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9

2009.11.03

이 좋은 곳에서 몸 던지지 말 것!

인천대교, ‘자살대교’ 될까 걱정 … “자살하기 좋은 조건” vs “첨단 시스템 완비, 자살 힘들다”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9-10-28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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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좋은 곳에서 몸 던지지 말 것!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와 송도국제도시를 연결하는 인천대교가 10월19일 0시를 기해 개통됐다. 세계 최고의 공법, 세계 5위의 사장교(교각과 교각 사이 경간장 최대 800m), 세계 7위의 최대 연장(23.38km), 국내 최고 높이 주탑(230.5m)…. 인천대교 인터넷 홈페이지의 설명에는 ‘세계 최대’란 수식어가 2개, ‘국내 최초’ ‘국내 최대’ ‘국내 최장’이란 수식어가 11개나 붙어 있다.

    쪽빛 서해와 섬 사이로 지는 낙조, 넓은 개펄, 인천국제공항을 뜨고 내리는 비행기, 그 아래를 무심히 오가는 배들, 송도국제도시의 금빛 마천루, 영종도에 펼쳐진 광활한 들녘…. 인천대교는 기술력으로나 주변 풍광으로나 국내 최고의 명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시어다골(魚時魚多骨),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인천대교는 개통 이전부터 많은 관광객이 몰리면서 인터넷 등에 ‘자살하기 좋은 곳’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자살 사망자 한 해 1만3000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자살률 1위(2008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자 26명), 자살 사망자 증가율 세계 1위, 20~30대 자살률 세계 1위 등 ‘자살천국’이 돼버린 현실에서 끔찍한 ‘길안내’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인천대교를 자살하기 좋은 곳으로 꼽는 이유는 먼저 ‘유명해서 이목이 집중된다’는 점.

    다음으로는 ‘다리가 높아 실패 확률이 거의 제로다’ ‘난간이 낮고 갓길이 넓어 접근성이 용이하다’ ‘풍광이 아름다워 죽기에 좋다’ 등. 과연 그럴까. 한국자살예방협회 장창민 과장(고려대, 연세대 상담심리학 강사)과 함께 10월21일 오후 인천대교를 찾았다.

    인터넷에 ‘자살하기 좋은 곳’으로 소개



    이 좋은 곳에서 몸 던지지 말 것!

    한국자살예방협회 장창민 과장이 인천대교의 난간과 시설 점검로를 가리키며 대책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유명하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을 자살 장소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죠. 국내에서는 추락이 목을 매는 것, 농약 음독과 함께 3대 자살 형태 중 하나입니다. 저기 좀 보세요. 벌써 저렇게 갓길에 사람들이 몰려들잖아요.”

    개통 사흘째,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인천대교 송도국제도시 측 구간의 갓길에는 차량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사진을 찍는 청년, 난간 아래 바다를 내려다보는 아이, 경치를 감상하는 중년여성 등이 시속 100km(제한속도)로 달리는 차량들 옆에서 태연하게 인천대교의 주변 풍광을 즐기고 있었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부는 인천대교 위에 서니 갑자기 ‘행글라이더를 타고 날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10대 자살 장소들은 높은 다리나 구조물, 폭포, 인천대교처럼 주변 풍광이 아름다운 명소나 랜드마크가 대부분이다. 그중에서도 다리가 가장 많다고 한다.

    이 좋은 곳에서 몸 던지지 말 것!

    인천대교 전 구간에 설치된 CCTV를 통해 도로 상황을 점검하는 인천대교㈜ 관제센터. 모니터에 갓길주차 차량이나 사람이 보이면 일단 가로등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방송하고 그래도 안 되면 순찰차가 출동한다. CCTV는 차량번호판 인식이 가능할 정도로 선명하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에 있는 이구아수 폭포(낙폭 82m),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중앙부의 높이 수면에서 67m), 영국의 클리프턴 현수교(수면에서 75m), 프랑스의 에펠탑, 주상절리가 이어진 일본의 도진보(東尋坊) 절벽, 캐나다의 몬트리올 항만교(자크 카르티에교), 중국의 양쯔(長江)강 대교, 호주 시드니 동부의 갭 공원, 룩셈부르크의 붉은 다리(the Red Bridge), 터키 이스탄불의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보스포루스 현수교(수면에서 64m)가 이른바 ‘자살 명소’들이다.

    이 명소들은 자살이 잇따르자 최첨단 자살방지시설을 갖춰 또 한 번 주목받기도 했다. 인천대교 사장교 부근 중심의 높이는 수면에서 74m. 높이로만 따지면 세계적인 자살 장소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인천대교 관계자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큰 유람선(높이 72m)인 영국의 퀸엘리자베스호도 이 다리 밑을 지나갈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차량을 주정차하기 쉽도록 갓길을 넓게 만들어놓은 것, 난간이 낮고 그 사이가 넓은 것도 문제예요. 자살사고가 거의 없는 영종대교는 갓길이 좁아 주차하기 어렵죠. 한강의 다리들은 갓길을 모두 없앴거나 없애는 중이고요. 그런데 이곳은 난간 높이가 어른 명치께밖에 되지 않는 데다, 난간에 가로로 뻗은 철제봉 사이로 마른 여성은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인천대교는 다른 고가다리와 달리 미관을 고려하고 주변 풍광을 볼 수 있도록 철제봉으로 만든 난간을 설치했는데, 철제봉 사이가 넓을 뿐 아니라 성인이라면 별 어려움 없이 넘어설 수 있을 만큼 낮다. 게다가 난간 옆에 붙어 있는 시설 점검로는 자살자를 주변 사람이 말릴 수 없도록 고립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난간 철제봉의 굵기와 강도로 봐서는 달리는 차량이 부딪친다고 해도 다리를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즉, 덤프트럭 같은 대형차량을 몰아 작정하고 달려드는 경우가 아니라면 난간을 부수고 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얘기.

    석양이 물들 무렵, 인천대교의 명물이자 수면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장교 주탑 부근에 이르니 갓길에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고 있었다. 송도국제도시의 마천루와 영종도 낙조가 어우러진 서해를 바라보려는 관광객 사이에서 사진 찍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들에겐 통행료 5500원(소형차 기준)이 전혀 아깝지 않은 듯했다. 주변 풍광을 지켜보던 장 과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멜랑콜리’란 말이 있죠. 사실 이 프랑스어의 어원은 우울함을 유발하는 흑담즙에서 비롯됐습니다. 어두움, 우울함의 상징이죠. 어둠이 물들어가는 이곳의 낙조와 스산한 바람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 수 있어요. 자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간이 초저녁 무렵이기도 하고요. 추락 자살은 대부분 충동적으로 일어나는데, 난간도 낮고 서울에서의 접근성도 좋으니 더 걱정입니다. 자살 명소 중엔 도시와 농촌의 경계지점이 많은데, 인천대교도 송도국제도시와 농촌지역인 영종도를 잇고 있습니다. 뭔가 대비책이 있어야 할 것 같네요.”

    구석구석 감시 … “죽는 게 더 어렵다”

    하지만 인천대교㈜ 측의 자살 방지책도 만만치 않다. 이곳에서 자살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다리 난간에 서는 순간부터 여러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장 과장과 함께 사장교 아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벼락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서울 ○○가 ○○○○ 차량, 차 빼세요. CCTV로 번호판 촬영 중입니다. 지금 바로 떠나지 않으면 갓길 주차위반으로 범칙금이 부과됩니다.”

    인천대교에는 총 23개의 CCTV가 장착돼 있는데, 이것들은 한 곳의 사각지대도 없이 번호판을 잡아낸다. 갓길에 주차하거나 걸어다니는 사람이 관제센터 CCTV에 잡히면 가로등에 붙은 스피커에서 안내 또는 경고방송이 귀에 거슬릴 정도로 쨍쨍하게 울린다. 그래도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5분 안에 순찰차가 득달같이 달려온다. 장 과장은 “추락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충동적이라 누군가 옆에서 보고 있음을 알게 되거나 말을 걸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좋은 곳에서 몸 던지지 말 것!
    관제센터에 들르니 CCTV의 성능이 대단했다. 난간에 서 있는 사람의 표정까지 잡아낼 정도. 매해 1000건 넘게 투신사고가 일어나는 한강 다리(지난해 최다 투신사고는 마포대교의 127건)의 경우, 서울시와 서울소방재난본부는 내년까지 모든 다리에 CCTV 관제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에 비하면 인천대교는 발 빠르게 대책을 세워놓은 셈이다.

    설령 교각 난간에 다리를 올렸다가 마음이 바뀌어 매달려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해도 바다로 떨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영종도 톨게이트 쪽에 119구조대가 24시간 상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 도착시간은 5분. 방송을 이용한 설득이나 순찰차의 출동에도 다리 난간에서 떨어진 사람은 낙하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하지 않는 한 자살 성공 가능성이 낮다. 인천대교 아래의 바다와 개펄에서의 인명구조 업무를 맡고 있는 인천해양경찰서 관계자는 이곳이 ‘자살대교’가 될 가능성을 자신만만하게 일축했다.

    장기적으론 투신 방지시설 달아야

    “바다가 그리 깊지 않은 데다 개펄이 드러나는 시간도 길어서 살 확률이 높아요. 만일 사람이 다리 난간에서 떨어지면 몇 초 안에 인천대교 관제센터에서 정확한 위치를 우리에게 CCTV로 알려주게 돼 있어 대부분 구조가 가능합니다. 물 위를 달리는 구조정 8척, 개펄 위를 날아다니는 공기부양정 3척, 거기에 헬기 2대와 챌리저 순찰비행기 1척, 그리고 112 정예 구조대와 특공대 요원, 간호요원이 24시간 상시 대기하다가 구조작업에 투입됩니다. 도착하는 데 몇 분도 걸리지 않아요. 그러니 죽을 확률보다 살 확률이 높은 게 사실이죠. 확실하게 죽으려 한다면 이곳을 이용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인천대교의 자살 방지책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장 과장은 인천대교 측에 좀더 확실한 방지책을 요구했다.

    “유명 연예인이 죽으면 모방자살이 이어지듯(베르테르 효과), 이런 명소에선 만에 하나라도 누군가 투신자살에 성공하면 자살 시도가 잇따르게 됩니다. 미국의 금문교, 영국의 클리프턴 현수교 등 자살 장소로 악명 높은 곳은 대부분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다리 미관을 포기하고 난관을 높이거나 난간 아래에 그물망을 다는 등 투신 방지시설을 설치했죠. 서울시와 서울소방재난본부도 내년 말까지 자살사고가 많은 마포대교, 한강대교, 광진교에 투신 방지벽을 만들기로 했지 않습니까. 이 정도의 명소라면 미리 확실한 방지책을 세워두는 게 좋을 듯합니다.”

    물론 가장 확실한 자살 방지책은 상담이나 치료로 자살 시도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자살을 계획했거나 시도한 사람 중 상담 또는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30%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전화나 인터넷으로 상담부터 받도록 하자. 한국자살예방협회 사이버상담실(www.counselling.or.kr), 정신보건센터 핫라인(1577-0199), 생명의전화(1588-9191), 복지콜(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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