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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박정희 전역식 원고 ‘불운한 군인’ 내가 쓰고 이후락이 고쳤다”

朴 전 대통령 비서관 동훈 씨 “‘새마을’도 내가 처음 써서 건네”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박정희 전역식 원고 ‘불운한 군인’ 내가 쓰고 이후락이 고쳤다”

“박정희 전역식 원고 ‘불운한 군인’ 내가 쓰고 이후락이 고쳤다”

1963년 8월30일 7사단 연병장에서 열린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대장의 전역식. 박 의장은 “본인과 같은 불운한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라고 연설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둘러싼 비밀의 커튼 몇 개가 그의 서거 30주년을 맞아 벗겨졌다. 한직인 2군 부사령관으로 있던 박정희 소장은 1961년 5·16군사정변(이하 5·16)으로 권력을 잡은 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취임해 군정(軍政)을 이끌면서 한순간에 중장을 거쳐 대장으로 진급했다.

1962년 3월에는 대통령 권한대행도 맡았다. 1963년이 되자 민정이양을 준비하는데, 이는 곧 그해 10월15일로 예정된 제5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 일은 그의 조카사위이자 5·16 주체세력인 김종필 씨가 주도했다.

중령 신분으로 5·16을 주도한 김씨는 정변 직후인 1961년 5월20일 비밀리에 만든 중앙정보부의 초대 부장을 맡아 초스피드로 준장으로 진급했다. 5·16 주체세력은 ‘그들의 헌법’격인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을 만들어 국회를 해산하고 입법부 기능을 떠맡음과 동시에 내각과 사법부도 장악했다. 1962년 3월16일엔 ‘정치활동정화법’을 만들어 적대세력의 정치행위를 틀어막았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발목을 꽁꽁 묶어 놓은 1962년 5월, 김종필 정보부장은 그들의 정치조직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재건동지회’를 창설했다.

“정치에 참여해서 불운으로 문구 이해”

주체세력과 구(舊) 정치인 가운데 협조자를 물색해 만든 재건동지회는 1963년 2월2일 드디어 실체를 드러냈다. 준장으로 전역한 김종필 씨가 준비위원장을 맡아 민주공화당 창당 준비대회를 연 것. 2월26일엔 정구영 씨를 총재, 김정열 씨를 당 의장으로 한 민주공화당을 출범시켰고, 5월27일엔 개편대회를 열어 박정희 대장을 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했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려면 박 대장은 군을 나와야 했다. 당시는 준장이 사단장이었는데, 박 대장은 5사단장과 7사단장을 지냈으나 군단장, 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은 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군인은 마지막으로 지휘관을 한 곳에서 전역하므로, 그해 8월30일 강원도 철원군의 7사단 연병장에서 박 대장의 전역식이 열리게 됐다.

요즘의 대장은 군생활을 30년 이상 하게 되므로 예순 살 직전에 전역한다. 그러나 당시는 건군 초기였기 때문에 박 대장은 17년 만에 군복을 벗었다. 세인의 이목이 집중된 전역식에서 만 46세(지금의 대령 나이)의 젊은 대장은 “친애하는 60만 장병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연설문을 읽다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다음의 한 구절로써 전역의 인사를 대(代)할까 합니다. 다시는 이 나라에 본인과 같은 불운한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라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깡마르고 매서운 눈초리의 박 대장이 눈물을 훔치며 스스로를 불운한 군인으로 규정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말은 금세 ‘역사적’ 유행어가 됐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군사혁명을 펼치고 마지못해 군문을 나와야 하는 그의 마음이 담긴 말이라고 주장했고,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이라며 몰아붙였다. 박 전 대통령은 연설문을 직접 쓰는 사람으로 알려졌기에, 이 연설문 또한 그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이 연설문을 당시 그의 비서관으로 활동하던 동훈(75) 남북평화통일연구소장이 작성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동 소장의 증언과 그가 보관해온 연설문 육필 원고를 통해 확인한 것. 그런데 뜻밖인 점은, 가장 많이 회자된 ‘불운한’이라는 단어는 사전에 이 원고를 검토한 이후락 당시 최고회의 공보실장이 넣었다는 사실이었다. 다음은 동 소장의 말이다.

“원래 내가 쓴 연설문의 마지막 문구는 ‘본인과 같은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였다. 나는 군대가 탱크를 몰고 나오는 일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 문구를 썼다. 그런데 5·16에 가담한 군인들에겐 ‘다시는 쿠데타가 일어나는 상황을 만들지 말라. 이 혁명은 만부득이한 것이었다’로도 읽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중의적 뉘앙스로 작성한 것인데, 이 원고를 검토한 이후락 공보실장이 ‘불운한’이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이 실장이 수정한 원고를 들고 가 설명했고, 박 의장이 ‘그렇게 해라’며 허락한 것으로 안다.

“박정희 전역식 원고 ‘불운한 군인’ 내가 쓰고 이후락이 고쳤다”

박정희 전 대통령 연설의 비밀을 공개한 동훈 남북평화통일연구소장(위). 동훈 소장이 보관하고 있던 박정희 전역식 연설 원고의 초안. 이 원고를 본 이후락 공보실장이 ‘불운한’이란 단어를 추가했다. 왼쪽은 이 원고를 프린트해 배포한 것(중간). 박정희 대장이 스스로를 ‘불운한 군인’이라고 규정했다는 연설을 보도한 당시의 ‘동아일보’(아래).

당시 군인은 전선에서 싸우다 전사하는 일이 가장 운이 좋은 경우고, 참모총장을 하는 것을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 의장은 그 길로 가지 못한 채 정치에 참여하게 됐으니 불운하다는 판단 하에 이후락 실장이 그 문구를 넣은 것으로 이해했다.”

“박정희 삶과 철학 정리했으면…”

‘불운한’이라는 문구를 넣은 이후락 실장은 주체세력이 아니었다. 정보 분야에서 오래 근무한 그는 1959년 국방부 직속 특수 정보기관인 79기관장, 그리고 제2공화국 시절엔 총리 직속 정보기관인 중앙정보위원회 멤버였기에 5·16 직후, 주체세력에 의해 소장으로 강제 전역한 뒤 잠시 옥살이를 했다.

그런데 1961년 11월 미국을 방문해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온 박 의장이 공보의 중요성을 절감해 사람을 찾다가 그를 발탁해, 반(反)혁명 세력으로 낙인찍혀 있던 그는 일약 ‘박정희의 사람’으로 변신했다. 그런 이 실장이 박정희 원고에 ‘불운한’이라는 단어를 넣었다는 것은 의외의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전역한 박 의장은 대통령의 길을 가겠다는 출사표를 ‘동아일보’ 1963년 9월6일자와 7일자에 ‘민정에 참여하며’라는 제목으로 이틀간 게재했는데, 이 원고도 동 소장이 작성했다. 동 소장은 “사실 그때까지 나는 박 의장의 곁 50m에도 가보지 못한 채 그의 원고를 작성했다.

이 실장이 어떤 원고를 쓰라고 설명해주면 그것을 토대로 박 의장의 생각을 추측해 원고를 작성한 것이다. ‘민정에 참여하며’라는 글 역시 그 일부로, 군정을 한 지난 2년간의 실정(失政)을 사과하는 형태로 만든 것이 기억난다. 이 실장은 까다로운 사람이었지만 내가 쓴 원고는 별말 하지 않고 박 의장에게 갖고 가 결재를 받아내곤 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 가운데 하나는 새마을운동인데, ‘새마을’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도 동 소장이라고 한다. 새마을이란 말이 들어간 글은 박 전 대통령이 아닌, 내무부 지방국에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무부 지방국장인 강영수 씨는 동 소장과 함께 청와대에 근무하다 내무부로 옮겨가 농촌 살리기를 추진하게 됐다. 그러한 강 국장은 농촌 가꾸기를 해야 한다는 논리의 글을 동 소장에게 부탁했다. 그가 박 대통령의 생각을 잘 알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동 소장은 ‘새마을에의 길’이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강 소장에게 건넸다.

내무부가 이 글을 올리자 박 대통령은 “많이 본 글 같다”며 결재했고, 내무부는 관공서로 보내는 각종 정부자료에 ‘새마을에의 길’을 실음으로써 새마을이란 단어가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 후 새마을 가꾸기는 새마을운동으로 개념이 커지면서 농촌 부흥운동으로 확대됐다.

동 소장은 박 전 대통령 말기에 통일원 차관을 지내던 중 10·26을 맞았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한반도 통일방안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런 동 소장이 박 전 대통령의 ‘체취’를 공개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주인공인 박 대통령이 서거한 지 30년이 됐으니, 제대로 된 사실을 공개해 그의 삶과 철학을 정리했으면 한다. 이러한 축적이 제대로 된 새 지도자를 맞는 한 방법이 아니겠나. 이러한 생각에, 나는 영원한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로 있어야 한다는 룰을 조금 어기게 됐다.”



주간동아 2009.11.03 709호 (p66~67)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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