 있나요? “학벌은 아빠를, 일하는 스타일은 엄마를 가장 닮고 싶은데요, 부모님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이 될까 봐 압박감이 들어요. 얼마 전에 학원 선생님께서 ‘부모님이 훌륭한 분들이라고 너무 부담감 느끼지 마라. 너는 너 나름대로 열심히만 하면 되는 거다’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정말 감사했어요. 4학년 때까지는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돈을 많이 못 벌 것 같아 미술담당 기자로 꿈을 바꿨어요.”

    어른들에게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은? “컴퓨터 좀 그만해.” “공부는 잘하고 있니?” “책 좀 읽어라.

    이런 어른은 되기 싫어요. “집에서 아이만 바라보고 일하지 않는 여자요. 답답한 생각이 들어요.”

    스이바라 (가명·12·서울 홍제초교 6학년)

    5대 도시 학부모 500명 긴급 설문조사

    “요즘 우리 아이 문제 있다 97.8%, 아이 키우기 힘든 나라 58%”


    “나쁜 짓 하는 어른들 무섭고요, 학원 안 가는 날 행복하죠”
    대한민국 학부모의 6.8%만이 교육 및 사회 시스템, 안전망 구축 등 한국 사회의 양육환경에 만족(매우 만족 1.6%, 대체로 만족 5.2%)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조사 대상 가운데 절반 이상인 58.4%가 ‘불만족스럽다’(매우 불만족 13.4%, 대체로 불만족 45%)고 답해 ‘한국은 어린이를 키우기 힘든 곳’이라는 학부모의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했다.이러한 결과는 온라인 리서치 전문업체 ‘마크로밀코리아’가 ‘주간동아’의 의뢰로 10월15~16일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5개 대도시에서 자녀를 둔 30~50대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나타났다(신뢰도는 95%, 표준오차 ±4.4%).
    설문조사 결과 자녀를 양육하면서 가장 걱정되는 일로 ‘과열된 교육열과 이로 인한 아동의 스트레스’(36.2%)가 1위를 차지했다. ‘어른과 또래 집단에 의한 각종 성폭력’이라고 답한 비율도 34%에 달해 1위와 큰 차이가 없었다. 또 △아동보호와 어린이 인권에 둔감한 사회 분위기(13.8%) △교통 및 보행안전(9.2%) △불량 먹을거리, 환경오염 등 건강과 직결된 위해 요소(6.8%)가 뒤를 이었다.
    주부 최지은(32·경기 수원시) 씨는 “아이들을 보호와 배려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무엇보다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이 둘을 데리고 버스를 탈라치면 급출발하는 기사에, 자리를 양보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 승객들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대신 택시를 애용하다 보니 생활비의 상당액이 택시비로 쓰인다”고 말했다. 최근 발생한 조두순 사건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탓인지 자녀의 성별에 따라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률은 큰 차이를 보였다. 자녀가 딸인 경우, 성폭력(성추행 및 성폭행)이 가장 걱정된다고 답한 부모의 비율은 50%로 공부 스트레스(24.2%)의 2배에 달했고, 자녀가 아들인 경우에는 공부 스트레스의 비율(46.1%)이 성폭력(17.4%)보다 훨씬 높았다. 또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성폭력을 가장 큰 위해 요소로 생각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 응답자 중 여성은 38%가 성폭력이 가장 위험하다(공부 스트레스는 31.2%)고 답했고 남성은 41.2%가 공부 스트레스를 가장 큰 걱정거리로(성폭력은 30%) 꼽았다.
    아동 성폭력범 처벌 수위에 대한 질문에는(복수 응답) 남녀 응답자 모두 △종신형을 통해 사회에서 영구 격리(65.2%) △가해자 개인정보 일반에게 공개(33%) △화학적 거세(29.6%)가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응답자도 전체의 19.6%에 달했다. 반면 12년형 이하의 수감이나 벌금 수준의 가벼운 경고를 해야 한다는 의견은 각각 1.6%, 1.2%에 불과해 징역 12년형을 받는 데 그친 ‘조두순 사건’ 판결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짐작게 했다. 가해자의 개인정보를 일반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에 남성이(37.2%) 여성보다(28.8%) 큰 비율로 찬성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일곱 살짜리 딸을 둔 회사원 박찬혁(33) 씨는 “조두순 사건을 보고 남의 일이 아니라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는 학부모가 대다수”라며 “아동 성폭행 범죄는 재발률이 높은 만큼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격리 등 더욱 강력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설문조사 결과 부모의 상당수(60.2%)는 자녀에 대한 성교육을 학교, 유치원 등 교육기관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부모가 따로 시간을 내 자세히 설명해주거나(31.3%), 관련 책과 미디어 자료를 골라준 뒤 스스로 학습하게 한다거나(24%), 국공립 및 사설 성교육센터 등 전문 교육기관의 프로그램을 수강케 한다(17.6%)는 의견은 이에 훨씬 못 미쳤다.
    “나쁜 짓 하는 어른들 무섭고요, 학원 안 가는 날 행복하죠”

    ‘어린이 동아’ 기자인 전상우 군이 대한민국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썼다.

    한편 자녀에 대한 체벌이 가능하다고 답한 비율은 75%였다. 체벌 수위에 대해 응답자들은 △아이와 미리 원칙과 체벌 수위를 정하고 지키지 않을 경우 합의에 따라 체벌한다(44%) △사안에 따라 엉덩이 등 통증을 덜 느끼는 부위를 가볍게 때린다(21%)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아픔을 느낄 정도로 세게 때린다(10%)고 답했다. ‘어떠한 경우라도 체벌은 하지 않고 말로 타이른다’고 답한 비율은 아버지 28%, 어머니 22%로 총 25%에 불과했다. 특히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아픔을 느낄 정도로 세게 때린다’는 항목에 답한 어머니의 비율은 12.4%로 아버지(7.6%)보다 높아 눈길을 끈다. 자녀의 성별에 따라서도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 비율이 달라졌다. 딸 가진 부모의 31.8%가 ‘절대로 체벌하지 않는다’고 답한 반면, 아들 가진 부모는 21%만이 체벌에 반대했다.
    ‘요즘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상당수(37.6%)가 오락, 인터넷 등 뉴미디어에 대한 과도한 노출과 집착을 꼽았다. 그 뒤를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게 하는 경쟁적 교육환경(31.4%) △사회성 및 인성 부족(11.4%) △성과 관련된 신체적, 정신적 조숙 현상과 성에 대한 지나친 관심(9.8%) △왕따 등 또래집단 내 갈등(5.8%), 과도한 영양공급과 서구식 식습관에 의한 비만 등 건강(1.8%)이 이었다. ‘별문제 없다’고 답한 비율은 2.2%에 그쳤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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