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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미래의 눈으로 봐야 할 ‘베트남 전쟁’

국가 안보, 한미동맹 등 기존 시각 변모 … 피해자이며 가해자인 한국, 새 접근법 필요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미래의 눈으로 봐야 할 ‘베트남 전쟁’

미래의 눈으로 봐야 할 ‘베트남 전쟁’

10월21일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응우옌민찌엣 베트남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인사말에서 “베트남이 역경을 딛고, 아픈 과거를 딛고 미래를 향해 가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정재성(62) 씨의 휴대전화 벨소리는 애국가다. 컬러링도 애국가다. 정씨에게 전화를 걸면 거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애국가를 들어야 한다.

“요즘 사람들, 애국가 들을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전화를 천천히 받습니다. 이때만이라도 애국가를 들어보라는 생각에서.”

정씨뿐 아니라 최성영(67), 최진현(62), 장영호(60) 씨의 휴대전화 벨소리도 애국가다. 이들은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에 참가했다. ‘나라 위해 목숨 바쳐 싸웠다’는 긍지 하나로 살아온 이들이다.

요즘 그들의 심기가 불편하다. 이른바 ‘월남전 문구 파문’ 때문이다.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유공자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벌어진 외교 마찰과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그들은 “피가 거꾸로 솟았다”고 한다.



“차라리 유공자 대우를 해주지 말란 말이오. 지금껏 안 해줬는데 새삼 무슨 국가유공자랍니까.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명예만 지켜주길 바랄 뿐인데….”

정씨가 목소리를 높이자 다들 한마디씩 거든다.

“6·25전쟁 때 중공군이 개입해 통일을 못 이뤘습니다. 지금 중국은 6·25전쟁 참전자들을 극진히 대우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가 월남전 문구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면 우리도 같은 논리로 중국에 이의를 제기해야 합니다.”(최성영 씨)

“베트남의 주권을 위협한 것도 아니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을 개정하는데 외국 정부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내정간섭입니다. 베트남 정부가 항의했다고 참전용사들과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 즉각 해당 문구를 삭제하겠다고 하는 정부의 태도가 영 마뜩지 않아요.”(최진현 씨)

“우리를 비난하고 월남전을 비하하는 사람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당신들이 그 전쟁을 직접 겪어봤냐’고. 우리가 양민학살을 했다고? 월남전은 게릴라전이었다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합니다.”(장영호 씨)

문구 삭제 … ‘돌아온 김 상사’들이 뿔났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등을 뿔나게 한 월남전 문구 파문은 국가유공자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불거졌다. 6·25전쟁 참전유공자는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면서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을 국가유공자에서 제외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3월31일 민주당 신학용 의원 등 여야 의원은 공동발의를 통해 베트남전 참전자들도 6·25전쟁 참전 국가유공자와 동일한 수준으로 예우토록 하는 국가유공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가보훈처도 국가보훈제도를 전면 개편하는 ‘보훈대상 및 보훈체계 개편안’을 마련해 베트남전 참전유공자 15만명을 6·25전쟁 참전 국가유공자와 동일하게 대우하기로 했다. 좋은 의도에서 시작됐지만 ‘세계평화 유지에 공헌한 월남전쟁 유공자와 고엽제 후유증의증 환자들을…’이란 문구에서 사단이 났다.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을 ‘세계평화 유지’에 공헌한 것으로 규정한 데 대해, 이 전쟁을 미국의 침략에 맞선 민족해방운동으로 보는 베트남 정부가 우리 정부 측에 강력히 항의하고 나선 것.

이 바람에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10월12일 베트남 하노이를 당일치기로 방문해 베트남의 팜자키엠 부총리 겸 외무장관을 만나야 했다. 결국 ‘월남전쟁’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정부는 “법 운용과정에서 베트남전 참전자들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실질적 혜택을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주목할 만한 사실은 보수, 진보 언론을 가리지 않고 ‘베트남을 진정으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자세가 부족했다’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며 베트남이 아니라 한국 정부를 비판했다는 점.

베트남전, 나아가 베트남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인식에 많은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베트남은 가까운 나라다. 비행기로 넉넉히 5시간이면 닿는다. 거리도 가깝지만 한국과의 경제협력도 활발하다. 10월20일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있지 않아 세계에서 베트남에 투자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한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대통령의 말마따나 1992년 수교 이후 17년 만에 한국은 베트남의 6번째 교역 대상국이 됐다.

두 나라의 교역 규모는 올해 1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기업의 베트남 투자 규모는 세계 2위이고, 1800여 개 한국 기업이 베트남인 35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정치, 경제통상, 에너지, 문화 등 다방면에서 양국의 협력은 폭발적 증가세를 거듭하고 있다. 양국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 관계’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킨다는 정부 방침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베트남은 먼 나라다. 40년 전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불행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64~73년 연인원 31만명의 국군을 베트남전에 파병했다. 그중 5000여 명이 전사했고, 1만여 명이 부상당했다.

자유수호군이냐, 용병이냐

우리와 일본 사이에 과거사 문제로 걸핏하면 일촉즉발의 위기가 불거지는 것처럼, 베트남전을 둘러싼 과거사 문제 또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베트남전을 바라보는 우리와 베트남 정부의 시각은 너무 다르다. 한국과 베트남은 1992년 수교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등 과거사를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수교 4년 뒤인 1996년 베트남을 방문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를 일절 언급하지 않고, 베트남 국부(國父) 호찌민(胡志明)의 묘소에 가지 않았던 것도 이런 사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베트남전 참전의 당위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으면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 반공이 국시(國是)인 시대에 이는 불변의 진리였다. 고엽제 후유증 문제에서 보듯, 그간 한국은 베트남전의 피해자라는 시각이 주류를 이뤘다. 1964년 베트남전 파병 당시 국회의원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파병에 부정적이었지만 드러내놓고 반대하진 못했을 정도다.

희망아카데미 이춘근 원장(정치학 박사)은 “당시엔 베트남이 공산화하면 그 파급효과가 한국에도 미칠 것이라는 안보의식을 모두 공유하고 있었다”며 “북한의 위협에 직면한 상황에서 주한미군을 빼내 베트남전에 투입하면 한반도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는 만큼, 차라리 한국군을 베트남에 보내 주한미군을 대신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베트남전은 한일회담과 더불어 경제발전의 초석을 마련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베트남전 참전 덕분에 경제개발을 위한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논리다. 현대그룹, 한진그룹이 굴지의 대기업으로 떠오른 이면에는 중동 붐 이전에 베트남전이 있었다. 참전 군인들이 국내로 송금하는 돈, 미국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지원받는 자금, 그리고 베트남 현지 공사를 한국 기업들이 수주하면서 한국은 베트남 특수(特需)를 톡톡히 누렸다. 베트남전에 전투부대를 본격적으로 파견하기 시작한 1965년 1억500만 달러에 불과하던 한국의 국민총생산(GNP)은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한 73년 3억1900만 달러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1990년대 후반, 일부 진보매체들이 한국군의 베트남전 양민학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지금껏 한국을 중심으로 베트남전을 해석하던 시각에 변화가 생겼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베트남전의 피해자이기 전에 가해자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진보세력과 진보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베트남전을 미 제국주의가 일으킨 추악한 전쟁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베트남 전쟁’ 대신 ‘베트남 통일해방전쟁’이라는 용어를 쓸 것을 요구한다.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 또한 ‘돈을 위한 참전’이었다며 용병으로 매도하는 주장도 나왔다. 그들은 베트남전을 우리의 부끄러운 현대사로 치부한다. 그들은 역사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며 베트남에 직접 찾아가 봉사활동을 벌이고, 사과를 하고, 위령탑을 세운다. 이들은 참전용사 개개인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국가권력의 폭력성’으로 문제를 환원한다. 그 때문에 국가정책 의사결정 과정에서 누가 베트남전 참전을 결정하고 참전 명령을 내렸는지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엔인권정책센터 위선주 간사는 “엄밀히 따지면 베트남에게 한국은 가해자”라며 “베트남전에 대한 올바른 역사적 인식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참전한 분들이 그것을 계기로 전쟁의 잔혹성을 고발하고 반전운동으로까지 이어가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처럼 새로운 인식과 진보세력으로의 정권 교체가 맞물리면서 베트남전을 바라보는 시각은 또 한 번 전기를 맞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인 1998년 베트남을 방문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최초로 공식 사과했다.

호찌민 묘소도 찾았다. 베트남 파병이 냉전시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도 베트남에 끼친 피해에 대해서는 사과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 2004년 베트남을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비록 직접적인 사과를 하진 않았지만 “우리 국민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그만큼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호찌민 묘소에 헌화하고,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호찌민의 시신이 안치된 유리관 앞에서 10초간 묵념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역사의 한 부분

그럴 때마다 보수층은 강하게 반발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였던 박근혜 전 대표는 “6·25전쟁에 참전해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16개국 정상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사과한 것과 같은 일”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참전용사들의 가슴과 대한민국의 명예에 못을 박았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시대 변화라는 큰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월남전 문구 파문에서 보듯,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전에 대한 담론은 더 이상 한국 중심에 머물러 있지 않다.

한국이 아시아의 새로운 리더 국가로서 그 위상을 확고히 하려면 베트남전에 대한 역사적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올바른 역사적 인식 없이는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리더 국가가 될 수 없다는 것. 한국과 베트남이 진정한 화해 협력을 구축하고 동반자적 관계에 올라서기 위해서라도 베트남전으로 대표되는 과거사 문제를 성의 있게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홍규덕 교수는 “베트남전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누구인지를 부각하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한국과 베트남이 어떤 파트너십을 구축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베트남은 한국이 아시아의 리더 국가로 뛰어오르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 한국이 이룩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베트남에 전수해 베트남의 발전에 기여하는 식의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과거사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트남전이라는 역사를 보는 시각은 시대와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베트남전에 대한 기억은 이미 지나가버린 역사의 흔적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 현대사의 일부다.



주간동아 2009.11.03 709호 (p58~60)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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